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목에서 글 숲으로

조회 수 105 추천 수 0 2020.06.30 02:02:33

전차를 탓던 기억도 나곤 하나
그 추억은 특별하게 연결되는
고리가 없어 작품으로 승화를
못 시켰으나 아쉬움은 없지요.
희로애락이 가슴으로 물결치지
않기 때문인 까닭인듯 합니다.

오히려 입석을 타고 타니던 때
매일 콩나물같은 버스 신촌교통
142번 버스에서 머리핀 달아나
겨우 장승백에서 내린 그 기억과

대방동에서 104번 버스에서
소매치기로부터 여러번 핸드백
칼로 망가지고 피아노 레슨비를
날린 기억과 시계 잃어버린기억

예전에 한국에 소매치기 많았던
기억만 남았있어 소름이 돋네요
전철안에서 직접 코앞에 벌어진
사건들 제 옆에 있던 청년이 앞에
앉아 있던 아가씨 금목걸 낚아 채
바닥에 떨어 뜨리고 도망치고 앞에
대기한 사람이 주워 전철타는 방식

눈 감고 코베어 간다더니 그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가슴에 남아있어 맘이 안 좋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물건을 놓고 갔어도
그대로라 인터넷상에 한국에 대해
떠도는 게 진짜인지 의문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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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질문에 관한 답변입니다.

 

 

 

1) 식당에서 회장님에게 드린 조의금에 관한  답변입니다.

 

$100달러는 제 돈으로 드린 것입니다. 이유는 권온자님이 회장님 어머님 소천에 대하여 회장님 카톡을 받았는지 알고 있기에. 상당히 물질로 어려워하고 있어, 어차피 그분이 회장님께 조의금 준비한 것도 아니고 해서, 누가 드리든 회장님께로 들어가는 것이니, 제가 준비한 조의금을 권온자님이 준비한 것처럼 회장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구연산이 6통에 $100일 때 사서 병을 치료하고 싶은데 그 돈이 없어 그걸 못산다고 몇 번 전화상 제게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또한 너무 어려워 아는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그곳에 돈 안받고 갔다고 말해, 얼마나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셔서 살 길을 열어 주었나! 싶은 마음 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와이에 가서 그분의 이야기가 많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냥 살게 한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 줬는데 갚지 않아 그곳에 가서 빌려 간 사람이 집세를 내 주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김온자님이 자녀를 한국에 있는 집을 팔아 공부시켰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 것을 그곳에서 알았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장로님과 함께 [물] 사러 갈때도 제가 프드로 살 돈이 없다고 말했는데, 제 카드로 결제하라고 카드를 요구하여 그때 한 번 또 놀랐던 기억입니다. 본인에게 남은 프드스템프가 있으면서도 ...제가 늘 그 두[분들에게 뭔가를 사드렸더니, 제가 카드에 돈이 남아 있으면서도 본인들처럼 거짓말 하는 줄 알고 아니, 제가 자기네들 봉인 줄 아는지. 아마도 예전에 회장님께 과일 박스 선물한 것은 제가 사서 회장님께 드리게 한 것이라 기억 됩니다. 회장님도 아시는 일이지만 노인 아파트 들어 갈 때도 제가 목걸이 만들어 그쪽 메니저에게 갖다 드리게 했습니다. 과일도 사주려고 했는데 사줬는지 그것까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너무 어려워 하길래. 저는 그래도 프드스템프 카드가 있어. 늘 그것으로 원하는 분들께 베풀었습니다. 회장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회장님께 문학총무일 할 때 매주 과일을 사드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그저 인컴이 있어 돈은 정부로부터 많이 받지 않지만 프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침 점심을 먹으니, 절약하여 베풀수 있을 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하늘나라에 저축하고자 사람을 가리지 않고 베풀었습니다. 물론 전도하는데 많이 사용했습니다.권온자님에게 베푼것은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하는 것 같았기에. 늘 물질이 어려운 것인지. 너무 어려워 전화 할 때 마다 죽는 소리 해서 그냥 그대로 믿었답니다. 하와이 가서도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대접해 미안했는지. 너무 걱정해서 "그냥 준비한 돈이 없으면 가만히 계시라"고 신경을 쓰지 않게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 또한 배려 하는 마음으로 있다가 마지막 전날 푸드가 나와 그곳에 계신분들을 위해 먹을 음식과 선물용 초코렛과 커피를 사서 한 분 한 분께 선물하고 회장님께는 한국에 보내라고 커피를 드렸던 기억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장로님 호주머니에다 그리 돈을 많이 가지고 왔으면서 어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사러 갈 때 더 놀랐던 일은 권온자님이 물 값 나갈 까봐 장로님께 "아니 이이가 왜이래!"라고 막아서려 했던 기억에 그 때는 얼마나 물질에 어려움이 있어 물값이 얼마나 된다고 [상]을 탓으면서 물 값이 아까워 막아 설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 양반이 "아주 똑 같다" 싶어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납니다. 하여 그 사람을 알려면 함께 밤을 지새워 보면 안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지금까지 친구로 대우해 준 제가 바보 스럽습니다. 저는 그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모습이 안타까워 어떻게라도 그곳에서 탈출 시키려 등단 시켜드려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 시키라는 의미와 막내 며느리에게 절절매는 것 같아 당당하게 살라는 의미로 시인으로 등단하라고 권했는데, 제가 [봉선아꽃]을 회장님이 거의 다 수정한 것을 불보듯 뻔하게 알고 있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 작품처럼 말하였고, 신인 등단 작품 중 한 작품은 아예 회장님 작품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완전 자기 작품인 것처럼 시치미 떼서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입니다. 등단할 때 작품을 가지고 와서 허겁지겁 대충 고쳐서 권온자 글씨로 새로 써서 회장님께 드리게 했는데 ... 다 아는 것을 속이니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답니다. 회장님도 아시지만 성가곡에 관한 것도 마찮가지로 말해 기가 차더라고요. 권온자님이 보내 원문을 회장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회장님이 보신 작품그중 한 작품입니다. 지난 번에 성가곡으로 발표된 곡입니다.

 

==================================================================================보내 준 원본을 복사했습니다.

 

여호와는 찬송이시내/권온자

                                                                           

 

여호와는 찬송이시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면 낳겠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나고 꽃이피어 살구꽃이 되엇네

우물물아 솟아나라 우린 노래하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자

엎드려서 눈을 뜨는자의

어찌 그리 아름다울꼬

 

여호와의 심으신 세계가 백향목 같도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을 일으키는 자마다

주님의 찬송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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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기록한 것처럼 위 시는 권온자님이 보내 주신 원본을 그대로 복사해 올린 것입니다. 위의 시를 본인의 신앙고백으로 대비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제가  부부가 병으로 힘들어 해서 그들의 마음으로 다시 제 스타일의 시로 승화시켜  두 편을 같이 보냈는데 권온자님의 작품은 선택되지 않았고 제가 수정한 시가 선택되어 발표된 것이랍니다. 오히려 작곡가가 자기 시를 수정했다고 생각하여 제가 수정해 보낸것이라고 했더니, 다시 말을 바꿔 자기가 쓴 작품이라고 우기니 어이가 없네요. 회장님이 다 알고 계시는 일인데... 그런 이유로 권온자란 말이 거북하고 듣기 싫습니다. 하여 제게 더 이상 그 사람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 이름 생각하면 그냥 화가 납니다. 사역자가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 싶어 그런것 같습니다. [경정아]나 [김온자나 같은 부류사람같아 그렇습니다.

 

[[수정]]

[여호와 나의 구세주여]

 

여호와 나의 구세주여

내가 주를 찬양하오니

나의 찬양 받아 주소서

 

나의 삶에서 종일토록

주만 바라 보기 원하나

세상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가 병든 몸이 되어

주 앞에 지금 왔습니다

내 죄 용서하사 정결케

하여 주시고 [고쳐주소서]

 

주가 고치신다면 내가-----[이부분에서 나를 고치소서                                       

낫겠나이다. 주 십자가               그리하면 낫겠나이다]

보혈로 날 만져 주소서

 

주 날 불쌍히 여겨주사

날 구원, 날 구원하소서

예수십자가 보혈,보혈로

보혈로 날 만져 주소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나

[꽃 피어 살구꽃 됐으니] 부분만 작곡자가 뺀 것이랍니다. 성경상 맞지 않아서 삭제 시킨것 같습니다

 

주 날 불쌍히 여겨 주사                             (사실 그래도 권온자가 쓴 시어 하나는 넣어야겠다 싶었는데...)

주님으로 내 영 샘 솟아

생수의 샘 흘러 넘치어

주 찬양케하사  나 주만

주만 바라 보게 하소서

 

영광과 찬미 드리기 원해

이 시간 주께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받으소서

 

========== 권온자님께 보내준 작품을 제가 다 수정했다고하니 절더러 무슨소리냐고 오히려 반문하더군요.

 

본인이 쓴 작품이라고 우기더 군요. 너무 어이가 없어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 빨간색 부분의 밑줄친 부분만 권온자 시어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꽃 피어 살구꽃 됐으니] 이부분은 작곡자에 의해 제가 권온자 시어를 삼입한 것을 삭제 했으니, 어찌 자기가 썼다고 말할 수 있는지. 참 알수 없는 인물입니다. 제가 기가 막혀 회장님이 아시는 일이라 하소연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발표회가 끝나고 해변에가서 그 작품을 붙들고 감격해 울며 밤새 기도했더니, 병이 싹나서 제가 그 작품 제가 다 수정해 드리거라고 했더니, 오히려 제게 기가막히다는 식으로 말해 너무 깜짝 놀랐던 기억입니다. 경정아가 제게 자기에게 돈 언제 빌려 줬냐며 남편에게 줬는데 왜 내게 돈 빌려줬냐고 했던 식이었지요. 하여 제가 경정아씨에게 "난 당신 남편 알지도 못하는데 심부름을 남편에게 시킨 것 아니냐 왜 그런 거짓말 하냐" 라고 따졌던 기억이 나서 재차 [경정아]나 [권온자]나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싶어 그때 정말 정이 뚝 떨어 졌는데 왜 그리 그 사람을 밀어 줬는지. 그저 안타갑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권온자를 대상으로 단편 소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친구]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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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보니, 권온자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제가 마켙에서 물건을 사서 그것으로 가끔 전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무슨 과일을 주면서 전도 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 전도사라고해 전화 번호 받아 우리 아들 케어 하는 것을 연결시켜 줬습니다. 정부 보조 연결로 [경정아]님이 주 중에는 돌봐 주고, 토요일 주일은 권온자님이 돌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교회에 픽업만 해 주고 정부에서 권온자님께 수고비를 지불해 주었습니다. 수년을 하고 두어 달 남기고 어느날 어떠한 말도 없이 사라졌지요.전화를 해도 안 받고...그러다 장님목사님 (김숙영사모) 칠순 잔치 때 (예전에 문협에서 제가 부탁해 축사와 무용했던 수고비에 대한 댓가로) 제가 [남자 손님 넥타이]와 [여자 손님] 스카프 100명분을 준비해 드리고 사모님 부탁으로 장식할 꽃을 [식탁]과 손님 맞이 하는 길목에 세울 축화 만들어 갔는데 그곳에서 [권온자 부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그분들이 엘에이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도 없이 연결이 안되어 제 아들이 교회도 못 나가, 제가 섬기는 교회 같이 갔던 기억입니다. 그후 다시 제가 작품을 쓰라고 권유 했는데 예전에 신문에 발표되었던 작품을 가지고 와서 수정을 대충해서 제가 회장님께 몇 번 말씀 드렸던 까닭에 다시 연결 시켜 드린 것은 전화로 대화상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침통한 울분의 소리를 하여 무슨 심각한 상황으로 멘붕이 온듯 싶었습니다.제게 큰 아들이 세상 떠난 것을 말하지 않고 그저 가슴에만 삭힐 기가막힌 일이라고 울어 그냥 직감만 했습니다. 옛말에 "자녀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 말 제 언니와 오빠가 세상 떠났을 때에 친정 어머니의 애통한 모습을 알고 있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저 느낌으로만 알았답니다. 하여 뭔가의 돌팔구 만들어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밀어 붙인 것입니다. 시등단 후에 성시를 쓰라고 권유했습니다. 수 년을 만나는 동안 시를 쓰라고 늘 권고했지만 가지고 온 것은 그저 옛날에 신문에 발표한 시 5편 그것도 등단작품은 기.승.전.결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기에 제가 다 수정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예상이 맞았습니다. 하와이 다녀오는 길에 [이장정숙]시인의 시를 보고 이까짓게 무슨 문학상이냐고 해, 왜 그때 그런 맘이 들었는지.그제서야 느끼면 아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준 것이라 생각되어 제가 감짝 놀랐던 기억입니다. [이장정숙]그분은 시부분으로 상을 받았고 저는 시조부분으로 받았는데 제가 받은 곳에서 시부분으로 문학상 받은 작품을 이러니 저러니 하길래 기분이 상당히 나쁘더라고요. 제가 분명히 시를 이장정숙의 시처럼 쓰는 방법도 있다고 말 했는데, 그런 망말 "내가 써도 이것보다 더 잘 쓰겠다"고 문학상작품을 업신여기는 모습에 비로소 '야, 이 사람을 당선 시켰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생각되었습니다. 그저 전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실의에서 건져내려고 했는데 저의 큰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인데] 어찌 그런 말로 행동을 하는지...  일반 성도라면 그러르니 하겠는데 [전도사]라는 사람이 그런 사고 방식과 행동을 하니. 참 제가 부끄럽습니다. 물론 영주권 따기 위해 이곳에서 신학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전도를 많이해 [전도인]이라고붙여 줬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전도사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말이 안맞는 것은 분명히 공무원 연수받으러 갔다가 미국이 좋아 다 집어 치우고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분명히 말했거든요. 모든게 말이 안맞네요. 하와이에서 말한 말과 제게 말한 말들이 모두 다 달라 기가 차더라구요. 아무튼 저는 그저 권온자님께 같은 사역자라는 의미로

 

권온자님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싶어 회장님께 권온자님을 연결 시켜드렸습니다.그리고 한국에 다녀 올 때 제가 그곳에 지인들에게 아마도 꿀가루니 도브 비누니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싸 보내며 올 때 회장님 선물 잊지 말고 사가지고 오라고 했답니다. 무슨 선물이라고 지명은 하지 않았지요. 그런 것 까지 제가 말 할 수는 없지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하지만 전혀 준비해 오지 않아 제가 당황스러워 제가 아버님 댁에 사다 놓은 아마도 삼계탕에 넣을 한약 재료였던 기억입니다.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나 분홍색 비닐 커버로 황급히 포장하여 회장님께 벌몬과 올림픽이 만나는 곳 엘뽀로로꼬에서 식사한 후 드리게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권온자님을 피붙이 처럼, 또한 같은 사역자라는 입장에서 늘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었지요. 하와이 갈 때도 사실 권온자님 옷을 준비해 주느라고 저희집과 아버지집을 뒤져서 마지막 날 찾아내어 빨래 터에 갔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회장님께서 그때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오셔서 황급히 아드모어 빨래터에서 오느라고 제대로 하와이 갈때 제가 사용할 화장품과 몇 가지 용품도  못 챙기고 갔던 기억입니다. 그런 이유로 화장품을 빌려달라고 하니, 떨떠름 한 모습이라 빌리기도 그렇고 했는데 오히려 이장정숙님은 팩 까지 제게 주면서 얼굴을 가꾸게 하여 제가 그곳에 성백균 목사님 사모님을 위해 준비한 반지와 목걸이까지 고마워 모두 선물했던 기억입니다. 또한 엘에이에 올 때 비행장에서 검문에 걸렸던 것을 가지고 그곳에서도 불평하더니 본인 집에 가서도 전화상으로 시비를 거니 어이가 없더라고요.

 

 

 

저 때문에 자기 남편이 끌려가 수모를 격었다고 생 난리를 쳐서 어이가 없었지요.회장님도 잘 알지만 가방을 들고 갈 수 없다고 하여 그리 준비했었지만 올 때 물건 산 것이 있어 간편하게 하기 위해 옷을 다 입고 비행기 장에 갔던 기억 인데, 왜 옷을 그렇게 입어 자기 남편이 끌려가게 했느니 따지니.아, 이런 사람은 상종하면 안되겠구나 싶었기에 그후로는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답니다. 또한 지난 번에 카톡으로 말씀 드린 것 처럼 공황에서 회장님이 $5불 아끼려고 이리저리 출구도 못 찾고 끌고다닌다고 몇 번을 투덜 거리더니 집에 도착해 전화상에서도 다시 재차 말하니, 대 실망하였습니다.

 

 

 

회장님이야 손으로 가방을 쉽게 끌 수 있으니, 신경을 못 쓰는 것은 당연한 일, 주머니에 돈이 그리 많이 있으면서 원하면 본인이 카트를 빌리면 될 일이지. 왜 회장님을 걸고 넘어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도 새삼 휘날려 오기에 이젠 권온자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거려 제가 회장님께 권온자란 말 제게 꺼내지 말라고 했던 것이 랍니다. 사실 회장님의 답변도 이제야 하는 것은 8가지 질문을 당시 복잡한 일로 일일이 쓸수 없었지만 권온자란 말에 숨이 턱 막혀 와서 기 까지 막히고, 코가 막혀왔던 것에 대해 양지 바랍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세월속에 피어난 우정이 아닌 장사치!라 싶은 마음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답니다. 더 이상 정죄하고 싶지 않습니다. 엘이이엔 정말, 이상한 사람이 참으로 많구나! 상식 이하의 사람... 그저 그리 생각하고 넘어 갑니다.

 

 

 

2) 예전에 백지영 목사에 대한 티켙에 대한 답변입니다.

 

회장님께서 솔로몬 대학에서 강의 한 강의 비를  찬양 티켓으로 받았을 때 저에게 팔라고 하셨는데 그 티켓 값 4장인가 팔고 남어지는 다 제 돈으로 지불했다는 소리입니다. 그 말은 제가 그당시 회장님께서 지회에서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 불편함을 카바 해 드렸다는 의미로 말씀 드렸다는 의미로 회장님께 신경 썼다는 의미입니다.자판 두드리다보니 잊었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올라 자판을 친 것 같습니다. 앞 뒤는 읽어보지 않고 질문만 현재 보고 제가 회장님께 답변을 하고 있어 양지 바랍니다.

 

 

 

3)팔이 부러졌다는 답변입니다.

 

 

 

당시 팔이 부러진 것이 아니라 책을 운발하고 김문희씨에게 책을 어디에 놓냐고 문의하고 [작가의 집] 현관을 여는데 도와주시는 분이 차에서 카트에 책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트가 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어.순간 "부딪히면 파킹랏에 대미지가 갈 것 같아 일하고도 욕먹겠다 싶은 생각에 황급히 뛰어나와 카트의 손 잡이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굴러가는 상태라 잡는 순간 카트가 오른 쪽으로 기우려져 제 어깨가 돌아갔답니다. 하여 그당시 아버지 집에 있는 마취가 되는 파스를 붙이고 활동 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며칠후 자다가 천정이 떠나 갈 듯 괴성을 지르게 되었지요. 그후 1년 6개월 넘게 잠을 못 잤습니다.어깨를 사용 못했지요. 병명은 [회전근개 파열] 덕분에 제 얼굴이 10년 늙은것 같네요.그 덕분에 이젠 하나님께 돌아갈 날을 준비해야 겠다 새롭게 느끼고 삽니다. 예전에 저는 바지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개근개 파열이 된 후엔 옷도 신경 써서 못 입고 그저 바지만 입고 다니게 되어 지금은 참 바지가 편하다고 생각해 즐겨 입게 되네요.

 

 

 

제가 수술하면 치료기간이 3개월 이라고 하는데 제가 수술을 택하지 않고 민간요법을 사용했습니다.그것도 양로병원에서 당시에 기도회 인도 하는데 예전에 소천하신 어머니 다리 부상으로 양방 한방 치료에도 효과가 없었는데 목사님께서 알로에 붙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갑자기 나서 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일주일에 여러번 그리했습니다. 붙일 때 마다 어깨에서 팔뚝까지 피부가 붉게 되고 열이 났었지요. 아마도 염증이 알로에가 빨아 드려서 그런 명혈 작용이 일어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러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가려움에 시달렸지요. 지금도 100% 낫지 않았으나  그 여파로 팔을 잘 못 쓴 답니다. 무거운 그릇도 못 들어 그냥 떨어 뜨리곤 합니다. 덕분에 2017년부터 아이들이 빨래는 도맡아 아직도 하고 있지요.

 

 

 

하지만 감사한 것은 당시에 손으로 자판 두드리는 것도 저려와서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만 누우면 시간 떨어져 파스로 통증을 억제 시키며 작품을 써 내려 가 지금도 그때 손을 놧으면 아마도 시를 쓰지 않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며칠 쓰지 않으면 꿈에 시를 쓰고 있어 계속 시를 쓴 것 같아 하나님의 영이 저와 함께 하셨다고 주님께 감사꽃 피우고 있습니다.

 

 

 

4) 이휜 다음에는 타지역에 사시는 여자분입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의 여자친구입니다. 그 집에서 엘에이에 오면 같이 지낸다고 그분이 말해서 기억납니다. 영상시는 꽃에 대한 것이었던 기억입니다. 찾아보면 이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홈피도 만들었던 분입니다. 아마도 이춘실이라 싶습니다. 이름이 옛날 이름이었던 기억이라서요.

 

 

 

5, 6)에세이포레 등단 제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회장님께서 작년에 제가 문학상 추천할 테니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여 한국에다 기도 동역자들에기 이유는 회장님끼서 번번히 말씀만 하시고 항상 타인에게 상을 추천해 주셨거든요. 문학의식에서도 이훤에게 넘겼으니까요. 또한 전달문고문님의 문학상도 저를 추천했다고 하셨는데 서용덕시인에게 돌아갔습니다.저는 한마디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장님께 누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장님이 저를 편애 한다고 문인들이 생각할 까봐. 하여 무슨 상을 추천한다고 하시면 그저 잠자코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세안 포럼 문학상 2017년도에 받아왔다고 한국에서 이메일로 제가 말씀하셨지요. 그때는 제가 많이 기대했습니다. 작품도 많이 썼고. 당시에 제 작품이 한국에서 문화방송[밑줄친 여자] 강민선 아나운서를 통해 여러 작품이 방영 되었고, EBC 교육방송 배우 [정애리]에 의해 소개도 되었고, 100여 편이 홈피포 입양 되었기에 이제는 상을 받아도 회장님께 누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기억에 큰 언니가 종로에 거주하고 계셔서. 품체나 모습이 저와 많이 닮았기에 대신 상 받으면 된다고 까지 말씀드렸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이미 회장님이 받아 오셨다고 했습니다. 허나 그 때도 샌프란시시코 시조 시인[임문자]님에게 돌아갔던 기억입니다. 늘 회장님께서 그리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그분과의 교제가 있어 그리 한 것 같습니다. 그때 아마도 그분이 http://kwaus.org/index.php?mid=bulletin_board&page=6&document_srl=47250  제 5회 해외부분 서천 문학상 시조부문 상 받기 위해 한국에 가신 것 같습니다. 제 추측입니다..그해 제게 주신다는 상을 임문자 시조 시인께 드렸지요. 그때는 많이 서운했던 기억! 그 이유는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아버님께서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때 회장님께서 못 오신다고하여 혼자서 이러고 저러고 하다 회전근개 파열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으니까요.

 

 

 

회장님 이번에는 제 생각에 이제 문협과 인연도 어느 정도 깊어 한국 기도동역자들에가 회장님께서 추천하신다고 하여 제가 기도 요청했던 기억이납니다. 그 이유는 한국 [문학의식]101호에 저를 미주 수필가로 [공원에서]를 회장님께서 추천해 주셨기에 저는 이곳에 결코 신문사에 수필을 응모하지 않았습니다. 이곳 문협에 회장님께서 수필가로 가입시키 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제가 회장님께 두 작품 (수필) 보내 드릴 때 회장님께서 서울문학에 신인상 추천한다고 하셨을 때 그곳에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에서 10월의 작가상을 받았는데 다른 부류의 문학상이 아니고 수필로 신인상을 받든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고 [김홍숙]이나[박영옥] [이숙]을 전화상으로 이렇게 써라 초창기에 저렇게 써라 그리 지도해줬으며,[조정숙]그분은 크리스천 문학지에 등단했지요. 그분은 아예 시간] 잡아 만나서 이런 식으로 쓰라고 권면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홍숙]이나 [이숙]그들이 신인상 받은 곳에서 받는 다는 게 이치에 안맞는 거라 싶어 제가 사양 했던 것 입니다. 회장님께서 당시 회계 맡으신 [유태경] 수필가로 인해 교육받는 분들이 다 떨어져 나가 제가 전화 번호를 주시면서 섭외하여 나오게 했었지요. 하여 [이숙]이분은 작가의 집에서 소설 평가에 사기가 죽어 작가의 집이라면 치가 떨린다고 절대 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여 [최인호]작가도 소설 가작으로 등단했지만 유명한 작가가 됬으니 거기에 연연하지 말라고 매주 전화하면서 수필을 읽어주며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절대 오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거북이 먹이를 준다고 운운하면서 오게 했겠나요! 다운타운에서 가방  파는 분[박영옥]그분도 얼마나 나오는데 얼마나 뺀질뺀질 힘들게  했는 데요. 그런 분도 제가 매주 전화해 제 수필 읽어 주면서 쓰게 된 동기를 전해주며 이끌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지금 기억이 다시 납니다. 2013년도에 회장님께서 제가 쓰는 서정 수필이 마음에 든다고 수필로 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여 서울문학에 작품을 추천해 주시겠다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대신 [김문희]고문 작품이 추천되었습니다. 그것도 회장님께서 작품을 다 고쳐 내셨던 기억입니다. 제가 또렷이 기억 나는 것은 김홍숙에게 수필 개인적으로 가르칠 때 도서실에서 원본을 나눠 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작품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너무 엉성한 작품이었답니다. 하지만 수필가니 제가 평가 할 수 없었기에 그저 형식적으로 대답했는데 이게 잘 썼냐고 반문했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억에 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파피꽃 피는 들녘]이란 책을 재 발행 하면서 그 작품이 그곳에 수록되어 있어 다시 한 번 놀랐답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이 또렷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그때 왜 작품을 360도로 고쳐 주시냐고 반문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별개 다 기억이 납니다. 그후 우연히 이곳 피어피코 도서실에서 정크리스천의 작품[말의 힘]을 읽게 되었는데 문학의식에서 [자기와의 견해]라는 글이 실예까지 거의 같아 회장님께서 정크리스천에게 써준 작품을 기억 못하고 [문학의식]에 내셨다고 생각 되어 그 문예지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제가 회장님 홈피에 올려 놓은 것을 내려 놓으시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회장님께 혹여 피해가 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오해 했는지 그때부터 절 미워했던 기억입니다. 아무튼 회장님이 남들 앞에 보란듯 항상 핀잔하셨으니까요. 내가 왜 그런 대우를 회장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지 그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지요. 하나님은 어느 것 하나라도 만홀히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협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이라 그저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 할 뿐입니다. 제가 섬겨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지요.제게 문협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니까요.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권온자 님의 질문으로 다시 들어 있어 권온자님애 대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석류가 사는 곳에 많이 있다고 하여 그럼 여자에게 좋으니 회장님 사모님이 좋아하시겠다고 말씀드리며 회장님께서 과일을 갈아 드실 때 함께 갈아 드시라고 제게는 주지 말고 회장님께 선물하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7) 회장님께서 서용덕님께 추천하기 전에 먼저 회장님께서 제가 전달문고문께 추천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서용덕님이 상 받게 되어 서용덕님으로 넘어 간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해 였는지 다시 말씀해 주셔서 회장님께서 전달문 고문님과 함께 올림픽과 알바라도에 있는 엘뽀로로꼬에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하지만 소천하셨던 기억입니다. 사실 그래서 제가 기회란 항상 있는게 아니라고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노인회 회장이 세운 교회 사역할 때  배정문님을 소개 시켜 준다고 동생 배문한 친구분 아마도 노인회장 박혐만장로님의 시돈간이었는지 그분이 제게 그리 말씀했지만 그때는 제가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장님은 여기저기 붙어서 상받는 사람을 제일 싫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8) 회장님께서 한국에 방문 할 때 제가 홍삼 꿀을 전해 드리면서 봉투에 작품을 드렸습니다. 그 작품 중 시를 한국의 문학지 5군데인지, 그것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언제인지 제 작품이 인터넷에 서울문학 봄호에 게재 된 것을 발견하고 말씀드리니 5군데 추천해 게재했다고 "책을 안 줬냐"고 물어봐서 안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회장님께서 미주 문인협회 홈피를 만드실 때 부산여성문인협회와 연결하여서 낭송 할 때도 회장님께서 제가 드린 작품에서 골라 만드셨습니다. 제가 따로 드린 것이 아니라 늘 회장님께서 제 작품을 그리하셨습니다. 아마도 2014년도 이겠지요. 작품은 2013년도 작품이라 싶습니다. 제가 그 작품을 찾으려고 한 것은 지금 스타일하고 많이 달라요. 지금은 영상시를 위해 연이 길지만 당시에는 시들이 다 짧았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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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난 곳이 용산이라
한강에 대한 추억이 가끔 나
몇 편의 수필 썼던 기억나나
60여 편의 수필과 70여 편
오래 전 한국에다 등단시켜
달라고 추천 부탁했는데 그
중 시는 몇 편 미주시인으로
5곳 이상 문학지에 싣고서는
분실했다고 주시지 않네요

그것도 우연히 제 작품 인터넷
상에 떠도는  S 문학지에 게재된
작품발견되어 어떻게 됐나 전화
걸으니 그제서야 잊고서 책 전달
못했노라고 답하더니 무소식...

은파가 알기로는 원고비 한국에선
나오는 걸로 아는데 그걸 치사하게
물어 볼 수도 없고 상을 줘도 일체
상금도 주지도 않고 되려 물어보면
한국에서 상 받고자 하면 식사비니...
5천불 이상 든다느니. 대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거린 답니다.


은파 노트북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두 편 프린터 후 USB에 저장한 것
스파 안에 가지고 가 모든 자료들
찜질방의 열기로 다 날린 것인지
내용이 사라져 마음이 힘들었는데

프린터 한 내용도 없어졌다고해서
막막하더군요. 한 부는 한국 시인께
드렸기에 메일로 서로의 안부 주고
받으며 그 시 내용 70편 정도 뿐이니
사진 찍어 보내 주라고 했더니 무소식

이곳도 댓글 쓴 시조는 다시 옮겨놔야
된답니다. 예전에 Q라는 닉네임 갖은
문인에게 지극 정성을 다해 밤새도록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당시에 시
앉았다 하면 10편 이상 쓰던 때여서
시로 상당한 작품을 직접 써 올렸는데

거의 일년 후 그곳에 올렸던 시를 은파
창에 올리려고 열어보니 모두 삭제 해
없어져 뒤로 넘어갈 정도로 맘 상해죠.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시에
늘 댓글로 주고 받았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 작품을 모두 삭제 했는가에
시집 발행하기 위해 삭제할 것이라고
댓글로 달아 주는 것이 예의라 싶은데
아직도 Q라는 문인 이해가 되지 않죠.

그 문인 [시사랑 백과] 나도 시인이란
곳에 기타 작가로 Y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어 문인이 되기전 올바른
생각을 갖고 글을 쓰라고 말해주고파
지던 걸 꾸욱 참고 있답니다. 지금도
Y라는 문인 이름만 생각해도 그 당시
힘들었던 마음이 떠 올라 지곤 합니다.


분명 바로 댓글란에 댓글에 시를 쓴다는
걸 알면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한 행동!!
두고 두고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다른 문인 역시 그 일로 인해 Q라는
문인 B라는 닉네임의 문인에게 한 방 크게
여기저기 글로 먹더니,이름을 내 밀수가
없었는지 결국 [창작의 향기방]떠나더군요.

[시인의 향기]방에는 본명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해 닉네임이 [꿈길따라] 만들어
계속 이곳에만 글을 올려 놓게 됩니다.


언제인가 중편소설 [글목에서 글숲으로
가는 길]이란 작품 쓰려고합니다.허나
중편 소설 쓰고나면 몸이 아프니 엄두도
못내고 있어 그저 시조나 시만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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