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조회 수 269 추천 수 0 2018.06.27 05:52:49

단편소설

 

                                      

 

                                                                                                                                                                                        은 파

 

진희는 베란다 넘어 펼쳐져 있는 들녘을 바라본다. 해거름 뒤로 어둠이 들판을 집어 삼킬 때까지 우두커니, 땅거미 지는 것을 바라보며, 지그시 눈 감고 생각에 잠긴다.

 

정이 뭐고, 용서가 뭔지.’ 생각의 물결이 그녀를 집어 삼킬 듯 파고 친다. 썰물로 내면 깊숙이 파고치는 스미는 아픔이다. 하지만 용서의 의미를 신중히 영영이라는 단어와 함께 심상(心狀)이라는 무덤에 집어넣으려고 골백번도 더 생각해 본다. 어두움 저쪽 끝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나부낄 때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휘저어 버린다. 용서란 어떤 사실을 묵인한 채 껴안은 것일 테고. 망각한 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갑자기 용서와 망각이란 함수관계를 그려보고 싶어졌다.

 

망각이란 발생한 어떤 일에 대한 사실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망각이라는 것은 사는 동안 기억의 상자 속에서 휴화산이 되지만 언제든 그 실체가 마그마를 분출하는 살아있는 활화산이 된다고. 진희는 그 이치를 잘 알기에. 그녀의 인생철학은 법의 태두리 안에서 상부상조 하되 좋은 것으로 도움을 받았을 때는 꼭 기억해서 언제곤 형편이 좋게 되면 제곱의 제곱으로 갚아야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진희에게 있어서 가희의 이율배반작적인 행동은 허망한 쓴 웃음으로 사상 누각되어 맴돌았다. 다시 망각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나, 역시 망각이라는 것은 언제든 한쪽 구석에서 누에고치로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나비가 되어 나풀거리게 될 것이라고. 반면 용서란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는 것이기에 벌어진 일에 대해 꾸짖지 아니하고 너그럽게 놓아 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망각에 대해 몰입해 들어가니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생각을 낳아 다른 각도에서 다른 또 하나의 각이 탄생되었다.

* * *

진희가 아이들에게 수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이 없이 챙기는 것이 있었다. 큰 아들 머리맡에 가서 기도 해 주는 일이었다. 특별이 진희가 기도할 때 꼭 챙기는 것은 마무리로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다. 그녀의 바람은 아들이 생활 속에 적용시켜 그분()의 뜻을 따라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 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 옵시며 ~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진희가 아마도 아들에게 들려준 것 만 해도 수 천 번은 읊조렸을 거다. 아들이 뜻을 알든 모르든. 하지만 생선가시 하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다 걸리듯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 죄를,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망각과 용서의 함수관계는 삼척동자도 아는데……. 그녀의 입속에서는 소가 여물을 꺼내어 되새김질하듯 어둠이 들판을 집어 삼키려 할 때부터 계속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물끄러미 어둠 속을 빨려 들어가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본다. 진희는 지금의 상황에서 <가희>의 얼굴을 애써 지우려는 듯 생각 속에서 용서란 단어를 입속에 물고, 씹던 껌과 함께 질겅인다. 그러고 보니 한 시간도 넘게 씹는 중이다. 하지만 계속 입속에서 껌을 꺼내 휴지통으로 날리지 않고 계속 씹으며 중얼거리고 있다.

 

아귀가 아파왔다. 아귀가…….

* * *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다더니. 용서 안 되는 일이 그녀 마음에서 깃발이 되어 나풀거린다. 해거름 뒤로 어둠이 들판을 집어 삼키듯 그녀를 삼키고 있었다. 반추하는 순간. 어둠의 그림자가 그녀 속에서 음예공간으로 그녀를 꾹꾹 짓눌러 숨통을 막는다. 혼절할 듯 한 상황이라 정신이 먹먹해졌다. 얼마 전 일인데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사건을 멀리 배 띄우듯 멀리 보낸 듯, 아득하게 멀게도 느껴지기도 했고, 수십 년도 넘는 일처럼 희미한 가로등 같이 생각도 되었다. 며칠째 물도 넘어가지 않더니 영양 실족에 걸린 것 같이 정신까지 몽롱해지기도 했다.

진희가 가희를 생각하니. 이런 경우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일 거라 생각되었다. 그렇다. 열 길 물속은 알지 못해도 한길 사람 속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한길 사람 속을. 한길 사람 속…….

 

가희는 진희를 수미진 아픔 속으로 몇 년을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하지만 매사 진희의 긍정적인 관점은 생활 속에서 콧노래를 절로 나오게 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구. 암 있구말구. 언제인가 일이 잘 풀릴거니 힘내세요. 그녀는 늘 그가 믿는 유일신의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그녀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희에게 넘치길 기도했다. 진희에게 가희를 향한 그런 끈끈한 정이 있기에 위로하며 가희의 푸념을 들어주며 친 자매처럼 살아왔다. 그녀의 뇌세포에서는 긍정이라는 세포가 끊임없이 생산되어 누군가 가희를 놓고 부정적인 말로 그녀의 생각을 뒤집으려 한다면. -아니야, 그렇지 않아. 긍정의 세포가 가희 속에 자리 잡고 있기에. 누군가 그녀에게 불행을 선물로 건네 준다해도 그 모든 것을 포용하듯 해맑은 미소 속에 -내일이면 쨍하고, 해 뜨리다. 하지만 지금 진희 앞에 도래된 상황에 갑자기 나락 끝이 어딘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턴가 어두움 속에서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엄마, 비 오는데 안 들어오시고 뭐하세요.”

엄마 걱정하지 말고. 이빨 닦아. 그리고 성경 읽고 방에 들어가서 코하고 자거라.”

희미한 등불아래 우두커니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그녀 앞에 떨어지는 빗방울 끝은 땅 바닥인데. 진희의 현실은 상황의 빗방울이 우주공간으로 떨어지는 듯 계속 낙하되어 떨어져 가는 듯 했다. 갑자기 비가 우주공간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 졌다. 끝도 없이 우주공간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휘 저었다. 순간, 큰 아들이 열린 수업 시간에 물의 순환과정을 설명하던 것이 기억 난 것이다. 조 대표로 제작한 디오라마 박스를 통해 학생들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 그렇지. 비는 해면에 이글거리는 태양열에 의하여 기체가 된 수증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이 형성되었다가 무거워지면 물방울로 다시 떨어지는데 그것이 비라는 것을.

비 비 비 비 비 .......

 

비가 내린 후에는 청아한 날이 우리를 반겨주는데. 현실의 비는 언제까지 음예공간을 덮고 내릴 것인가.

구름은 만류인류법칙에 의한 것인지. 대기권 밖으로 떠나지 않고 지구 표면에 머물러 있다가 일정한 무게 속에 머무르다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하면 빗방울로 산천초목에 향기로 적신다. 우주 삼라만상을 생각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인간을 위한 걸작품이다. 산천초목이 춤추며 들판에 향기로 스미는 물방울로 인해 재창조되어 새순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여 향기로 노래한다. 우리 주변의 허접쓰레기조차도 리사이클 되면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창조된다. 하지만 우리 안에 회청색의 우울한 음예공간을 만들어 어떤 이들은 그것을 승화시키지 못해 결국 고귀한 생명을 헌신짝처럼 휙, 던져 버리듯 제 스스로 끊어 버린다.

 

진희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화면이 뇌리 속에서 서성인다. 며칠 전 티이비 화면이다. 하지만 무슨 프로그램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신문을 보다 귀가 쫑긋 세워져 화면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진희의 기억에는 구호 단체의 구제로 화제의 주인공 어머니가 안구기증을 받아 수술 하게 되었던 일이다. 수술 후. 붕대를 어린 아들 앞에서 푸는 장면이었다. 진희가 바로 이 장면을 본 것이다.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간이 조마조마 했다. 과연 안구기증으로 눈이 열린 그녀가 무슨 말을 아들에게 할 것인가. ‘우와 잘생긴 내 아들. 아니면 아들아, 얼마나 고생했니........’ 붕대를 푸는 짧은 시간에 진희는 엄마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 봤던 거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희의 예상을 뒤집었다.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좋은 일로 우리도 남에게 도움을 주자.

 

남에게 좋은 일로 도움을 주자. 도움을…….

 

딩동댕! 빙고. 진희의 가슴에 심금 울린 것이다.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딩동댕 소리가 진희의 숨을 멈춰 버리게 하는듯 했고. 가슴에서 출렁이는 파도는 파고치며 순식간에 눈물로 통곡의 벽을 쌓게 했다. -남들이 당신 아들, 참 잘생겼다. 라고 말할 때, 장님으로 살던 한평생! 얼마나, 얼마나! 아들 얼굴이 보고 싶었겠는가. 헤아릴 수 없는 수많고 많은 날들. 꿈속에서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하늘에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에서는 마치 주기도문의 내용의 일부인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사하여 주옵소서.’가 바뀌어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좋은 일로 우리도 남에게 도움을 주게 하옵소서.”

 

두 문구가 깃발이 되어 진희의 눈앞에서 펄럭였다. 하지만 진희의 입속에서는 여전히 질겅이는 껌과 그녀의 침이 바늘과 실이 하나 되어 옷을 꿰매듯 입속에서 껌이 이빨과 이빨 사이를 오가며 뇌리 속에서 맴도는 용서라는 단어를 잘게 씹으며 뇌리 속에 각인 시키듯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껌과 함께 침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용해시키려는 듯 계속 질겅인다.

 

***

시작은 그랬다. 돈 있으면, 일주일 후에 줄 테니, 빌려 달라고 직선으로 말하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돌 듯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도무지 관심 밖의 일들을 전화로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 꺼냈다. 이번에 상을 받아 금 다섯 냥을 받게 됐단다. 또한 모든 작품이 자기 손에 걷히지 않으면 상도 못 나간 단다. 모든 일 들이 자기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듯 걸쭉하게 늘어 놓았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생겼단다. 집을 허가 없이 고쳐 사용하여 정기점검에 걸려 다시 집을 구조조정 해야 한단다.

 

가희는 그 말을 꺼내기 위해 이야기를 뱅뱅 돌려 이야기를 한 시간이 넘게 한 것이다. 결론은 돈이 필요하단다. 진희는 안 되었다 싶었다. 마침 보증금과 방세 받은 것을 손에 쥐고 있는 터였다. 안되었다 싶어 선뜻 그녀의 손아귀에 움켜잡고 있는 달러를 가희 손에 넘겨주기 시작한 첫 단추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 어긋나는 이치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그것을 눈치 못 채게 어망을 쳐놓고 서서히 강둑으로 고기를 유인하여 교묘한 수법을 써서 낚아챈다. 진희는 가희와의 관계 속에서 그러기를 3년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3년이 넘어서야 올가미에 걸려들은 물고기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부인하듯 아니야, 결코 가희는 덧을 놓는 올가미는 아니라고.’ 또한 자기 자신은 절대 올가미에 걸린 물고기가 아니라고. 오히려 가희와 진희는 서로 물고기가 되었다가 물이 되는 그런 존재임을. 스스로 위로하며 진심으로 가희가 잘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주여 그녀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일용할 양식을. 양식을…….

진희는 어떻게 가희의 사건에 말려 들어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그래 가장 흔해 빠진 이름 끝에 붙은 , 자 때문이지. 내 이름이 진희라는 것을 알고 아이고 내 사마 내 동생하고 어째그리 이름이 똑같누. 삼년 차이니 우리 친구하면 딱이네.” 그 이후 언니 동생사이가 되어 물고기가 되었다. 물이 되었던 어느 날이다. 현금과 수표가 왔다 갔다 하던 어느 날부터 문제가 하나씩 튕기 쳐 나왔다. 입금시키면 바로 현금화 될 수 있는 수표가 차츰 밀리게 되어 비망록에 차곡차곡 쌓인 수표와 받지 못한 수표가 칠천불이 넘게 되었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그 여자는 쓸 것 다 쓰는 여자라고요. 그 여자! 자기 과시에 먹고 사는 그런 여자예요. 진희는 갑자기 진희 말이 꼬리치며 눈가로 다가왔다.

진희의 한자어는 참 진. 기쁠 희다. 가희라는 한자어가 가:아름다울 가. :성 희다. 이름의 뜻이 근본을 뜻하는 의미로 근본이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의미의 이름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의 뜻은 가(거짓 가). (:놀 희. 희롱하다 탄식하다)의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진희가 가희의 이름이 한자어를 근본이 예쁘다는 뜻의 佳姬로 쓰는 줄 알고 -너무 이름이 예뻐요.라고 말하자. -그 이름에 불만이 많아요. 거짓 가에 희롱 희가 뭐예요. 아 그래요.......

 

진희는 사람이 이름대로 된다더니. 설마 하였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기억난 것이다. 갑자기 신경이 곧추 세워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되었다. 차라리 들어올 구멍을 막어 버리자. 남 좋을 일 해. 병만 생겼다. 들어 올 구멍을 막고 보니. 더 이상 들어 올 곳이 없었다. 나올 구멍이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자기 주머니에 채우듯 진희가 두 아파트 빌려 돈이 부족하면 한곳으로 짐을 싸들고 들어가고 다른 한 곳에 임대하여 벌어들이는 수익을 말 했다.

진희는 그것으로 지금까지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별 무리 없이 지내 왔다. 결국 가희를 위한 일이 된 것이다. 재주는 진희가 부리고 가희가 그 돈을 권모술수 인기웅변으로 진희의 순수함에 사기 친 것이다. 서울 사람이 시골사람 등쳐먹듯, 아니 먼저 미국 땅에 발 디딘 사람이, 나중에 온 미국 생활에 어리숙한 한국 동포를 등쳐먹듯, 유유히 진희가 간직한 그녀만의 곶감을 하나씩 진희는 가희에 의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가는 것도 모른 채, 그녀 스스로 그 노무 정 때문에 내 놓은 것이다.

그녀는 그날도 수표에 기록한 날짜가 되었다. ‘예전처럼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참아 주면 될 텐데.’라는 아쉬움이 오히려 조금 더 도움을 주지 못함에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 되었다. 진희가 정 때문에 갖고 있는 곶감을 하나씩 가희에게 주고 나니. 어느 날부터 렌트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었다. 날짜에 기록한 대로 통장에 입금 시켰다. 하지만 가희는 한마디 말도 없이 부도를 낸 것이다.

진희는 부라부라 은행에서 날아온 부도 수표를 들고, 가희의 집에 달려가 재 발행한 수표를 받아왔었다. 하지만 문제는 부도수표 만든 이유였다. 이유가 너무도 황당하였다. 알고 보니 책을 출판하기 위해 영문 번역 비를 보내기 위해 부도 낸 일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녀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진희는 가희가 수수료도 주지 않는 터라. 이번에는 부도낸 수표를 돌려주고 금액을 둘로 나눠 두 장으로 만들어 받았다. 그리고는 수표를 넣을 날짜가 되어 통장에 집어넣고 까마득하게 잊었던 것이다.

 

***

가희가 우연치 않게 진희를 맞닥치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진희가 네 명의 작가들의 출판 기념행사에 온다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얼굴 표정은 멍한 상태였고. 얼굴색은 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진희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진희의 순수함은 어리숙한 시골사람이 되었고. 가희는 패션쇼에 출현하는 모델처럼 단장한 모습이다. 진희의 생각은 가희가 미안함 내지. 쥐구멍 찾고자 당황스런 모습이라 여기며. 진희가 가희에 대한 긍정의 뇌세포는 여전히 그래도 한 가닥의 실오라기라는 양심을 갖고 있기에 하얀 얼굴이 되어 당황하고 있다 여겼다. 아니, 다행이라는 안도의 숨이 진희의 숨통을 뚫고 지나가는 듯 했다. 오히려 내심 가희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가희, 그녀의 모습은 화류가의 여인네와 같지 않은가.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친구가 보다 못해 입이 툭 불거졌다.

-저러고 다니고 싶을까. 오늘이 항암치료 하는 날이라던데. 제 남편은 항암 치료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텐데. 가희의 상황을 아는 주변 사람이 쯔쯔쯔 혀를 내둘렀고. 그 사실을 아는 모두가 쑥떡궁 거린다.

 

가희의 남편은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에 홀로 간 것이다. 공교롭게 오늘 병실에 누워 항암 치료를 첫 번째로 받는 날이다. 남편은 병실에서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에다 지인들에게 여왕으로 굴림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의 옷은 개선장군의 패기 넘치는 옷 같았고. 그녀가 빳빳하게 무스와 스프레여로 미용사로부터 올린 머리는 여왕이 쓰는 왕관이 되어있었다. 가희가 늘 진희에게 입에 침이 바르지도 않고 말했던. 자기 손을 걷히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거짓말이 개선장군의 깃발이 된 듯, ‘나는 스파르타식 여왕! 그러니 너희는 나의 졸개! 졸개.’라고. 하얀 거짓말의 깃발을 펄럭이는 듯했다.

그 거짓말의 깃발이 빛 좋은 게살구이고. 그 허세가 자기만 여전히 회칠한 무덤가인줄도 모르고 스파르타식의 여왕으로 굴림 하듯 도도하고 뻣뻣한 자세다.

 

참석한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읽은 듯, 이 사람이 수군거리고 저 사람이 수군덕거렸다. 하지만 가희는 그런 것을 눈치 챈것인지 못 챈것인지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 다 잊고 이참에 한 바탕 신나게 놀아 보세라는 기세다. 그녀의 모습에 진희는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진희 안에 긍휼이란 단어가 태극기처럼 그녀의 눈앞에 펼쳐지며 펄럭이니. 그저, 주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불쌍히……. 불쌍히 여기옵소서.

 

그 일이 있은 후 일 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다. 우편으로 날아 온 세 번째로 부도낸 수표 두 장을 보고서야. 아하. 그 때! 그 얼굴. 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의 얼굴은 하얀 분가루를 뒤집어썼는지. 평상시 집에서는 누렇게 뜬 민낯의 얼굴인데. 분칠한 얼굴은 하얗다 못해 허여물그런 핏기 없는 얼굴에다 머리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나가듯 족히 몇 백 불은 투자한 머리였음을. 기억의 주머니에서 그녀의 빳빳했던 머리와 분가루를 하얗게 뒤집어 쓴 것 같은 얼굴이 교차되어 더욱 또렷이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것이다.

 

진희가 가희에게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만약 수표를 두 장으로 나누어 받지 않았더라면 또 그냥 넘어갔을 뻔 했다. 만약 진희에게 여유가 있어 받은 수표를 예전처럼 입금 시키지 않았다면, 다시 예전처럼 넘어 갔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두 장의 수표를 부도 낸 것이다. 상식으로 은행에서 모자란 잔액을 입금 시키라고 열락이 왔을 텐데. 철판을 깔고 배짱을 부린 것이다. 행사장에서 그날 분명 가희는 옷을 세 번씩이나 갈아입었다. ‘드라이 값만 해도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달러가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자. 진희의 눈앞에 일 달러 지폐 백장이 가희에게 날아가 칼바람을 일으켰고. 진희는 칼바람과 함께 그녀에게 덮치는 달러를 세벌의 옷을 방패삼아 발로 뻥뻥 차며, 통쾌한 듯 막아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극악할 일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남이야 죽든 말든, 오로지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이다. 물길 열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사람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본심이 나온다고 하더니. 참으로 놀랠 놀 자로 지나간 일들이 진희의 눈앞에 가희가 화신이 되어 나풀거렸다. 그런 진희에게 영영이라는 단어와 함께 용서라는 커다란 상자로 그녀를 묵인해야 할 것인가. 몇 년 전만 해도 진희는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늘, 통장에 몇만 불을 정기예금 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라가고. 진희의 나이는 반비례 되어 리타이얼 하다 보니. 3년을 거의 백수 생활이었다.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곶감을 하나씩 빼먹고 살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던 거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데 받아낼 돈은 나중에 받더라도 다달이 받을 돈은 받아야 살 수 있는 형편인지라. 진희는 가희에게 배려라는 커다란 함을 선물할 순 없는 일이라고. 굳게 다짐하며 재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진희는 어둠이 들판을 이미 삼킨 늦은 밤, 희미한 등불아래 서있다. 베란다 밖에서는 제법 굵은 빗줄기 내린다. 진희는 그녀 속에 펄럭이는 생각을 조용히 곱씹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징 있다고. k를 떠올리니. k는 담벽색의 그려진 난초 한 포기처럼, 겸손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 여겨졌다.

얼마 전, 그림 전시회 때 눈에 들어온 그림이 눈앞에 아롱져 왔다. 그림의 내용은 한옥 안방 문 밖에 살짝 열린 상태를 우아하게 표현한 그림이었다. 살짝 열린 안방의 벽에는 살짝 멋들어지게 표현된 수묵화가 걸려있는 데, 화폭의 넓은 공간을 유지하면서 먹물 한 가지 색으로 담백하게 난초가 절벽 위에 피어난 한 포기 난초의 그림이 열린 문틈 사이로 보였다. 퇴청 마루와 안방의 바깥쪽의 벽에는 말린 곶감이 걸려 있었다. 퇴청 마루에는 소쿠리에 몇 가지의 과일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오묘하게 빚어낸 우리네 조상의 슬기로운 집을 화백의 빼어난 솜씨와 아이디어로 그려낸 기가 막힌 진풍경의 작품이어서 몇 십 분을 서성이며 눈여겨 본 작품이다. 살짝 열린 방안의 벽에 걸린 난초 한 포기의 그림. 힘차게 뻗혀진 난초의 잎과 어우러진 기와지붕의 선이 조화되었던 작품. 수묵화의 단순함이 오히려 진희에게는 단아함이 깃든 우아함으로 다가왔다. 어찌,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넋을 잃고 감상했던 기억이다. 그 그림은 많은 수련 속에서 그의 내면의 것을 표현 한 듯 한 작품이었고. 지적인 세계를 겸손히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며, 표현한 그림이라 생각되었다. 그 그림을 생각할 때 마다 진희는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안 되었을 때 유치원 선생으로 입사했던 그곳의 원장이 떠올랐다. 마치 수묵화처럼. 원장은 아이가 사고 났을 때도 진희의 옆 반 선생을 나무라지 않았다.

선생은 우리에게 원장이 내게, 아이들에게 좀, 신경을 쓰지. 한마디라도 핀잔 줬다면. 오히려 났겠다.”고 푸념했다. 선생의 심정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단다. 진희는 아주 오래된 일인데 옆 반 선생의 말이 선명하게 떠오랐다. “차라리 원장이 한 마디 말이라도 핀잔이라도 해준다면 났겠다.”라는 말이. 그와는 반면, 외모와 명예욕에 허우적거리는 가희를 생각해보니. 외모와 명예욕에 눈이 먼 그녀다. 그녀가 이번에도 공식석상에 나타났을 때 부도수표 낸 것에 대해 눈곱만큼도 미안하기는커녕 내가 부도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파산 신청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며, 되려 윽박질렀다. 그 후 다시 부도내었고 그 돈으로 일생에 한번 올리는 신부처럼 기백불짜리 머리를 올리고 석고 팩을 했는지. 하루 전의 일그러진 얼굴과는 달리, 팽팽한 피부를 만들어 분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하얀 달덩이가 되어 늦으막히 나타난 것이다.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라더니. 그녀를 십년 전에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촌스러웠던가. 머리는 한 가닥으로 뒤로 묶은 채 한 아이를 업었고. 한 아이는 그네에 태우고 이리저리 그네 줄을 휘저어 내렸다올렸다 하는 모습이 진희가 가희를 본 첫인상이자, 첫 모습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그냥 평범한 아줌마였다.

그네가 올라가면 그녀의 시선도 따라 올라 가야되는 데, 그녀의 시선은 피곤에 지쳐 희미한 등불이 된 듯 깜박거릴 뿐. 그저 몇 명 안 되는 아이들 속에 거미줄처럼 얽힌 사슬에 꼼짝 달싹 못하는 먹이 사슬로. 묶여진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인가 무슨 이유였는지. 다시 그곳을 찾았다. 정확한 기억은 보톡스 맞은 여인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온통 보톡스 주사약으로 얼굴 표면에는 통통하게 보톡스가 살이 되어 붙어 있었다.

사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시 k와 가희를 생각해 본다. 둘은 다른 색채를 갖은 유전인자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극과 극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극과 극. …….

***

가희의 지난날의 모습과 현재 눈앞에 서있는 모습이 교차되니. 진희의 눈이 휘뚝거려졌던 일이다. 상의는 진달래색의 실크로 바다 물결 치 듯 한, 웨이브의 칼라가 목선 가까이 세워 달려있고. 파도에 밀려 하얀 거탑을 쌓듯 한, 고고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우아한 옷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에 마켓에서 남편과 음식물을 사는 그녀가 입은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옷은 짧은 팔에 펄이 들어간 옷이고, 그녀가 입은 옷은 긴 팔에 펄이 안 들어간 실크로 된 옷이다.

칼라의 웨이브가 물결을 이루 듯 하느적 거렸다. 초미니의 하얀 스커트와 손톱 크기의 새하얀 진주목걸이와 하얀 하이힐이 잘 매치 되었다.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고사하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안내 석을 지나치다, 돌아서는 순간 부딪히는 해 맑은 미소의 주인공 진희를 발견하자. 가희, 그녀의 얼굴은 더욱 더 창백한 얼굴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진희를 만나게 될 줄 꿈에서도 몰랐다. 더더욱 진희가 안내를 보며 회비를 받고 있을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진희는 어안만 벙벙할 뿐. 식이 끝나는 내내 하얗게 질린 듯한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어 고개를 갸우뚱거려야만 했다. 일주일 후 그때를 기억하며, 그토록 질려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은 부도난 수표를 거래 은행으로부터 받은 후였다. 기절할 노릇이다. 미용실 이용비와 실크로된 옷, 2벌의 개량된 한복등 드라이 값 만 해도 바운스 2개중 한 개는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가희는 진희를 보자 하얗게 질렸던 그때의 표정이 그녀에게 바운스낸 수표와 겹쳐져 나풀거리며 아롱거렸다.

* * *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한 달 전에도 그녀는 $900라는 돈을 바운스 냈다. $9000이 아닌, $900을 바운스 낸 것이다. 그리고 몇 달 전에도 $1300이라는 수표를 바운스 냈다. 그 돈도 집 렌트비 중 일부를 잠깐, 돌려 준 것이다. 그날도 집세로 지불할 수표를 바운스 내어 진희를 뒤로 넘어지게 했다. 진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었다. 그 때도 역시 두 귀가 먹먹거렸던 것은 바운스 내기 전 옆에 계시던 회장이 가희에게 번역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1000보내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현금이 준비되었노라고 카톡 온 것을 보고. 학생들에게 광고 해 알게 되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정말, 사람 잡는 일이었다. 가희가 수표를 바운스 낸 것이다. 정말 기막힐 일이다. 소설 속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다. 그녀는 분명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다. 얼마 전에 남편이 밥 한 톨 삼킬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적에도 그녀의 말에 의하면 , 당신 뒤치닥거릴 수 없으니. 비행기 타시라고요.” 그녀는 서둘러 보험을 50만 불짜리를 들었고. 억지로 남편으로 하여금 사인하게 했다.

그녀의 남편이 보험금 지불할 돈 있으면, 진희 돈이나 갚으라고 했단다. 그때 그녀는 모질게 당신 죽으면, 나라도 살아야 된다.”. 그녀는 제 아이디어를 자랑이라도 하듯 진희에게 떠버렸다. 만약 남편이 진짜 저 세상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기지 않는가. 역력한 암병 일 듯 싶다고. 호언장담한 그녀 아닌가. 이번에는 보험회사를 말아 먹을 작정인가. 물론 그렇다고 보험회사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속셈을 보면 어찌 저럴 수 있으라. 혀만 끌끌 찰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묵인하는 것도 어느 정도라 생각되어 진희는 한 마디 꺼낸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가슴 아파요. 지금까지 남편이 비서처럼 외조의 결과 집 두 채를 거느리게 된 거 아니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림 반 푼없는 일이지요.”

진희는 그녀의 남편이 가여웠다. 말이라도 천 냥 빚 갚듯 하라고 당부하였지만 가희는 꽉 막힌 물고가 트인 듯.

아휴, 난 몰라. 내라도 살아야지.”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로 천만다행이란다.

그래도 그렇게는 말씀하지 마세요.” 진희는 방금 전에 가희가 했던 말을 상기 시키며, 속으로 혀를 끌어 찬다. 남편이 얼마나 분통터질 일인가. 가희가 미국 온지 20년의 세월에 검진 결과 난소암에 걸렸었단다. 항암치료와 남편의 헌신된 사랑, 치료의 효과를 봤던 결과의 열매가 여태껏 삶에 활력이 되었다고. 얼마 전까지도 그 생생함을 가희에게 자랑하지 않았던가. 남편의 헌신된 사랑과 기도가 없었다면 살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가희는 남편에게 감사해야하고. 부메랑 되어 갚아야 될 내조가 아닌가. 과거와 지금 상황이 정 반대가 된 것인데. 가희는 헌신짝 버리듯 버리겠다는 심사다. 다시 며칠 전에 티이비에서 안구 기증으로 눈을 뜬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으며 말한 말이 다시 그녀에게 다가와 나풀거린다. 진희의 예상을 뒤집었던 말.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좋은 일로 우리도 남에게 도움을 주자.

하지만 가희의 생각은 제사 지내는 사람이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더니. 남편의 병에는 관심 없고, 오직 보험금만 탄다면 오십만 불로 골치 덩어리 일들을 모두 집어 치우고. 홀가분하게 살겠단다. 사람이 막다른 길로 들어서면 눈에 보이게 없다더니. 이거야말로 그 짝이 난거야. 그 짝이........

 

우리네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는 소리가 옛말이고. 어지간하면 구십 살을 훌쩍 넘기는 의학의 혜택아래 사는 현실이다.......

내가 과연 입장을 바꾸어, 그녀의 남편이라면 어디까지 그녀를 용납할 것인가. 진희는 왠지 모르게 괜스레 열 불났다.

염소의 뿔이 성질나면. 뵈는 것 없이. 그 뿔로 치박 듯 뿔뿔뿔하며 가희 머리통을 한방 휙 쳐주고 싶었다.

열불이 점점 뿔로 바뀌어 간다. 뿔로. 뿔뿔뿔하며…….

어둠이 들판을 삼켜도 아침이 되면 어둠은 물러가리. , 밝은 태양이여 내게로 오라. 두 손을 뻗고 푸른 들판을 달리리니. 어둠을 집어내어 한 낮의 뜨거운 열기 아래 드러내라.

진희는 어두워져가는 경제위기와 맞물리어 위태해진 자신의 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일 또 다시 뜨는 태양을 가슴에 끌어 안 듯 침실로 들어섰다. 베렌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

아니, 만 불도 넘는 달러를 안주시겠다고요.”

진희는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남편에게 돈을 준 것이란다. 그리고 그녀는 진희에게 파산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고 되레 전화상으로 으름장을 놓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내가 남편을 준 겁니까.” 큰 소리로 대응하자. 전화가 끊겼다.

 

진희에게 나온 뿔이 수그러지지 않아 g를 누르니. 메시지로 넘어간다. 진희는 잘됐다 싶었다. “가희씨, 남편을 보고 돈을 준겁니까. 가희 씨를 보고 준겁니까. 남편은 심부름에 불과할 뿐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것은 가희씨 아닙니까. 그런 심보로 무슨노무 A협회 이사니, B협회 회장이니, C협회 부회장이니, 감투 쓰면 뭐합니까. 선량한 서민 가슴에 먹칠 하고 사기 치는데!” 뿔이 이번에는 다시 열불로 바꿔졌다. 열불로 얼굴이 후근 거린다. 다시 그 열불이 가슴에 타고 들어갔고 발갛게 얼굴을 덮어 버렸다. 뿔이 열불이 되니, 뵈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것이 복창 터진다는 것인가. 가슴에서 북소리가 둥둥둥 울려 퍼졌다…….

 

가슴으로 삼킨 불 화통이 계속 따끔거리다 다시 화끈 거렸다. 수화기에 메시지로 녹음하고 발신을 끄고.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부터다. 계속,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다가 평온이 찾아오며. 갑자기 그녀 앞에 잠언에 있는 말씀이 눈앞에 아른 거리다. 또렷이 한 글자 한 글자가 춤추며 팔을 활짝 벌린다.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2227)

그래, 갖고 있는 수표를 몽땅 집어넣자. 다시 진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니야, 해가 떨어지면, 다시 외투를 돌려주라고 했어. 이판사판이지만 그래도 채주의 입장 아닌가.’ 진희의 마음에서는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기리><해가 떨어지면 전당잡은 외투를 돌려줘라.>는 성경 말씀이 오른쪽과 왼쪽의 천정에서 밤새 하얗게 떠돌아 다녔다. 밤이 회청색의 거품을 물고 하얗게 싸움질한다.

***

청아한 아침이다. 유리창 넘어 해님이 방긋 웃음 짓고 새들이 베란드로 날아와 지저귄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새들이 진작 손을 뗐어야 했다. 이 바보 멍청아! 진희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그 노무 정이 뭔지. 그래도 진희는 가희를 생각하면 유일하게 터놓고 수 년 동안 지내 오던 사이지 않았던가. 벌써 횟수로 8년 이다. 막내가 그녀의 유아원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다. 물론 그녀의 일방적인 과시에 관심은 없었지만 실체가 드러나니 마음에 걸린다. 분통 터지는 일이다. 과거엔 가희가 그 멋에 사는 자라. 생각되어 그러느니. 그녀가 진희에게 거짓말을 보태며 말해도 그냥 전화상으로 들어 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관심 밖이었다. 아니 그녀의 말을 백프로 신뢰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느 사기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의문과 반문이 진희에게 훨훨 날아 그녀의 생각 속으로 헤집고 들어왔다. 그녀의 돈 말고도 돈이 바닥을 드러내자 부모에게 아파트 입주 관계로 빌린 이천 달러를 몽땅 가희에게 빌려줬는데 여태까지 못 받았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그녀의 손에 들어온 달러는 모조리 그녀에게 넘어갔던 일. 심지어 미술학원에서 시간당 받았던 레슨비로 받은 달러까지도. 마치 그녀가 무슨노무 심봉자라도 된 듯, 어떠하든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측은함에. 또한 그녀의 말에 몇 달 후면 계돈을 받아 만 불을 받게 된다고 하는 그녀의 말에 믿었기에. 진희는 거짓을 모르는 법 없어도 산다는 그녀의 마인드에 결코 가희가 거짓으로 진희를 속인다고 생각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세든 사람이 쥐가 들어 왔다고. 구천 불을 요구하며 재판을 걸었단다. 그 재판에 항소하다 보니.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어 다음 기회로 넘어 갔단다. 재판을 꼭 이길 수 있어. 승소하여 몇 천불을 받을 수 있단다. 결국 진희는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승소하였다고 했다지만 이번에는 이웃이 재판을 걸었단다. 이유는 담벼락에 나무를 너무 많이 심었단다. 어찌되었건 진희는 계속 깨진 독에 물 붓듯 그녀의 심봉자 된 듯 그녀가 말만하면 안됐다 싶어. 손에 들어오는 방세를 족족 그녀의 손에 옮겨 놓았다. 진희는 가희가 세월이 가면 연륜 속에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가듯 마치 가희가 은행이고, 투기하는 업체라도 된 것처럼 진희의 입금시킨 통장으로 경제적인 시름을 잠재울 거라 확신하였다. 그 이유로 그녀에게 들어오는 달러를 다 털어 가희 손에 입금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희에게 돌아온 것은 쪽박인 것이다. 쪽박은 시원하게 우물가에서 물을 퍼먹을 수 있는 그릇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쪽박은 거지가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들고 각설이 타령하는 유일한 생계유지를 위한 도구가 된 쪽박인 것이다. 머리가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옛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가희의 머리는 유독 검은 색채를 띠었던 기억이다.

* * *

이른 새벽이다. 사람들이 분주히도 건강 챙기듯 산행한다. 이른 새벽에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등반에 오르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진희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행에 오른 것은 짓누르는 것을 고함이라도 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고 하더니. 그 누가 감희 가희가 진희의 발등에 도끼를 휘두를 것인가? 생각 했겠는가! 물음표와 느낌표가 그녀의 머릿속과 가슴 속에서 뱅뱅 떠돌아 다녔다.

*****

진희는 그래픽스 산꼭대기 정상에 올라가 섰다. 그리고는 -내가 정말 싫다고. 정이라는 단어에서 점하나만 떼면 징이 되는 것을 왜, 몰랐는지. 고래고래 술주정하며 외치고 싶었다.

지금 진희의 가슴에서 <>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가희는 무참히 점 하나를 빼, <>을 만들어 놨다. 진희의 가슴에 <>이라는 단어가 스트레스가 되어 징징~ 울리는 <>이 된었다는 것을. 진희가 안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치며, 고함이라도 꽥꽥지르고 싶었다. 그래, 그때 수표를 다 집어넣고. 효부를 봤어야 했던 거야. 이 멍청이 바보야. 진희의 가슴에서 복창 터지며 북소리가 둥둥거렸고 귀가에서는 징이 다시 징징징~ 울려왔다. 징징징징징~

진희가 이제나 저제나 주변이 조용해지길 기다렸으나,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바닷가에 가는 것인 데 목적지를 잘못 선택한 것이 한 이 되었다. 숨통이 터져나가 듯 가슴 속에 답답함이 음예공간으로 가득차 왔다. 진희의 수미진 가슴 속에서 북소리와 함께 귀가에 다시 <>이 징징 울어 되니.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땅으로 낙하하듯 산꼭대기 정상위에서 낙하될 것만 같았다. 사람이 이래서 굴러 떨어지게 되는구나. 갑자기 진희는 시원스레 부는 바닷바람에 열 불나는 가슴을 식히지 않는다면 열 불나는 가슴으로 숨통이 터질 것만 같았고. 당장이라도 굴러떨어져 내린것만 갔았다. 진희의 가슴에서는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안된다고........

하지만지금이라도 바다 바람에 맞대어 파도의 눈물 앞에 내 원통함을 쏟아 내리리라 생각하니. 어디서 기운이 샘솟았는지. 발밑에 바퀴가 달린 듯 쏜살같이 산등성을 내려왔다. 진희의 입에서는 이 원통함을 파도 앞에다 쏟아 부으리. 분노로 품어내는 마그마를 움켜잡고 파도 앞으로 가자. 파도 앞으로…….

* * *

진희가 엑시더드를 밟아 바닷가를 향하니. 가슴에서 <>이 징징거리며 다시 울려왔다. 또한 간밤에 어스레한 달빛에 스미는 서글픔이 가슴에 숨죽이며 헤아릴 수 없는 서슬 퍼런 응어리가 가슴에서 바윗덩이가 된 듯 했다.

 

지희는 그녀의 귀가에서 계속 징징거렸던 징소리를 활화산 으로 계속 분출시킨다. 하지만 진희만의 독특한 긍정의 뇌 세포가 하늘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꺼진 건지. 음예공간으로 숨통을 다시 막고 있다. 진희의 가슴 한 구석에, 오롯이 솟아나는 바랄 망이 수미진 곳에 바람의 형상을 만나. 비애의 날개깃이 훠이 훠이얼 날개 친다.

그녀 앞에 펼쳐지는 파도의 눈물로 울부짖는 바위섬에 골백번 부서져 나가떨어지기를.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서 파도의 눈물에 원통함을 쏟아 붓고. 바다건너 산 넘어 들 지나 회도라 선 마음의 날개깃에. 서슬 퍼런 바위덩이가 된 바위와 징~하고 귀가에서 계속 맴돌며 징징거리는 그 모두 다 태워버리리라. <>이든 <>이든 그 모든 것을. 다부지게 마음속에 다짐하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상큼한 바다가의 내음이 진희의 차창으로 훅, 하고 코끝에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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