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문협 미주지회지'를 발간하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1972년 1월 10일, 미주지회가 본부의 승인을 받은 후, 40여 년이 넘도록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순수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만든 '미주지회지'는 단 한 권도 발간한 적이 없다.
1971년 12월 6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는 아침부터 눈보라가 몰아치다가 이내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이날 슈테판 대성당 내부의 소성당에서는 한 예술가의 장례식이 있었다. 겨우 10여 명이 참석한 예술가의 장례식은 끝났고, 밖은 춥기도 하고 진눈깨비로 길은 질척거려 장지인 성 마르크스묘지까지 따라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탓에 공동묘지에 매장된 예술가의 행방은 그 후 영영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이 예술가는 불세출의 볼프강 모차르트이다. 이후 오늘까지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어 묘지 입구에 젊은 모차르트의 동상이 서 있을 뿐이다. 만약 10여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매장지를 찾았다면, 아니 그 이후 확인이라도 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그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주지회지를 선배들이 만들지 못했고, 그 고정관념으로 나 또한 "앞으로 누군가가 미주지회지를 만들겠지!"라고 말하며 적당하게 포장된 매너리즘과 이기심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허명에 편승하기보다는 차라리 일을 저지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뛰기로 작정했다.
먼저 협회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협회지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넘어 회원 간의 살아있는 대화이며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 덕에 올해 처음으로 순수 본부 이사장상와 자체 신인상을 수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운은, 앞으로 미주지회의 별이 미주에 붙박이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발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