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시인

수필 조회 수 3406 추천 수 5 2014.12.27 22:39:06

 

   

                                                                                                하늘시인

 

 

                                                                                                                                                                              은파    오  애   숙

 

  기하다. 내 눈이 창공을 날아가니, 모든 것들이 새롭다. 바쁘게 생활할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이 새록새록 다가와 눈웃음친다.

 

   건강에 적색신호가 깜박인다.  눈도 그 전보다 더 나빠져 녹내장에다 백내장이란다.  의사선생님이 라식수술하기 위해 검진결과로 글 쓰는 일에 멈춤을 선언한다. 하지만 내 마음의 눈이 청아한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마음의 눈이 새로워진 까닭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산타모니카 베니스 하우스를 갔을 때 일이다. 엘에이에서 서쪽으로 30분가량 가면 산타모니카의 링컨대로의 사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베니스 시티다. 바닷가의 긴 백사장 옆에는 베니스 하우스가 있다. 이곳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베니스 하우스 보기 위해 차를 도로변에 세워놓고, 군가의 집 뜰이라 생각되었던 곳에 들어섰다. 몇 발자국을 움직이니. 나무계단이 밑으로 45도 경사되어 내려가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30미터정도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씩 내려 갈 때마다 메케한 먼지가 내 입가를 덮쳤다. 하루살이도 푸드덕거리며 내 시야를 가린다. 심하게 일어나는 먼지를 보니,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곳 같다. 사람 대부분이 그 밑으로 내려가면, 베니스 하우스가 나오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거라 생각되었다. 나 역시 전혀 알지 못했다. 수십 개의 계단 오른 쪽 옆에는 여러 가지 이름 모를 야생풀들이 알록달록 피어있. 담에는 담장이 넝쿨이 짙푸르게 녹색으로 담장을 채색해 놨다. 갑자기 시선이 멈춘 곳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벌써 여러 장의 사진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십 미터쯤 내려오고 나서야 담벼락에 몇 개 걸려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벌레-나비> 그림이다. 나의 눈에 제일 먼저 애벌레가 들어왔다. 그 애벌레는 내 동공을 순간적으로 크게 열어 놨다. 연초록색의 징그러운 애벌레다. 어릴 적에 배추 잎사귀에서 본 것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벌레를 무서워했는지...... 지금도 실제로 벌레를 발견하면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징그럽다. 그림을 보는 순간, 반사작용으로 소름이 돋았고. 어릴 때 추억이 나풀거렸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일 년에 한 번 학교에서 송충이 잡으러 야산에 갔던 기억이다. 대개 남학생들은 송충이를 잡으러 가지만 여학생들을 대부분 들러리에 불과했다. 남학생들이 잡으러 간 사이에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앉아 있거나 공기놀이를 삼삼오오 짝지어 한다. 내가 친구들과 열심히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송충이가 내 앞에 뚝 떨어졌다. 몸이 전선에 감전되듯 찌르르했고, 소름이 닭살 돋듯 돋았다. 남학생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송충이를 잡아 내 앞으로 던진 것이다.  

 

  그후 회색의 도시가 된 서울, 시간의 쳇바퀴의 학교생활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가게 했다. 결국, 그 사건 이후 자연은 나 스스로를 격리시키기 충분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푸르름이 나를 다시는 풍요 속의 평화로 인도하지 않았다. 장되지 않은 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메케한 먼지를 하늘 끝으로 날렸고. 차마다 희뿌연 시야를 만들어 들판을 싫어하게 되는 동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들판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각종 벌레가 들끓는 곳! 어느 사이에 내 안에 각인된 삶은 <아름다운 자연>을 거리에 쓸모없이, 나뒹구는 돌멩이로 만들게 했다. 그러던 중, 3 때 수련회를 청평 쪽으로 가게 되었다. 청평에 무슨 이유였는지 몰라도 마지막 날에 갔다. 교외선에서 내려 바삐 수련회 장소로 향하다가 주변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과 에머란드빛의 푸른 하늘, 녹색으로 물든 푸른 산야! 한 폭의 그림이 내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 여기가 어디인가 산천초목 우거진 숲 속 가시덤불 비탈진 곳 가도 파란 숲 속에 파란꿈 있네. 물안개 걷히고 파란 꿈에 꿈이 들판 날으니. 먹장 치는 폭풍우에도, 활짝 웃어 날갯깃 열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나를 문학소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하나님은 내게 그곳에서 자연 계시를 통해 나의 눈을 여시고 신령한 것을 맛보게 하셨다. 그 후 자연은 내게 인생의 몽학선생이 되었고. 내 인생의 목적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에 푹 빠져 살게 했다.  자연을 통해 창조주의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그때가 사춘기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싱그러운 풀 냄새, 초록의 들판 속에 <사운드 뮤직>의 마리아가 되어 있었다.

 이제 이순(耳順)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간다. 지난날의 추억이 아지랑이 되어 내 안에서 아롱진다. ‘나이가 들어 늙어 간다는 것은 <어린이>가 성장하여 <젊은이>시절을 지나 지난 인생을 기억하며 아름다움을 먹고 사는 것이며 그 그리움을 회상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갑자기 내 안 가득히 하늘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그 무지갯빛이 어느새 하늘에 다다른다. 하늘 끝으로 파안되어 크게 웃음 치던 것이 부메랑 되어 내게 노래한다. 그동안 내 시야를 가렸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청명함이 마음의 잿빛 음예공간을 날려버린 것이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쁘게 생활할 때 그냥 지나치던, 길가의 나뭇잎이 나를 부를 때 이제는 내가 응답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다가와 눈웃음칠 때, 내 마음이 연분홍 꽃으로 피어난다. 뭔가 새록새록 다가와 닫쳐진 창을 열고 눈웃음치니, 마냥 새롭다. 여전히 마음의 눈이 열려있다.

 

  신기하다. 오후인데도 마음이 청아한 아침 햇살에 빛나듯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다. 내 눈이 하늘 시인되어 날갯짓하니,  모든 것이 신비롭다. (*)

 

 

 

 


이점선

2015.10.24 09:56:58
*.192.188.104

'하늘 시인'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청아함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그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sort
6168 (시)백목련 외 [1] 오애숙 2014-12-08 12218 14
6167 (시)시인의 노래<시작노트>[창방] 외 시심, 진상파악하기(시) [1] 오애숙 2014-12-09 12618 13
6166 갈매기의 꿈/ 사진 첨부(시백과) 오애숙 2014-12-08 12519 13
6165 현대인의 불감증 외 2편(시) 영광이란 이름표 [3] 오애숙 2014-12-15 11059 8
6164 막장 열었던 자유 [1] 오애숙 2014-12-15 10961 7
6163 (시)은빛이 날개타고 가슴 속에 출렁일 때 외 5편 오애숙 2014-12-28 5945 5
» 수필 하늘시인 [1] 오애숙 2014-12-27 3406 5
6161 (시)어느 참회자의 눈물 오애숙 2014-12-27 6155 5
6160 겨울날의 단상(시) / 오애숙 2014-12-22 6099 5
6159 2 편 옛 생각, (시) 고향 찾아 이역만 리 [1] 오애숙 2014-12-24 7296 5
6158 (시2)광명한 아침의 소리외 3편 [2] 오애숙 2014-12-19 8583 5
6157 언제부턴가 [2] 오애숙 2017-04-21 1844 4
6156 첫사랑의 향기(6/16/17) [4] 오애숙 2016-01-23 2286 4
6155 그리워, 그리워 당신 그리워 오애숙 2016-01-21 1498 4
6154 삶이 햇살로 메아리칠 때 오애숙 2016-01-21 1668 4
6153 걸어 잠근 분노의 빗장 (위안부 소녀상 보며) [5] 오애숙 2016-01-20 1715 4
6152 (시)불멸의 눈물(위안부 소녀상 보며) 오애숙 2016-01-20 1495 4
6151 천만년의 북소리로 울리는 겨레의 한(위안부 소녀상 보며)(시) [1] 오애숙 2016-01-20 1675 4
6150 想, 影子 [2] 오애숙 2016-01-22 1285 4
6149 수필 (백) 작가로서 희망사항 [2] 오애숙 2015-10-22 2089 4

회원:
30
새 글:
0
등록일:
2014.12.07

오늘 조회수:
12
어제 조회수:
33
전체 조회수:
3,119,248

오늘 방문수:
8
어제 방문수:
28
전체 방문수:
994,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