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조회 수 2971 추천 수 4 2015.06.07 02:56:15

수필

                          

                                                                                                                                                                                  은파 오 애 슉

 

"산이 좋아요."라고 외친다. 산에 가면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나를 내려놓게 하고, 생각의 탑이 산자수명(山紫水明)에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기억의 주머니에서 꺼낸 산은 내 고향, 관악산이다. 오롯이 가슴에서 파문돌이가 일어난다. 굽이굽이 치는 산등선이 눈에 선하다. 계절마다 다른 모양새로 웃음 짓는 산의 표정은 언제나 즐거움에 제곱을 더한다특별히 좋아했던 산은 봄철이었다. 진달래 철쭉의 분홍산을 지나 연초록의 향은 신선함 자체였다. 겨우내 집안에서만 웅크리던 꼬리를 휙 던져 버리고 동네 언니 따라 삼삼오오로 짝지어 굽이굽이 샛길 따라 산 나물케는 아낙네처럼 산등성을 올라갔던 기억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 번은 산길 따라 올라갔더니 산등성에 핀 야생초와 화사하게 핀 살구꽃이 있었다. 간밤에 촉촉이 내린 봄비 속에 목욕 재배한 모습은 마치 새색시가 연지곤지 찍은 얼굴로 개울가 옆에 앉아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 같았다.  분홍빛 사랑 속에 나비와 벌들은 노래와 춤으로  향연을 베풀었다. 살구꽃 향기가 콧등을 간지러움 피는 정오 한낮, 간밤에 내린 봄비로 흐르는 맑은 물이 싱그러움을 타고 맑게 계곡을 흐를 때, 나무는 가지마다 풋풋한 옷을 입고 긴 엄동선 어긋났던 몸이 수액을 타고 제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쫑긋쫑긋 돋아난 새순의 향이 생동하는 기운에 불붙은 녹음의 향연 속에  나무는 나무마다 자손을 더 많이 낳으려고 아옹다옹 아귀다툼에 뒤서거니 앞서거니였다.  밤사이에 내린 비로 풋풋한 잎이 향으로 온 산을 진동시킨다.  이 시기엔 꽃향기에 취해 늘 산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나비되어 훨훨 날아 올라가는 재미는 가슴 속에 고인 헛바람을 바람결에 날리는 치료제였다.  연초록의 향연이 물결치는 나뭇잎을 보며,  한 잎 한 잎을 쓰다듬어 주었다.  초록이 하늘빛에 녹아져 가슴 속에 스며드는 느낌은 구름처럼 포만감이 커져 마음에 꽉 채워져 세상을 다 갖는 기분이었다.

 

   사춘기 시절엔, 관악산 골짜기가 모자라 주마다 우이동이든 수락산이든 헤집고 다녔다.  비지땀을 흘리며 녹초 되었다가 정상에 섰을 때의 환희!  그 환희란 맛본자 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굽이굽이 산등선에 오르면 힘은 들지만 조금만 참으면 정상에 오른다는 희망에 희열이 솟구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가슴을 연다.  그 시절,  산은  유일한 희망과 인생을 설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주었다.  산의 매력은 계곡 마다 흐르는 물줄기라 싶다.  물줄기들은 빛깔이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  물줄기를 올라갈수록 수정빛 이다.   반면 굽이쳐 내려가는 물일수록 개구쟁이 등살에 엉켜있어 뿌옇고 흙탕물에 가깝다.  하지만 더러운 물은 돌멩이에 의하여 정화되어 다행이다.

 

   물은 환경에 따라 정화되는 것도 다르고. 물의 흐름에 따라 소리도 다르게 난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이치도 매 한가지인 듯 싶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이치에 역행하지 않고.  물 흐르듯 평탄한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다른 것은 계곡의 줄기에 따라 다르고.  경사와 흐르는 계곡의 깊이와 돌들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부딪히는 힘이 다르기에 소리도 제각기 다르다.  졸졸졸 흐르는 물이 좔좔 소리를 지르다가도 겹경사를 만나면 오십 미터를 단숨에 뛰어갈 때, 내 뿜어 내는 호흡처럼 가파른 목소리가 되어 쏟아져 단번에 쫙 내려가기 때문이다.

 

    물소리가 흐르는 물줄기와 부딪히는 제각기 다른 장애물에 의해 다르듯 우리네 인생사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 봤다. 하지만 정작 그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自我)라 여겨진다흐르는 계곡의 물줄기를 누구나 공유하는 세상이라고 표현해 본다면. 물줄기 속에 부딪히는 것들은 결국 자기 안에 감춰진 것들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자기만의 이기심, 아집, 교만, 거짓, 질투, 분냄, 술수, 갈등, 당 짓는 것 등 의 것들과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오래 참음, 온유, 겸손, 충성, 긍휼, 절제 등의 것들로 인생 여정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해가 생겼다.  이해가 되었다.  삐딱해졌다.  바로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인생이라는 물줄기가 자기안의 장애물로 인하여 세상 속에서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은은하게 퍼져가는 호수 물처럼 되었다가 폭포처럼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자기 안에 감춰진 빙산(氷山)으로 한 편의 행복한 드라마가 완성되거나, 반면 한 편의 비극적인 오페라가 펼쳐지는 것이라 싶다.  산이 멀어졌던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송충이 잡는 행사 때문이었다.  남학생들은 집게로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 봉지에 넣었다.  그것을 공기놀이 하고 있는 내 앞에 던졌다. 수십 마리의 송충이가 털을 새우고 일시에 봉투에서 쏟아졌다.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이후 소풍가는 것조차 싫었다.  하지만 다시 산이 좋아진 후 등산을 자주 갔던 기억이다.

 

  산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연이다. 인간사 꾸미고, 가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비판하듯.  우주 삼라만상, 창조주의 섭리 하에 철따라 우로를 통해 반복적으로 꽃이 피고, 잎이 지고, 열매 맺는다.  산 정상에 올라와 산 아래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성냥갑처럼 작게 보이는 집들로 인하여 삐걱되었던 마음도 하찮은 것이 된다. 아예, 바람 속에 마음을 훅 털어 버린다. ‘움켜지면 없어지고.  버리면 더 좋은 것을 갖게 된다.’는 법칙을 발견한다. 깨닫는 순간 텅 빈 마음에 여유로움이 꽃으로 피어난다마음이 부자가 되어 산에 있는 동안은 시간도 내려놓게 되어 행복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LA에서 자주 찾는 벌몬트 길로 들어서서 올라가는 그래픽스 천문대 쪽에는 물줄기를 쉽게 찾을 수가 없어 아쉽다. 그래서일까! 어린시절 옆집 가듯 다녔던 관악산이 그리움으로 내 안 가득 메아리친다. 하지만 천만다행이다. 가까이에 산이 있기에 그곳을 찾아가면 잠시나마 휴식이라는 절묘한 보약을 선사 받는다비록 시원한 물줄기를 쉽게 찾을 수 없어도 자연에 대해 고마움을 뼛속까지 느껴지는 순간을 늘 경험하기 때문이다. 산을 통해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나를 내려놓게 하고. 산자수명(山紫水明)에 시간의 쳇바퀴를 벗어던지고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얻을 수 있어 기쁘다. 

   

  산이 좋다고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멋진 선물이다. 만물을 정복하라는 의미가  힐링속에 심상에서 감사로 오롯이 펄럭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2 수필 노년이 영광이길 소망하는 이 아침 오애숙 2016-07-13 2299 1
21 수필 여름 휴가철 오애숙 2016-06-05 2496 1
20 수필 수필 -물위에 떠다니는 인생의 돛단배 오애숙 2016-05-28 3823 1
19 수필 힐링(첨부) 오애숙 2016-03-18 2590 1
18 수필 기록 유산 오애숙 2016-01-27 2142 1
17 수필 함박눈이 가슴에 쌓이던 그런날 오애숙 2015-12-28 2721 3
16 수필 겨울의 문턱에서 [1] 오애숙 2015-12-26 2856 2
15 수필 저무는 한 해, 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오애숙 2015-12-25 2660 3
14 수필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꽃 송일 생각하며 오애숙 2015-12-18 2864 3
13 수필 LA 그리픽스에서 [2] 오애숙 2015-12-17 2788 3
12 수필 공기중 비타민 [1] 오애숙 2015-12-03 2319 3
11 수필 (백) 작가로서 희망사항 [2] 오애숙 2015-10-22 2089 4
10 수필 천연 인슐린 여주의 추억 [4] 오애숙 2015-10-08 2937 4
9 수필 신선초와 어머니 [2] 오애숙 2015-09-24 3238 4
8 수필 이 아침에 [2] 오애숙 2015-09-15 2150 4
7 수필 광복 70주년 기념 수필 "허공 울리는 절규" 영상 수필 오애숙 [1] 오애숙 2015-08-11 3248 4
6 수필 학창시절 보랏빛 추억 [2] 오애숙 2015-06-07 3952 4
» 수필 오애숙 2015-06-07 2971 4
4 수필 시인의 마음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시) [2] 오애숙 2015-06-07 2753 4
3 수필 오롯이 가슴에 피어나는 그곳 오애숙 2015-04-09 4159 4

회원:
30
새 글:
0
등록일:
2014.12.07

오늘 조회수:
17
어제 조회수:
82
전체 조회수:
3,119,747

오늘 방문수:
13
어제 방문수:
40
전체 방문수:
994,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