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데 아무 일도 없겠느냐 / 성백군
산길을 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진창이 앞을 막는다 멀쩡한 날씨에 웬일이냐고 하였더니 사람 사는데 아무 일도 없겠느냐고 하면서 어제 내린 비가 댓글을 달아 놓았다
갇혀서 얽힌 수많은 발자국 이건, 부도 만나 파산한 것 저건, 명퇴당해 허리 꺾인 것 사기, 사고, 배신, 이혼, 등 살다 보면 있을 법한 일들이 언저리가 찌그러져 발자국 같지도 않은 발자국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새로 산 등산화에 흙 묻는 것이 싫어서 발끝만 보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까치발로 마른 땅을 골라 디디며 열심히 걷는데 딱, 하고 번개가 번쩍인다 길가 나뭇가지가 내 이마를 쳐 진창으로 밀어 넣는데 한쪽 발이 발목까지 완전 진흙이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래, 이만하길 다행이다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당하지도 않았다며 어느새 뻣뻣해진 목, 낮추라고 딱! – 늦었지만 겸손을 배우게 된 것- 진흙투성이 등산화 한쪽을 벗어 신주 모시듯 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길을 간다.
662 - 0308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