[금강칼럼] 하, 수상한 세상 술 마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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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1. 16(월)

- 김우영 작가

  
 
 
 

요즘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술을 마시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의와 진리를 탐구하다는 비분강개파 문인(文人)들의 경우는 더욱 그런 자리가 많다.

 

 얼마 전 서울 종로거리 인사동으로 문인들을 만나러 갔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단골집 ‘시인통신’이 그리워 인근 선술집에 가서 문인들과 함께 권커니 잣커니 추억을 마셨다. 통기타까지 어깨에 메고 갔으니 즉석 노래에 시낭송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심 인사동에서 문인들의 라이브 ‘푸드 콘서트(Food Concert)’가 신나게 열린 것이다.

 ‘有酒有樂, 無酒無樂’(유주유락, 무주무락). 술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술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뜻의 이 말은 문학청년 시절 내가 자주 가던 종로 청진동의 명물 ‘시인통신’의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낙서 중 한마디였다. 광화문 교보빌딩 뒷골목으로 10여 미터 들어가노라면 막걸리집인 열차집이 보인다.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허름한 문간방이 나타난다. 두어 평 됨직한 이곳이 8년여 동안 이어져온 카페 시인통신이다.

 본래 모 시인이 운영하던 것을 중년의 한귀남 소설가가 인수했다. 많은 시인 묵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맥주를 내놓는 자칭 타칭 민족주의자들의 사랑방이었다. 돈 없고, 백 없는 가난한 문인들이 몰려와 한 잔 술에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밑동이 썩어들어 갈듯한 허름한 한옥집이 떠나갈 정도로 뜨거운 이념논쟁에 주먹다짐까지 해대며 떠들어대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랑대는 묘한 집으로 오인됐나 보다. 한때는 당국의 시찰업소 리스트에 올라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인이 되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분야가 다양했다. 무세중, 이외수, 중광, 황필호, 김흥성, 천상병, 이호철, 정건섭, 유안진, 허영자, 이생진, 오인문, 승호 등 문인, 화가, 교수, 스님, 언론인 등 각계각층을 총망라했다.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탁자 위에서 그냥 머리를 박고 잠을 자기도 한다. 흥에 겨우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돈 없으면 외상도 마음대로 한다. 그처럼 편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집에 갈 버스표도 하나쯤 손에 쥐어주는 곳이다. 이들의 누님이자 연인인 한귀남 씨가 가장 난처할 때가 있다. 어디서 고주망태가 돼 들어와서는 혼자 자는 방에 들어가 잔다고 우길 때라고 한다.

테이블 4개의 비좁은 공간이건만 천장과 사방 벽은 온통 낙서판이다. 마치 대학가의 학사주점이나 선술집을 연상케 한다. 휘갈겨 쓴 낙서를 대충 훑어보면 이렇다.

 “죽으면 죽었지 지금 죽을 수는 없다.”

“소주는 짧고 맥주는 길다.”

 “사람 중에 깨어있는 것은 입 밖에 없다.

 “오늘도 하늘을 내려와 내 술잔에서 풀어지는 여인이여!”

 “허무, 그 단단한 놈!”, “대머리 한 씨의 계보를 찾아서… ”

  “물은 개나 마시고 술은 인간이 마신다.”

 

 단골 손님 중 시인 한 사람이 쓴 낙서를 보면 또 이렇다.

 

 “오늘 따라 누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개수작했습니다. 누님은 여전히 누님이고 강물은 저렇게 흘러갑니다!”



 그날의 해프닝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한귀남 소설가는 이곳을 찾은 귀여운 악동(?)들에 얽힌 에피소드와 애환을 담은 시인통신이라는 수필집을 낸 바 있다. 또 성금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시인통신 문학상 제도를 추진해 힘없고 가난한 이 시대의 문인들을 위한 창작의 촉매제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한때 문학 소녀였던 그녀의 7할의 바람인 것이다.

 텁텁한 막걸리 몇 잔에 요의를 느끼고 좁은 화장실에 들어서니 그곳에 살아 꿈틀대는 낙서 한 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잘 사는 놈이 법을 지킬 때 못 사는 놈은 기분이 좋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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