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이상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다"
은파 오애숙
가끔 잘 나가다 돌출 행동하는 이가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인 뇌로 사건 전환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점 갖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 주기 때문에 막대한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등...
타인에게 피해 줄 수 있으며, 자신이 쌓아 올린 공든 탑 마저 무너지게 할 수 있다.
세상사에서 현실의 초점 자기에게 맞추기보다는 망원렌즈 적 사관으로 볼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기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극과 극으로 달리고 하물며 자기 행동을 덮으려고 잘 된 상황을 거꾸로 위에서 밑으로 내리려고 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임에도 추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자행한다.
타인의 삶에 찬물 붓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인지. 아니면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인지. 자기 자신의 행위 외면한 채 그리 살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만들고 있는 것이 그네들의 일상이라 싶다. 아침 드라마 보며 현실 속에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이나 주변 지인의 한을 들어 보면, 어찌 현실에서 저리 장난 치고 있는 가!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봄날의 물 안개처럼 피어 오른다.
시장에서 무를 사오신 어머니께서 도마에 무를 올려 놓고 자르셨다. 어린 시절에는 김치 만들기 위해 사 온 무. 어머닌 무청 바로 윗 부분을 잘라 간식으로 주셨던 때 였다. 겉은 말짱했다. 하지만 칼로 내리 치니. 속이 숯처럼 새까맣다. 신기할 정도였다. 어찌 그 곳에 까만 숯이 들어가 있는지. 어머니가 마치 요술을 부린 듯 했던 기억 속에 어머니의 말씀이 또렷이 생각난다.
내 어머니의 말씀은 “사람도 겉은 말짱해 보이는데 여러가지 사건을 만나면 이렇게 되고 만다. 너는 살면서 남에게 속 타는 행동으로 사람을 속 태우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라. 네가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너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거든….”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어머니는 내게 있어서 올바른 몽학선생 이었다. 하지만 난 내 아이들과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소통이 안되고 있다. 대화를 하려고 하면 동문서답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 소천하신 후부터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오면 대충 음식을 만들어 주고 아버님 저녁 식사 준비로 집을 떠나 다시 집에 돌아 와 다시 음식을 만들어 준다.
4년 이상이나 하다보니. 어느사이 대화가 단절 되었던 것이다. 요즘들어 정신 곧 춰 세운다. ‘이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 되겠군. 이래선 안되겠지.’ 대화 기대해 본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아들은 통 입 열지 않으려 한다. 그래, 서서히 다가 서자. [천리길도 한 걸음]이라고. 혹여 엄마가 섭섭하게 하여 마음 문 닫았다면 무엇 이었을 까? 생각해보며 기억 난 것부터 사과 해야지. 진심으로 자길 사랑한다고 느낀다면 마음의 문이 열리리~ 조금 내 맘 타들어 간다고 해도...'
오늘 따라 "행동은 이상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다"는 문구가 나를 새롭게 재 창조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