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수채화
은파 오 애 숙
얼마나 오랜만인가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서 잊혀간 세월
따듯한 한잔의 커피로 목축이며 사르르 녹아내리는 마음에
광화문 네거리의 찻집에서 그 옛날 비 오던 날을 스케치 한다
밖이 훤히 보이는 찻집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소리다
코끝으로 다가오는 커피 향에 옛 추억이 낙수 되어 맘에 녹아들듯
오랜 친구의 손 마주 잡아 흘러간 옛 예기와 함께 빗속으로 들어간다
억수비가 창문 타고 밤새도록 포르테르로 피아노 건반 쳐 내려가듯
창문을 타고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한꺼번에 폭포수로 내린다
빗방울이 흘러내려 들로 강으로 가다 모여 바다로 흘러가듯
다시 바다로 흘러간 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 만들어 꽃 비가 되었다
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가 시시몬으로 음률을 타고 들판에 내린다
내 가슴에도 에머란드빛이 출렁이련만 가슴속으로만 스며들고 있네
메마른 땅이 방긋 웃더니
햇살 속에 갈맷빛이 반짝이고
나들이 나온 꽃봉우리가
여기저기서 군무群舞로 재잘거린다
창문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이
강으로 가고 바다로 흘러가듯
들판에 에머란드빛이 출렁이지만
메마른 마음에는 아직 겨울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