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필에 대한 이론과 창작원리 ㅡ 박양근(부경대영문과교수, 문학평론가)
 
 
♠♠♠♠♠  단수필은 그림엽서다  ♠♠♠♠♠
 
     1. 시대적 배경
새로운 세기의 문학적 양식인 밀레니엄의 글쓰기 양식의 특징은 "미니문학"이다. 미니문학이라는 글쓰기 양식은 월드 와이드 웹(WWW)과 디지털 문화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혼성이다. 인문주의 시대에는 문학적 혼성이 문학과 철학의 결합이라면 과학정보시대의 혼성은 문학과 과학의 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홈페이지와 블로그(blog: 웹(web)의 b와 일지, 기록의 의미를 지닌 log의 합성어로, 쉽고 편하게 꾸밀 수 있는 나만의 온라인 공간)의 스타일에 맞게 모든 문학양식이 갈수록 짧고 재치가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문화의 첨단을 걷고 있는 한국에서의 미니문학은 다른 나라에 앞서 21세기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미니문학은 단순히 짧은 글이 아니다. 미니문학은 인터넷 문화에 적응하는 인간의 감성을 포착하여 표현하는 양식이어야 한다. 평면적이고 1차원적이고 2분법적인 원고지 위의 글쓰기에서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화면상으로 전환하는 글 쓰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2. 이론적 근거
그러면 미니문학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탈리아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이며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미니픽션은 한 장의 사진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덧붙여 "20세기의 위대한 두 작가가 우리에게 밀레니엄의 비전을 보여주고 떠났다. 영국의 현대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는 언어로써 월드 와이드 웹(WWW)의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 태생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디자인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밀레니엄의 비전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소설과 시와 수필과 드라마 기법의 대안으로 등장한 기법이 소설에서는 미니픽션, 시에선 행시(行詩), 수
필에서는 단(短)수필, 드라마에서는 장(章)연극이며 행위예술에서는 플래시 몹(Flash Mob)(플래시 몹란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도심 번화가에 모여 리더의 지시에 따라 동시에 소리를 지르거나 동물 흉내를 내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집단 해프닝)이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미니픽션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기존의 픽션을 영화에 비교하면 미니픽션은 한 장의 사진이다. 모든 주제를 압축하는 강력한 하나의 이미지, 다양한 해석 앞에 열려 있는 의미의 옹달샘으로서 동양적 미니픽션의 특징은 선미(禪味) 가득한 산문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수필은 어떠한가.
  기존의 수필이 유화, 혹은 수채화라면 단수필은 한 장의 엽서다. 단수필은 지금 5매 수필, 미니수필, 짧은 수필, 혹은 '장(掌)수필'로 불려지고 있지만 명칭이 무엇이든 단수필은 결코 짧기만 한 수필이 아니다. 단수필의 특징은 일반수필이나 장(長)수필과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다. 단편소설과 별다른 미니픽션보다 주제의식을  더욱 압축하고 응축시켜 강렬한 이미지, 선명한 주제성, 넉넉한 인간미 외에 미니수필이 추구하는 선미 외에 깊이 있는 영성(靈性: Spirituality)의 소통력을 담아야한다.
 
     3. 단수필의 장점
 
  단수필은 짧다는 점에서 주제 전달이 용이하고, 구성의 묘미가 돋보인다. 속도성, 열독성, 경쾌성은 현대독자들의 가독성이라는 조건에 부응할 수 있다.
  나아가 농축된 소재와 참신한 기법으로 주제를 펼쳐내기 때문에  팽창이 아니라 응축이라는 수필의 본질과 특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이러한 구심력은 내용이 빈약할지 모른다는 작가와 독자의 불안감을 불식시켜 소통의 안정성을 확보해준다.
  무엇보다 응용 기법의 다양화가 실험될 수 있다. 현재 수필에서 사용되는 시적, 소설적 기법 외에 드라마적 기법이나 시네마적 기법을 첨가할 수 있다. 디지털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문학적 특성은 상황의 인상화와 입체화이다. 이제 문학은 설명을 통하여 독자가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하기 보다는 입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자의적으로 순간적인 현현(顯現)을 이루어내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서술기법이 다양화해지면서 월드 와이드 웹(WWW)과 디지털 문화에 능동적으로 부응하는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단수필 창작 원리
그러면 단수필을 창작할 때 유념할 구체적인 사항은 무엇인가.
  첫째, 내용을 압축한다. 전개의 경제성을 살리려면 분위기를 조성하는 서두를 생fir하면서 단숨에 전개부로 들어가고, 하나의 에피소드나 사례를 통해 설명을 경제화 한다. 문장이 길거나 주제를 전달하기위한 여러 예문을 도입하는 방식은 피하도록 한다.
  둘째, 주제가 명료하고 참신하여야 한다. 일상적인 사건으로서는 독자의 인식을 일깨울 시간과 여력을 가지지 못한다. 기발한 착상과 역사고, 낯선 관점을 도입하여 독자의 인식력을 고조시켜야 한다.
  셋째,  서정성을 가미하려면 수식어가 아니라 서사로서 서정미를 살린다. 행동은 의미를 형상화할 수 있음으로 설리나 서정보다는 서사적 구도가 단수필을 주제를 확보하는데 용이하다.
  넷째, 치밀한 구성이 요구된다. 구성을 잘 짜야 전달력에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단수필에서 가장 적절한 구성은 기승전결이라는 4단구성이며 반전이 가미되면 메시지가 입체화되고 위트와 유머가 활성화된다. 
  다섯째, 개성적인 기법의 도입이다. 아무리 단수필이 양적으로 짧다고 하여도 시적인 분위기보다는 산문다워야 한다. 소재, 주제, 문체, 나름의 특성과 산문정신과 개성이 조화를 이루면 에스프리와 흥미를 배가하게 된다.
 
     5. 닫으며
문학은 사회구조에서 상부구조를 속한다.  K.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상부구조는 경제라는 하부구조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IT시대의 하부구조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정보시스템이다. 문학도 문화의 하부장르로서 IT정보가 지니는 속도성, 쌍방향성, 대중성의 영향을 받게 된다. 단수필은 이러한 추세의 필연적인 현상이자 소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단수필의 필요성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이 없지 않다. 우선 단편적인 정서에 빠져 거시적인 안목이 소홀히 되고,  짧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수필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수필에 대한 객관적 비평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수필가들이 단수필을 쓰고, 단수필 특집, 단수필 단행본, 동호모임까지 나타날 정도의 영역과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 열린 장르로서 단수필이 한국수필문학에서 강력한 미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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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단수필의 전범과 해설
 
 
 
 
1)  <깊은 슬픔> 김홍근
 
 
 
 
서울국제 무용축제에 참가한 쿠바의 안무가 로사리오가 한국의 선승을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육조사로 안내했다. 그녀는 주지 스님에게 말했다.//
“밖에서 오는 고통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깊은 슬픔은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무엇으로 그 슬픔을 치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치 나비가 거미줄에 걸렸을 때, 발버둥치면 거미줄에 더 감기는 것처럼 되니까. 그냥 가만히 두고 보는 거지요. 그러면 슬픔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게 됩니다. 당신은 예술가니까, 일테면 예술의 에너지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생각이 많은데, 그 생각들을 혼자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생각으로 생각을 없애려면 자꾸 증폭되기 때문에 힘만 들고 불가능하지요. 그럴 땐, 가만히 두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들이 지혜로 변하는 때가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번뇌가 곧 보리라고 부르지요. 번뇌를 치유하는 길은 그것을 없애는 게 아니라, 지혜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녀는 스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녀는 답례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간결하지만 원초적인,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이번엔 스님이 물었다.
“춤이란 무엇인가요?”
“허공에 인간의 몸으로 선을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스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인생도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 해설>
 
 
  구성에서 위 수필은 4단이며 서사적 구도를 바탕으로 하다. 특히 선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면서 노승의 담론과 무용가의 무용이 대비를 이루면서 번뇌의 소명에 대한 해법을 공통적 주제로 삼고 있는 특징이 발견된다
 
 
 
 
2) <운수 좋은 날> 정호경
 
 
 
 
버스를 탔을 때 다른 분들도 바라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어떤 싱거운 행운을 점(占)쳐본다.// 그러나 그것은 좀체로 오지 않는다. 노파가 아니면 덩치 큰 중년 남자가 허약한 나를 한쪽으로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하루는 꽃가루의 향기를 문 한 마리의 나비가 사뿐히 내 어깨 곁에 날아와 앉았다. 묘령의 아가씨. 어느 날보다 차바퀴의 진동이 가볍다. 2, 3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느꼈다. 아가씨가 내 옆으로 가볍게 접근해 옴을. 나는 거의 전신 마비의 황홀감에 숨죽여 있었다. 20여 분간의 긴장된 진공(眞空). 그러나 나는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아가씨는 입을 헤 벌리고 얌전히 졸고 있었다. 고 귀엽고 원통한 모습이여!
  -아소 님하 도  드르샤 괴오쇼셔-
 
 
 
 
<작품 해설>
 
 
 
 
  이 작품은 형식상으로 3단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도입부분은 2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 글도 서사적 구도로 엮어져 있으면서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수필적 서정미를 발휘하는 표현과 노인의 백일몽을 노출시킨 유머는 수필의 재미를 증가시켜준다.
 
 
 
 
3) <기도>  정주환
 
 
 
 
어느 성직자는 기도를 하면 뜻한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한 농부는 성직자의 가르침대로 매일 기도만을 드렸다.// 그는 어느 봄 날 들에서 씨앗을 뿌리다가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일손을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 씨뿌리기가 너무 힘들어 죽겠습니다. 대신 좀 뿌려주십시오.”
  하나님은 농부의 요청대로 대신 씨를 뿌려주었다. 농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풀이 자라자 김을 매어 달라고 기도했다. 김도 하나님이 대신 매 주었다. 드디어 추수 때가 되었다.
“하나님 추수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대신 좀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은 종부 대신 추수도 말끔히 해 주었다. 농부는 이런 식으로 매사를 처리하였다.   그는 추수한 곡식 뒤처리까지 하나님에게 부탁하였다. 하나님은 그것도 들어 주었다.//
  그런데 곡간 문을 열자 있어야 할 곡식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농부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추수한 곡식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하나님이 대답하였다.
“너는 먹는 일조차 기도로 해결하려무나.”
“예?”
 
 
 
 
<작품 해설>
 
 
 
 
위의 단수필은 메시지라는 주제성이 돋보인다.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는 구도로써 독자에게 친밀감을 줄뿐더러 대화체를 통해 드라마 기법을 강조한다. 이것은 독자에게 사실성을 부각시켜 주제의 전달력을 높일 수 있는 단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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