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물 위에 떠 다니는

인생의 돛단배


                                                                                           은파 오 애숙

 

   이민 초기다. 불혹의 나이에 이민 온 까닭이어서일까 늘 마음이 찹찹했다. 다행히 성인 학교에서든 교육학 공부 중이든 누군가 늘 인도한 곳은 바닷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바다에 가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면 어느 사이 마음의 평온이 왔고. 바다의 시원한 공기가 마음을 정화했다. 작은 희망이  새싹처럼 돋아나 해맑은 푸른 꿈을 노래했다. 그 후 자연스레 바다는 나의 친구가 되었고. 인생 상담자가 된 듯 평화의 안식을 제공해줬다. 지금도 이민 초기 갈팡질팡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1년을 배회하던 마음이 바닷가를 통해 갈등의 장막이 걷혔다. 마음이 안정되어 미국생활이 적응이 되어갔고 직장 생활도 자리 잡혀갔기에. 특별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미국에 이민 와서 오랜 세월, 편안하게 살았다 싶다. 가끔 어머니께서는  “이민와서 네 나이에 너처럼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친정어머니께서는 부러운 듯 넌지시 말씀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이민 와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한국 주부들이 거의 가정에서 가사 일만 하듯, 집안일만 하셨던 분이 고달픈 이민생활 속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으니. 삶이 고단의 연속이었으리라 싶다. 식당에서 밤새워 일할 때도 있었단다. 또한, 엘에이 폭동사건으로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민 오실 때 집을 처분하여 가지고 오신 돈을 다 잃었단다. 세탁업 하시려다 손도 못 대고 돈을 다 날리신 거다. 그 울분으로 협심증이 생겼고. 음식을 통 입에 될 수 없게 되자, 위가 줄어들어 위장까지 늘리는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얼마나 고단의 연속된 삶을 사셨으면, 병석에서 곧장 하나님께 갔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을까. 측은함으로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한다. 그것에 비하면 나의 이민 생활은 안식년의 연속으로 휴식과 내일의 도약을 위한 야무진 꿈의 연속이었 싶다. 나의 어머니가 든든하게 내 곁에 계셨기에 공부도 편안하게 할 수 있어 삶이 풍요롭고 안정된 삶이었다 싶다. 


  이민 온 후 지금까지 삶이 순풍에 돛달 듯 살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부터 내 생각이, 마음이, 순풍에 돛달 듯 항해하길 원했으나 뜻하지 않게 순풍에 돛을 단 배가 깊은 산 협곡의 폭포에서 떨어지듯 떨어졌고, 나이아가라라는 인생의 거대한 폭포를 만난 적도 있다. 다행히 인생의 나이아가라라는 거대한 폭포에 나가떨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민의 삶이란 모든 이가 겪는 삶이지만 순탄한 삶은 아니다. 나 역시 삶이 순탄하길 원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요즘 들어 가슴으로 뼈저리게 느끼며 뒤늦게 철이 든다. 과거, 남의 집 불구경하던 것이 내게 현실로 닥쳐온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내게 시사 한 바는 우리네 삶은 물 위를 떠다니는 배와 같다 싶었다. 인생은 마치 작은 돛단배가 되어 휘젓는 세파에 엉겨 붙어 꼼짝달싹할 수 없이 늪지대로 형성된 곳에 밀려들어가 뜻하지 않게 처박혔다가, 되돌아서 나오려 해도 꼼짝달싹할 수 없을 때도 있고, 망망대해를 홀로 지나가는 돛단배가 된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이라고. 


  돌이켜 보니 무탈의 한세월 보냈다고 생각되었으나, 휘청거리는 허리가 휘어져 꼬꾸라질 듯 위기에 처할 때도 있었다. 주변에 아주 가까운 지인知人은 나이가라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잘 나가던 인생이 경제 위기의 휘엉돌이 속에 들어가,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져 나가떨어져 가는 것도 봤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천만장자가 된 듯 흥분의 도가니에 사로잡혔던 부동산 업주였다. 직원이 100명이 넘는다고 자랑했었다. 


  하지만 경제 불황의 휘엉돌이 속에 열 개도 넘는 집을 날리고, 애지중지하던 자동차 정비 공장마저 날리니. 부귀영화는 한순간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가 인생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떨어져 나갔을 때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내동댕이쳐진 그 물속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에 갈채를 주고 싶다. 


  다행히 그가 하나님을 의지한 까닭에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모든 헛된 욕망을 접고, 택시운전기사가 되어 앞만 보고 전진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풀리지 않아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생각된다. 얼마 전 집 문제로 급히 오천 달러가 필요하여 일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증금과 빌려 간 돈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에 다시 전화해 주겠다고 했으나, 소식이 없었다. 세월이 8년이 흘렀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한 것 같다. 어찌 그 사람뿐이겠는가. 


  우리네 인생은 마치 흘러가는 강줄기를 따라 물 위를 포박해가는 배와 같다 여겨진다. 인천 앞바다의 흙탕물처럼 보이는 것이 물이고, 산타모니카 비치의 검푸른 초록빛 바다가 물이다. 내가 좋아했던 흑산도의 해맑은 초록빛 바다가 물이다. 또한, 파란 하늘빛 부산 바다든 깊은 산 협곡의 폭포물이든, 아니면 거대한 나이가라 폭포물이든, 우리는 세상이라는 물 위를 항해하는 배 위에서 살아간다. 지금 내 앞에는 산타모니가 해변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지평선이 놓여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선상이라 싶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았던 인생살이. 지평선 아득히 먼 그곳에 내 마음의 고향이 아른거리고 어릴 적 추억이 바닷바람 일렁이듯 다가오지만, 바닷바람을 잡을 수 없듯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추억의 무채색 그림이 팔랑팔랑 내 가슴 속에서 오롯이 나부낀다 싶다. 살아생전 이억 만 리 태평양 망망대해를 지나 언제 내 고향에 한 번 가게 될는지. 현재는 알 수 없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열망을 갖고 산다고 한다. 나 역시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은 나를 새끼줄로 꼼짝달싹 못 하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꽈 놨다. 


  내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어린지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 싶다. 정처 없이 떠다니는 인생 역에 지금의 나에겐 내 마음의 고향은 단지 내 아버지가 거하는 하늘나라다. 삶이라는 물 위를 배회하며 떠다니는 인생의 돛단배에 몸을 싣고 마지막 인생의 종착역에 머무는 그 순간까지 나침판이 되신 나의 구주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며 항해하리라 다짐한다. 천만 다행이다 싶다. 


  마음이 상쾌하다. 목표가 있고 내안에 나침판이 있어 기쁘기에. 도달하는 목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갈증 날 때 시원한 한 잔의 물을 단숨에 마셔 갈증을 해소하듯 기쁨이 내 안에서 나침판이 되어주신 주님 한 분 때문에 충만한 기쁨으로 일렁거린다. 이 세상을 물로 비유한다면 우린 물 위를 떠다니는 배와 같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내 본향 내 아버지 집에 가기까지 거센 풍랑이 일어도 주가 내안에 있어 두려움이 없다. 


  어릴 적 교회학교에서 배운 노랫말이 떠오른다. “폭풍 만난 배 탔어도 미소해 집에 가기까지. 여차, 집으로 여차 집으로 폭풍 만난 배 탔어도 미소해. 집에 가기까지.” 내 앞에 펼쳐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내가 도달해야 할 곳이 아직은 아득히 멀겠지만 목표 지점이 나를 지으시고 만드신 내 아버지 집이 있기에. 내 아버지 집을 동경해 본다. 눈물도 슬픔도 없는 그곳. 기쁨만이 흘러넘치는 곳.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을 반드시 지나야 아버지의 품으로 갈 수 있는 그곳.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더 있기에. 더욱 내 사모하는 아버지 집을 동경해 본다. 


  다시 춤추는 바다를 바라보니. 철썩 철 씨르르~ 대자연의 오케스트라의 합창 소리가 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선사한다. 역시 바닷가에 잘 왔다는 생각에 감사가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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