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이후 유동인구가 평소 대비 3~4배는 늘었다는 부산 중구의 국제시장. 영화에 등장한 화점 '꽃분이네'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이 북적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꽃분이네 간판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
영화 속 '국제시장'에 가다
"…3000원…"…. 왁자지껄, 시끌벅적…. 영화 '국제시장'의 시작은 소리다. 장면이 나오기 전 시장의 왁자한 소리들이 들릴 듯 말듯 밑에 깔려 나온다.
"드르륵, 드르륵."
토요일인 지난 3일 오전 9시 10분쯤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B동 3공구 건물 1층 한 문구점이 문을 열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주인 남자가 닫힌 셔터를 올리고 안에 쌓였던 물건들을 길가로 내놓았다. 날씨는 찼다. 스마트폰에 찍히는 기온은 영하 2도였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5~6도쯤 됐다. 부산에선 아주 추운 날에 속한다. 수첩에 글을 적는 손이 곱아 호호거려야 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윤덕수가 흥남에서 미군함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던 날,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 그렇게 추웠을 것이다.
"옆으로 좀 더 가봐." "이쪽이 더 좋은데…."
이 문구점에서 20~30여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한가했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울산에서 간절곶 해돋이를 보고 중학·초등학생 아들·딸과 이곳을 찾은 장훈(48)씨 부부는 "영화 '국제시장'을 본 아이들에게 그 현장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 영화의 감동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쯤 '꽃분이네' 앞. 영화에선 미제 등 외국 물품을 파는 수입품 가게지만 실제 지금은 양말과 스카프 등 잡화품을 팔고 있는 가게다. 풍경이 아침과 사뭇 달랐다. 폭 5~6m 남짓한 골목길 안은 몰려든 사람들로 밀려다녀야 할 정도였다. 김용운(68) 국제시장 번영회장은 "주말, 공휴일엔 10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청에 따르면 국제시장의 평소 유동인구는 하루 3만여명이다. 영화 '국제시장' 이후 유동인구가 3~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김 회장은 "요즘은 예전처럼 20·30대들이 우리 시장을 많이 찾아오고 있다"며 "국제시장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은 시장이 생긴 이래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중구 국제시장 인근에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 |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 후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 통제 물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 등지서 돌아온 귀환 동포들이 가져온 물품들을 거래하는 장소로 출발했다. 당시 명칭은 '돗대기시장' 혹은 '돗떼기시장'.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싹 쓸어 모아 물건을 흥정하는 도거리 시장이거나 도거리로 떼어 흥정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1948년 단층 목조 건물을 지어 지금과 비슷한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즈음의 이름은 '자유시장'. 이어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시장 규모가 더욱 커졌다. 미군과 유엔군 군용 물자와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된 물자들이 주로 거래됐다. 그래서 '국제(國際)'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 말로 하면 '글로벌 시장'이었다. 당시론 국내 최대였다.
영화에 고(故) 정주영 회장이 등장하는 것처럼 LG 등 대기업들과도 인연이 있다. 상인들에 따르면 부산의 대표적 향토 기업 중 하나인 인디안 '세정', 요즘 뜨고 있는 '베이직 하우스' 등도 국제시장에서 출발했다. 현재는 연면적 9497㎡에 6개 공구 580여개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매주 1, 3주 일요일은 휴업이다.
국제시장 주변은 시장 밀집지다. 국제시장 B동 바로 옆에 붙은 차로를 하나 건너면 1910년 개설된 부산의 첫 공설 시장인 부평시장, 6·25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통조림 등이나 밀수품을 많이 팔아 '깡통'이란 이름이 붙여진 '깡통시장', 지난 2013년 10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부평깡통야시장'이 있다. 이들 시장길 중간 작은 좌판에서 혹은 좌우로 도열한 가게 사이에 끼어 있는 점포에서 파는 비빔당면·국수·칼국수·어묵·유부주머니·단팥죽 등을 사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제시장 A동 옆으로는 옷·안경·가방·침구·속옷 등을 많이 파는 '만물의 거리', 이 거리 동쪽 한 블록 옆으로 있는 관광기념품·안경·의류점 등의 '아리랑 거리', 아리랑 거리를 따라 남포동 쪽으로 200~300m쯤 내려오면 비빔당면·국수·순대·떡볶이 등을 파는 '먹자골목' 등이 이어진다.
'먹자골목'이 끝나는 곳에 광복로 쇼핑 거리가 있다. 패션 브랜드, 커피, 신발, 화장품,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부산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인 원산면옥, 광어뼈살을 다져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다다끼'·스지오뎅 등으로 유명한 '수복집', 할매회국수집, 선술집인 백광상회 등이 이 거리 중간쯤인 시티스폿에서 남포동 쪽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다. 이 쇼핑거리 남측 남포동 쪽으로는 씨앗호떡 노점 등이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 자갈치시장, 매일 정오 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영도다리'로 이어진다. 또 부산의 남산공원격인 용두산공원, 일제 시대 동양척식회사·옛 미문화원이었던 부산근대역사관 등도 지척에 있다.
"할아버지, 기억이 뭐예요?" "자꾸 생각나고 잊혀지지 않고…."
영화 속 윤덕수는 손녀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 '기억'은 흘러 가버리는, 한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의 동결, 축적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 안에는 공간과 사람이 같이 있다. 그래서 '기억'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 국제시장 등 이들 시장의 풍경은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눈으로만 보는 '관광(觀光)'으론 그 속살, 이야기를 만나기 어렵다. 시간을 두고 발품 팔며 이곳저곳 기웃거려야 한다. 비빔당면·유부주머니 등도 먹고, 물건도 사고 그리고 나이 지긋한 상인들과 대화도 해보고….
그래야 배를 타기 위해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죽어라 뛰어야 했고, 가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머나먼 이국 탄광이나 총알 빗발치는 전쟁터로 뛰어들었던 국제시장의 '덕수'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이들 시장이 간직한 '덕수의 기억'은 요즘 힘겹게 청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의 덕수'인 '미생, 장그래'들에게 힘이 될지도 모른다.
여행 수첩
교통편 서울발 부산행과 부산발 서울행 KTX는 하루 각 1회 무정차 직통 열차를 운행한다. 한 번도 서지 않고 2시간17분에 주파한다. 서울발은 오전 9시 45분, 부산발은 13시 45분 출발.
무료 투어 영화 '국제시장'이 인기를 끌자 부산관광공사는 꽃분이네 가게와 BIFF광장, 부평깡통시장 등을 잇는 투어 코스를 개설, 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 운영 중이다.
이번 한국방문 후, 부산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영극장에서 '국제시장'을 관람한 일입니다.
영화 내용 중 바로 '대영극장'이 나오고,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월남에서 군인으로 있었던 가수 남진의 활동상, 패션
디자인 앙드래 김이 잠시 나오는 것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저가 독일에 있었던 도시 에센은 바로 탄광지대이고, 영화 속의 도시를 가끔 들렸던 곳이라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