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에 대한 추억/은파

수필 조회 수 31 추천 수 0 2021.02.11 03:10:20

떡국 한 그릇에 대한 추억/은파 오애숙

 

   2월의 길섶이다. 새들의 경쾌한 합창 속에 상쾌한 물결로 일렁인다.

겨우내 목말라 갈등했던 나목들이 새들의 노래 속에 장단 맞춘 까닭인지, 싱그러움이 가슴으로 훅~ 하고 들어왔다. 얼마 전 촉촉이 내린 보슬비로 푸른 물결과의 하모니를 이룬 것 같다.

 

  창문을 열고 기지개 켜고 있을 때다.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2월 12일, 떡국이 배달될 것이니 대기하라는 전화다.  '웬 떡국, 아하! 그렇지 그날이 설이지.'  순간, 바보가 도 트는 소리 심연에 물결 쳤다. 사실 이곳 엘에이에서는 늘 상 먹는 것이 떡국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녀의 학교가 집안이 됐다. 하여 가장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떡라면이기에 떡국은 비축식량이다.

 

  미국의 한인 상점마다 흔하디 흔한 게 라면과 떡국이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라면을 치켜세우면 라면으로 입맛을 버리게 될까 봐 미리 겁먹었다. 즐겨 먹지 못하게 하려고 절대 스프를 다 넣지 않고 맛이 없게 끓여 줬었다. 하지만 1년 동안을 집안이 학교가 된 까닭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라면에 떡국을 넣고 '떡라면'을 먹는다.  요즘 세대에 잘 맞아떨어진  인스턴트 식품 중 하나라 싶다.

 

  하지만 ...70, 60, 50...세대에게 떡국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기억이다. 어릴 때 그 기억은  설레임의 물결이다. 그 옛날 떡국에 대한 옛 추억 한 살 먹는 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한 살 더 먹는다는 기쁨! 어릴 때 우리네 어르신 사상은 '어린 게 뭘 아냐'라는 식의 흑백논리가 있던 탓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TV 좋은 프로그램으로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애어른이다. 또한 '하나만 낳고 잘 키우자'라는 슬로건이 생긴 이후부터는 아이의 말에 존중해 귀를 기울인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 보통 아이들이 4~5명은 보편적이다. 형제자매끼리도 한 살이 누가 더 많은 건가, 스트레스받아 아마도 한 살 더 먹었다는 자부심, 지금 어른이 되어 있는 이들은 다 느끼고 있을 것이라 싶다. 그 어린 시절에 가장 학수고대하던 때는 설 명절이다. 그 이유는 '세뱃 돈을 얼마 받을 것인가'와 '떡국 먹으면 한 살이 더 먹게 되어 당연 세뱃돈도 올라간다'는 계산 된 심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떡국 배달 온다는 전화 한 통에서 추억이 가슴에서 흘러나온다.

 

  어린 시절 동요다. "까치 까치설날은 ~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떡국을 생각하니, 그 옛날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유빛깔의 쌀을 정성스럽게 몇 번이고 씻어 말갛게 된 물이 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씻어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어머니가 똬리를 머리에 얹고, 양푼에 담은 쌀을 머리에 이고, 떡방앗간에 가면,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졸래졸래 강아지처럼 따라가며 세상이 제 것인 것처럼 신바람이 났던 행복한 때가 가슴에 물결 친다. 

 

  떡국을 위해서는 준비할 고명들도 만든다. 계란으로 지단을 얇게 만들어 썰어 놔야 했고. 소고기도 미리 삶아 길게 손으로 찢어 놔야 했다. 파도 가늘게 채를 썰어야 했고. 김도 구워서 가루를 만들어 놨다. ... 물론 만두도 기호에 따라 떡국을 끓일 때 넣었다. 참 번거로웠던 기억이다. 지금도 격식을 그리 차려 명절 때 먹지만 일상에서 먹을 때는 그저 인스턴트로 상점에 나와 있는 만두와 김도 가늘게 잘린 것을 사용하고 떡국이 끓으면 계란을 풀어 넣어 초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다.

 

  이순의 열차 안이다. 예닐곱 그 설렘의 아이가 추억의 창에서 쓸쓸하게 웃음 짓는다.

나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 미국문화는 생일이 돌아와야 한 살을 챙길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인 까닭에 설이 온다 해도 떡국 한 그릇에 대한 설렘이 아이에게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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