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에서 나부끼는 싸리 빗자루

조회 수 15 추천 수 0 2020.05.28 01:18:51

심상에서 나부끼는 싸릿빗자루와 나

                                                                                                                         은파 오 애 숙

 

 

  소슬바람이 분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펄럭이는 바람인가!

우람한 고목나무를 건드리니, 초록빛 싱그러운 고무나무 잎이 화르르~ 떨어진다. 

 

  연하장이나 선물이 오고가는 시기다. 초인종이 딩동~ 울린다. 택배가 왔다. 선물 화장품세트와 함께 달력 2부가 배달되어 왔다. 달력의 앞 장에 2020년 경자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생쥐 부부가 고옵게 연분홍빛 계열의 옷을 차려입고 세배 올리는 모습에 눈이 간다. 뒷 배경은 전통 초가집의 옛모습이다. 이역만리에서 달력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돌아오는 해가 경자년이다. 다른 해보다 특별한 해다. 60년 전 경자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달력 2부 중 한부의 달력에는 절기마다 피는 꽃이 모델이고, 달력 1부에는 한얼이 담긴 전통 초가집이 배경이다. 작금 이역 만리 미국에서 살고 있기에 조상의 얼이 담긴 옛 모습에 눈시울 붉혀지더니, 그렁그렁해 진다. 펼치는 순간! 전원의 시골이 뇌리 속에서 파노라마로 피어난다.

 

  어릴 때 보았던 소담한 시골집 풍경이 계절마다 다르게 찍은 사진이다. 첫 장에는 흰 눈이 산야를 하얗게 덮은 시골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었고. 아이 옆에서 삽살개가 하늘로 날아가는 연을 바라보며 멍멍! 짓는 모습의 사진이다. 두 번째 장을 열어 펼쳐 보았다. 살랑이는 봄바람속에 완연한 봄이다. 홍빛 매화꽃이 담벼락 안을 보면서 화사한 웃음으로 벙그르르 웃고 있다. 마치 금빛 햇살로 내 가슴을 열고 고향의 봄을 스미게 해 입을 귀에 걸어 놓는다. 초가집 중앙에는 댑싸리로 역은 사립문이 반쯤 열려 있고 할머니가 앞마당에서 병아리 먹이를 주고 있다. 두 아이가 구구구 소리를 내는 입모양이 재밌다. 사립문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담벼락에 두 개의 빗자루가 다소곳이 놓여있다.

 

  그 유명한 댑싸리로 만든 빗자루를 발견하는 순간! 기억의 주머니에서 나비 한 마리가 어린 시절로 훌쩍 안아 안내한다. 내 어린시절 옛닐곱 살 때다. 한국에서 동지섣달에서 화사한 봄날까지 파주에서 한겨울을 보냈던 때가 있다. 키보다 더 큰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겠다고 폼잡다 넘어졌을 때다. 제일 먼저 삽살개가 달려왔다. 참 영리한 개라 싶다. 삽살개와의 첫 만남은 달과 별빛이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 덮인 밤이었다. 서울은 아침부터 칼바람이 불어왔고 서릿바람처럼 차가웠다. 친구의 집, 방안에서 놀고 있을 때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오빠가 부르는 소리에, 대문을 활짝 열었을 때다. 거센 된바람에 의해 다시 문이 꽝!하고 닫힌다. 감짝 놀란 동그란 눈, 토끼 눈이 되어 소스라쳤던 기억이다.

 

  화려강산이 5번 이상 바꿨는데도 또렷한 기억이다. 오빠는 내게 동생이 태어나 언니와 함께 파주에 가야 한다고 손짓 했다. 그때는 동생이 태어났으면 생일잔치를 해야지, 왜 시골에 가야 되는지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평소 어머니께서 아기가 태어나면 시골 집에 가야한다고 말씀하셨기에 무작정 따라 나섰다. LA에서는 상상도 못 할 영하의 날씨다. 한국의 1월 중순! 얼마나 추운 날씨인가! 서슬 퍼런 칼날 같은 날씨라 발이 시려워 동동~ 거렸고. 벙어리장갑 끼고서도 손이 시려워 호호~ 불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1967년도. 두세 번 갈아 탔다. 기차였는지. 전차였는지.교외선이었는지. '길~면 기차'라고 부르던 노랫가사처럼 그저 긴 차도 탓던 기억이다. 일행은 살갗 휘몰아치는 겨울 산허리를 거쳐 파주의 작은 고을에서 내렸다.

 

  산야에 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하지만 호롱불 두 눈 감기고 잠드는 새까만 두메산골에 달빛 내려 반짝이는 들판이 마치 목화밭처럼 보였다. 삽살개는 마중 나온 친척과 함께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목화송이 같은 뽀송뽀송한 눈밭에 발을 내딪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발자국이 찍히며 소리를 내었다. 어린시절인데도 차이가 느껴졌다. 서울의 아스팔트 좁은 골목길의 눈길을 밟을 때와는 색다른 체험이다. 다행히 차에서 내릴 때 바람이 불지 않았다. 아침에 맛 봤던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면 세찬 눈보라로 어린 나이에 제대로 걷지도 못 했었을 것이다. 우린 도착 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곯아 떨어졌다. 피곤한 탓으로 다음 날 오빠와 늦게 일어나 마당에 나왔다. 하이얗게 소복히 쌓였던 눈이 거의 치워져 있었다.

 

   오빠는 처마 밑 진흙과 짚이 버무려진 담벽에 세워진 싸리 빗자루로 미쳐 치워지지 않은 눈을 마져 쓸기 시작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장독대 옆으로 가서 내 키보다 훨씬 더 큰 빗자루를 집어들고 쓸었다. 하지만 휘청 되었다. 결국 콰다당~  미끄러졌다. 그때 였다. 간밤에 마중 나왔던 삽살개가 넘어진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리고는 오빠를 향해 도와 달라고 컹컹 짖으며 내 볼은 핥았다. 삽살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빠가 똘망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그 사건 이후 “똘망아, 똘망아”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던 강아지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동지섣달 길고 긴, 겨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주에서 지냈다. 봄볕이 하늬 바람결로 살랑이고 햇살이 연초록 나무사이 겨울 끝자락을 알리던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 갔다.

 

 사리문 사이로 봄볕에 노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종종 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2~3미터 떨어진 앞마당에 나뭇가지가 수북히 쌓여 있다.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퇴청 마루에 앉아 계셨다. 황금색의 쌀가마니를 두툼하게 깔고 뭔가를 열심히 만드셨다. 가끔 수염을 매만지시며, 갈색의 싸리나무를 엮어 빗자루를 만드셨다. 자세히 보니 갈색의 거친 나무를 살살 달래며 키를 맞추어 한 움큼을 모았고, 싸리 나무껍질을 곱게 벗긴 것으로 중간 중간을 묶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도끼날로 잘 다듬어 부드럽게 빗자루를 완성 시켰다. 키가 작은 싸리나무를 조금 얻어 키가 같은 것으로 추려서 낑낑대며 오빠와 합작으로 만들었다. 밀가루 반죽으로 뭔가를 만든 것 말고 생애 첫 작품이었다. 소꿉놀이 할 때마다 소품으로 등장 시켰던 기억이다.

 

  생애 첫 작품이 까닭인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동지섣달, 칼바람 매섭게 살갖 핥키던 때 머물렀던 파주! 초록빛 싱그럼 휘날릴 때 서울에 오면서 빗자루를 낑낑대며 끌고 왔다. 하지만 환영 받지 못했다. 깔끔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긴 빗자루를 선호 했기 때문이다. 애물단지가 되어 한구석에 쳐박혀 놨다. 애써 만든 빗자루를 오빠 말고는 모두 본척도 안했다. 오빠와 상의한 끝에 교회로 가져가서야 환영 받는 빗자루가 되었다. 싸릿빗자루는 넓은 교회마당에 안성맞춤처럼 적격이었다. 목사님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피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모두 깨끗하게 씻겨주신 것처럼 이 빗자루가 교회의 앞 마당을 깨끗이 쓸어 주어 하나님이 기뻐하겠구나.”라고 환하게 웃으시며 빗자루를 받았다. 

 

  멋진 추억이 담긴 ‘싸릿빗자루’다. 그 빗자루는 주일이나 수요일에 교회가면 의례 나의 친구가 되어 오랜 세월 눈 인사 했다. 내 키 만한 빗자루를 욕을 먹어가며 파주에서 서울까지 몇 번의 차를 갈아 타면서 가지고 온 빗자루! 고생했던 까닭인지. 교회 담벼락 옆에 세워진 빗자루가 어찌그리 소중하게 보였던지.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하나님도 내 정성 보시고 어린 나이였는데 똑같은 생각을 하시겠다고 흐뭇하게 여겼던 기억이다.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서 세상 속에 있어도 하나님께 올인 할 수 있었다. 비로소 하나님의 품에서 만들어진 걸작품이 바로 ‘나’라는 존재의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한얼이 담긴 달력사진을 보다가 어린시절 싸릿 빗자루와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역만리 타향 LA. 지금도 심상에 어린시절이 그리워 물결친다.

달력에서 한얼 담긴 소담한 초가집마당의 정취에 그 옛날이 흩날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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