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45)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의 차이점]

                                                     이   웅   재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의 차이점? 얼핏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거 다 ‘문학’이란 이름 속에 묶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 크게 보면 한데 묶인다. 그러나 분명, 그 이름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무언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운문과 산문? 그런 것 가지고는 구별이 안 된다. 예전에는 소설도 운문으로 쓰이지 않았던가?

 무엇이 다를까? 똑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그 장르를 다르게 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분명 그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문학 작품을 수학이나 과학처럼 ‘1+1=2’라는 명백한 등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 점이 문학의 특장이 아닐까 싶은 점이기도 한데, 그런대로 구별되는 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얼핏 구별되는 특성들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시. 시는 무엇보다도 이미지[심상(心像)]의 형상화를 생명으로 하고 있는 장르이다. 이상섭(李商燮)은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1976)에서 예컨대 김소월의 「산유화」와 같은 ‘심상이 없는 우수한 시’도 있다고는 하면서도, “심상은 현재 시의 가장 본질적 요소라고 보는 것이 보통”(p.186)이라고 하면서, “문학에서 말하는 심상은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시키도록 자극하는 말을 뜻한다.”(p.183)고 하였다. 그리고 가장 흔한 심상은 ‘푸르고 높은 하늘’과 같은 묘사적 심상이라고 하였다.(p.184) 쉽게 말하자면, ‘언어에 의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심상에 관한 문학론의 가장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비유적 언어”(p.185)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주로 ‘비유에 의한 언어의 그림’이 곧 심상이라는 말이겠다.

 유치환의 「깃발」을 예로 들면, ‘소리 없는 아우성’ 이라는 매개어를 이용하여 ‘나부끼는 깃발’을 나타내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이육사의 「절정」에서의 ‘매서운 계절의 채찍’과 같은 비유도 ‘극한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심상일 것이다. 그 극한상황은 ‘마침내 휩쓸려 온 북방’의 수평적 한계에다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의 수직적 한계까지 거치고서도, 그것도 모자라서 ‘서릿발 칼날진 그 위’의 심리적 한계로서의 ‘절정’으로 심화되면서 시적 표현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봉건의 「피아노」를 보자.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피아노 소리의 생동감 넘치는 심상을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고 하였다. 2연에서는 그것을,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이라고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피아노 선율을 통해 느끼는 감동의 힘이 그만큼 강렬함을 형상화한 비유적 심상이라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설을 보자. 소설은 한마디로 ‘사건의 서술’이 그 특징이니, 대부분의 소설은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건의 서술’은 대체로 객관적이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한다는 것이다.

 하근찬의 「수난이대」를 예로 들어 보자.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시대에 징용에 끌려가 남양(南洋)의 섬에서 비행장 공사를 하다가 왼팔을 잃어버린 불구자이다. 그리고 그 아들 박진수는  6 ․ 25때 참전(參戰)하여 한쪽 다리를 잃고 상이군인(傷痍軍人)이다. 귀향(歸鄕)하는 그 아들을 마중 나간 박만도가 기차역에서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눈앞이 노오래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한참 동안 그저 멍멍하기만 하다가,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도는 것이었다.

 "에라이 이놈아!"


 객관적이다. ‘보여주기’만으로 끝난다. 작가의 논평이 없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 작가가 개입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가급적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소설이다. 다음은 이 작품의 결말 부분이다.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이다. 진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가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외나무다리는 도저히 건너갈 재주가 없고…….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

 진수는 퍽 난처해 하면서, 못 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만도는 등허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허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리면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

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했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들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끝 두 문장을 보자.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부자(父子)의 화합(和合)은 곧 상부상조(相扶相助)로써 난관을 극복하려는 ‘수난 극복의 의지’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만, 작자는 짐짓 꽁무니를 빼고,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딴청을 부리고 있다. 논평 혹은 평가는 독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결말 부분을 보자.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 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선 윤 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 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한 데 대하여 작자는 논평은커녕 그 이유마저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들 스스로가 알아내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물론 알고 있다. 앞부분의 소나기가 온 후의 일을 서술한 대목을 보면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도랑 있는 곳까지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후의 사건 서술을 보자.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 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그런데도 작자는 아주 시치미를 딱 떼고 있다. 독자들의 몫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수필을 볼 차례가 되었다. 흔히들 수필은 그 소재나 형식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 훨씬 자유롭다고 한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수필의 소재요, 무형식의 형식을 지닌 문학이 수필이라고들 한다. ‘자유롭다’는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구속이나 속박 따위가 없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수필에서는 그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시처럼 이미지를 통해서만 나타내어야 하는 것도 아니요, 소설처럼 그저 보여주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해 버려도 별무(別無) 문제라는 것이다. ‘별무문제?’ 한마디로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겠다. 수필을 ‘가장 개성적인 문학 장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어찌 보면 이 ‘자유로움’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수필 작품에서는 ‘가치판단’과 관련된 지은이의 개입이 비교적 자주 일어난다. 서구적 개념의 소논문과 같은 경우도 ‘essay’로 분류된다는 점은 수필이 그만큼 작자의 주장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요새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옥션(www.auction.co.kr)”에서 ’93년 발간 당시 가격 1,500원보다 700배 이상 높은 액수인 110만 원에 낙찰되었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역시 글쓴이의 가치판단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지 않은가?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의 일절을 보자.


이와 같은 대산과 고원과 장곡(長谷)과 심협에 이렇듯한 미소(美素)가 이만한 경(景)으로써 생성하였음은, 어쩌다가 한 번 있을 일이요, 어쩌다가 한 군데 생긴 것인 만큼 그 신기하고 소중함이 여간일 수 없다. 일체의 각삭하고(나무나 돌 따위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어 깎다) 간교하고 이상야릇한 기교랄 것은 하나도 가지지 아니한 채, 다만 큰 바대(바탕의 품)와 다만 굵은 금과 다만 평순함(성질이 온순함)과 다만 탄솔(坦率: 성품이 너그럽고 대범함)함만으로써 성립된 것인 만큼—아무 아로새긴 것 없이 어떠한 아로새김으로도 비방(比方: 서로 견주어 봄)할 수 없는 대기(大奇)․ 절묘(絶妙)․ 진미(眞美)․ 여호(如好: 지극히 아름다움)인 만큼, 삼지를 촛점으로 하여 출현한 미의 일대 서어클은 백두산미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실로 조화의 가장 의의 있는 한 재산일 것이다. 버성긴(벌어져서 틈이 있음) 듯하면서 촘촘할 대로 촘촘하고, 어설픈 듯한 중에 있을 것이 다 있는 이 여래미(如來美: 眞如한 아름다움)는, 물론 백두산 전 가치의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일 분면(分面: 부분적인 면모)일 것이다.


역시 작자의 ‘가치판단’이 개재되어 있다. 나도향(羅稻香)의 「그믐달」을 보아도, 작자의 개입은 두드러진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다음은 김규련(金奎鍊)의 「거룩한 본능」의 결말 부분이다역시 작자가 개입하여 가치판단을 내려주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황새도 영물(靈物)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떠날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鳥類)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愛情)이 별스러운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생태요, 본능(本能)이라 했다. 그러나 하찮은 그 본능이 오늘 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때가 되었다고 보인다. 앞에서 필자는 ‘얼핏 구별되는 특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논의한 것은 어디까지나 ‘직감적인 느낌’으로서의 측면을 말한 것일 뿐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는 모든 분야에서 ‘퓨전(fusion: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이 유행이요, 대세이다. 따라서 이제는 시적 표현의 대표적인 방법이랄 수 있는 ‘심상’의 사용이나, 소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의 ‘보여주기’의 수법 내지는 ‘허구’까지도 수용하는 수필을 쓰는 것은 어떨까 싶은 것이다. 다음은 윤오영(尹五榮)의 「달밤」이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주 짤막한 작품이면서도 특히 시처럼 ‘시각적 심상’을 통하여, 소설처럼 ‘보여주기’만으로써 훌륭한 수필의 면모를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글이 다 그렇다. 처음에는 원리라든가 원칙을 지켜가면서 글을 쓰는 것이 빠르고 쉬운 접근 방법일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후에는 그 ‘작법’ 같은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한 수필이야말로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듯이’ 씌어지는 수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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