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작품도 시간, 계절, 장소, 심리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한 해를 보내는 연말에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승리' 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교황 율리오 2세 무덤을 위한 조각상 가운데 한 점이다. 미완성작이지만 생명력과 운동감, 강렬한 감정을 인체를 빌려 구현하고자 했던 미켈란젤로의 예술 세계를 반영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 전문가들은 이 조각상을 가리켜 수수께끼 작품이라고 부른다. 나뭇잎으로 장식한 화환을 쓴 잘생긴 젊은 남자가 양쪽 다리 사이에 노인을 무릎 꿇게 한 자세로 서 있는 사연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승리, 1519∼34년, 대리석, 높이 261cm, 피렌체 베키오 궁.
힘과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근육질의 몸으로 보여 주는 젊은이는 미켈란젤로가 사랑했던 로마의 귀족 청년 톰마소 카발리에리이며, 굴욕을 당하는 노인은 사랑의 포로가 된 미켈란젤로 자신이라는 해석, 노인은 시간을 상징하며 젊은 남자는 시간의 흐름에 도전하는 젊음의 특성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음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철학 에세이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우리는 짧은 수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을 넉넉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명을 낭비하고 있다오. 마치 왕에게나 어울릴 넉넉한 재산도 적합하지 않은 주인을 만나면 금세 탕진되고, 얼마 안 되는 재산도 제 주인을 만나면 늘어나듯이, 우리의 수명도 제대로만 관리하면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오.'
젊음은 승자, 노년은 패자로 대비시킨 이 조각상을 감상하면서 이런 마음 자세를 가져도 좋으리. 시간의 빠름을 한탄하기보다는 시간테크를 잘해 시간 부자가 되겠다고.
제공: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