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을 그 어느 날의 초상
은파 오애숙
가을이 성큼 다가와
여름을 밀어내고 있다
텃밭에 심었던 호박씨가
갈맷빛에 반짝이더니
제 울타리냥 모두 밀어낸다
늦머리로 활개 치려던
토마토 콩 깻잎 파들에게
너희들은 새 발의 피다
호통치며 갈맷빛에 날개 친다
허나 가을이 주례자이던
벌과 나비가 밀어내고 있어
맥 못 추련만 그것도 모른 채
제 잘난 맛에 으스댄다
밤이 길어진 탓일까만
소슬바람 밤하늘 덥고
귀뚜라미 찌르륵 차가운 밤
달밤에 체조하고 있어
가을이 호박 길섶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