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
시
*가을의 끝자락 붙들고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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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6-10-15 |
3542 |
1 |
127 |
시
유월의 잔상(사진 첨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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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6-04 |
3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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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
시
벚꽃 향그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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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4-03 |
3553 |
1 |
125 |
시
시-----한해를 보내는 길섶에서/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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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20-12-26 |
3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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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시
(성) 첫 사랑의 기쁨 속에/내 눈 여소서/내 영이 주를 찬양 합니다/그리움의 빈자리(tl)//가을 동화//한여름의 장 마감하며(t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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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5-09-20 |
3558 |
4 |
123 |
시
꽃바람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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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3-23 |
3562 |
1 |
122 |
시
새 마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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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1-18 |
3566 |
1 |
121 |
시
그 곳에 가고 싶다/은파 오애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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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22-01-22 |
3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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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시
아버지 날에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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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6-19 |
3581 |
1 |
119 |
시
나 지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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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6-09-14 |
3582 |
|
118 |
시
봄 햇살로 그리는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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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3-23 |
3583 |
1 |
117 |
시
함박눈이 내릴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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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8-01-21 |
3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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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
시
1월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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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1-26 |
3591 |
1 |
115 |
시
그리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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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3-13 |
3595 |
1 |
114 |
시
칠월의 단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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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7-08 |
3596 |
1 |
113 |
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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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1-18 |
3597 |
1 |
112 |
시
새마음 3(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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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7-01-18 |
3603 |
1 |
111 |
시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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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6-07-22 |
3606 |
|
110 |
시
빛고을 반짝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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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6-09-16 |
3609 |
1 |
109 |
시
그대를 생각해 볼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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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숙 |
2016-10-02 |
3618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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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상품이 된 크리스마스
요즈음 문화 창조의 언어가 있습니다.컬덕이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컬처(culture)와 상품을 의미하는 프로덕트(product)의 합성어로써의 컬덕(cultduct)입니다. 문화 상품이란 뜻일 것입니다. 저의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는 참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성탄절을 앞에 두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연극을 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축하 성가 연습을 했습니다. 성탄 카드를 직접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학생회에서 온 밤을 새우면서 재미있게 놀면서 지낸 것은 설레임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25일 새벽 4시부터 등불을 들고 성도의 가정을 찾아다녔습니다. 집 앞에서 케롤송을 부르면 대문을 활짝 열고 맞이하여 줍니다. 촛불을 온통 커놓은 방으로 인도하여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따끈한 팥죽과 함께 선물 보따리를 주던 성도님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남고 있습니다.오직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이루어진 아름다운 추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의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이 온데 간데 사라진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컬덕(cultduct)이 되어 거대한 문화 상품으로 자리를 매긴 것 같습니다.이제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생일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쇼핑센터가 크리스마스의 무대가 되어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크리스마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 배경에는 코카콜라가의 마케팅에 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는 연상케 하는 흰색 털이 달린 빨간색의 외투를 입고 하얀 눈 덮인 들판을 달려가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누워 주고 시원하게 마시는 코카콜라의 모습은 그해 겨울 엄청난 수요를 증가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의 문화상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오늘날 아기예수는 뒷전으로 밀린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어린이가 성탄 트리를 보더니 “와- 크리스마스다”라고 외쳤습니다. 어느 젊은 청소년이 깜짝 놀라면서 “교회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어요?” 합니다. 요즈음의 카드에는 그나마 있었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지금 미국 뿐 아니라 온 인류는 예수님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무례해 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날 기뻐하심을 입은 몇 몇 사람에게만 성탄의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무관심했고 외면했고 배척을 했습니다.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1:11) 그리고 지금 이천열 다섯 번째의 크리스마스도 기뻐하심을 입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평화가 전해지는 그런 계절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이메일로 보내신 백동흠 시인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