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레이 소나무

조회 수 5596 추천 수 15 2014.10.06 19:36:14
   몬트레이 소나무

  내가 ‘몬트레이 소나무’라고 이름 붙이고서 20여 년 동안 친구처럼 지내는 노송(老松)이 있다. 언제나 나를 다정하게 반겨주며 생활의 지혜를 날려주는 참으로 고마운 나무 친구다.
  하늘을 향해서 쭉쭉 뻗어난 나뭇가지에 짙은 초록 색깔의 뾰쪽뾰쪽한 이파리가 촘촘하게 달려 있는데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결같이 짙푸르기만 하다.
  몬트레이 지역에 있는 소나무들은 자세히 보면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 어림잡아 대여섯 종류는 되는 것 같다. 같은 종류인데도 토양과 온도와 바람맞는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고국에 있었을 때 무더기로 산에서 보아온 바늘같이 생긴 이파리를 가진 뭉실뭉실하고 큰 솔방울을 달고 있는 ‘몬트레이 파인’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잣나무같이 생긴 작달막한 이파리가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향해서 쭉쭉 뻗쳐 있고 작은 솔방울을 달고 있는 내 친구 같은 ‘몬트레이 사이프러스’가 있다.
  ‘몬트레이 사이프러스’인 나의 친구 노송은 창조주의 아름다운 창조물로 몬트레이 지역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이곳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한 몫을 담당한 거칠고 비비꼬인 삶의 흔적이 더해짐에 따라서 더욱더 멋이 있어 가는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 환경에 굴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에 모두 감탄한다.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쁨을 주는 내 나무 친구를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나이가 더해갈수록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사이프러스 트리는 몬트레이의 상징수이다. 그래서 관공서에서 관리가 대단하다.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에도 어느 날 보니 동전 같은 것에 ‘2200’이라고 번호가 쓰여 있었다. 내 친구나무도 이 고장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은 아름다운 몬트레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오랜 풍파를 견딘 후에 받은 ‘훈장’처럼 보였다.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는 참으로 의젓해서 나의 문제를 무엇이나 해결해내는 ‘해결사’ 같다. 어떨 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내어놓고 해결방법을 물어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내 작은 팔을 다섯 번이나 벌려야 안을 만큼 덩치가 큰 백 살도 넘은 내 친구 노송에 포근한 엄마 품에 얼굴을 파묻듯이 가만히 얼굴을 대고선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내 가슴속으로 은밀한 소리가 들려온다. 
  “좀 더 기다리고 좀 더 참으면 안 되겠니? 좀 더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좀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겠니? 나는 하루 이틀이 아닌 수많은 세월 동안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이렇게 든든하게 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니? 비바람에 찢겨 내 몸에 이렇게 많은 상처가 남아 있고 내 몸에 이물이 들어와 나를 부식시키고 심지어는 나와는 하등에 관계도 없는 식물이 내 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와 제집인 양 살고 있어도 나는 받아주었단다.”
  날마다 잇대어지는 내 이민 역사도 몬트레이 소나무와 함께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는 우리 한인 이민사 백 년을 기념하는 잔치로 감개무량해하는 나를 이해하여 주는 것 같다. 하와이에 있는 사탕수수 농장으로 첫 이민을 시작으로 우리 한인들이 몇 년 전에 겪은 가슴 아픈 로스앤젤레스 폭동사건을 결코 잊지 못하지만 그래도 굽히지 않고 다시 굳세게 일어나는 삶의 모습을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는 대견해하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 2세들은 떳떳하고 활기 있게 각종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언론계나 의학 분야, 또는 정치마당에로도 도전하는 한인들로 흐뭇해하는 나에게 내 친구 몬트레이 사이프러스는 동참해주는 기분이 든다.
  그 어느 날 내 친구 노송을 만나러 가는데 노란 줄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그 안쪽으로는 많은 잘린 가지들이 놓여 있었다. 각질화되고 생명력을 잃은 가지들이 몸통에서 떨어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칠 우려가 있어 산림관리인들이 미리 몸단장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늙어 가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는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주었다.
  몬트레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참으로 아름답고 아담한 관광 휴양도시다. 사시사철 날씨의 변동이 심하지 않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사람들은 온화하고 맑은 눈동자를 가졌다. 날개를 달고서 하늘을 날 듯한 생명력 넘치는 늘 푸른 사이프러스 트리, 꿈의 궁전 같은 고풍스러운 집들이 줄을 지어 아기자기한 도시들을 만든다. 해변을 따라서 절묘한 바위절벽과 어우러져 피어 있는 분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매직 카펫 꽃, 널따란 태평양 한가운데로 놀랍도록 커다란 붉은 해가 떨어지는 신비스러운 낙조는 관광도시 몬트레이가 품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이토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 중에서 특히 내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가 없어선 안 될 만큼 정이 든 것은 그는 내 호흡에서 나오는 김치 냄새를 맡아주고 나는 그의 치즈 냄새에 적응해갈 수 있도록 틈만 나면 몸을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화합을 이루어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생명력을 잃어서 잘려나간 노송의 가지 위에 물새 한 마리가 쉬고 있다. 그 물새가 남들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나약해지고 굵은 뼈만 남은 핏기 없이 앙상한 어깨인데도 온 힘을 다해 몸을 버티고 있는 모습이 2세들을 위한 밑받침이 되어주기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 이민 1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몬트레이 한인사회를 위해서 알게 모르게 힘쓰는 일꾼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해 마음이 뭉클했다.
  오늘도 오래된 나의 친구 ‘몬트레이 소나무’를 찾았다. 자꾸만 머리카락이 작아지는 노인네처럼 내 친구 노송도 해마다 초록색 이파리들이 줄어들고 거칠어져 우둘투둘해도 늠름히 더 깊은 뿌리를 내리면서 몬트레이 위상을 높이고 있다. 나는 참으로 듬직하고 변함없는 친구 노송을 만져도 보고 눈을 들어 올려다보며 두 팔 벌려 안아도 보았다.
  그때에 강렬하게 들리는 해송(海松)의 맥박 소리가 나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몬트레이 소나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푸르게 살리라. 너도 푸르게 살아라. 우리는 푸르게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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