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덕 시인

조회 수 6161 추천 수 4 2015.10.02 13:15:56

 

                               넉넉한 감성(感性)과 능란한 기교(技巧)의 서정시

                                                       -서용덕 제4시집<허허벌판>을 읽고

 

 

                                                                                                                                       도창회(전 동국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I)
시가 좋아 시로만 살고파 하는 시인, ‘시작 활동이 곧 삶의 전부다’라고 믿고 있는 시인

나는 [시인 되기 위하여 다 버려야 했다/.....시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버린 씨름으로/.......시인이 되어 시인처럼/ 시와 함께 같이 가련다] 시 <시를 위하여>에서 화자는 시작 과정은 ‘나를 버린 씨름’이요,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다 버려야 했다’고 고백한 절규를 읊었다. 알래스카의 동토에서 생활하면서 오직 시 창작을 보람으로 살아가는 화자의 시 한 편을 먼저 감상해 보자

 

<불타는 보석>

 

전령사 입춘으로
매운바람 몰아내어
동토 땅에도 봄이 오는가
바삭 바삭한 설원 속에서
묻혀 있을 수 없는 몸부림은
붉은 피 빛으로 물들어
수줍어 깨어나는 것을
불타는 꽃으로만 피우고 싶어라
뼈 시린 얼음 땅을 녹여낼
시인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7월에 태어난 홍옥으로 지키고 싶어라
이 땅에 머무르는 날까지
인생은 여행이며 문학이라고
흥겨운 예술의 무대라 외치며
시가 있고 노래가 있는 가슴을 태워
불타는 보석으로 꼬옥안아
혼 불로 태우는 불덩이로 빛나리라
알래스카에 우뚝 솟은 루비로
뜨거운 심장 속에
따뜻한 가슴으로 영원히 빛나리라.

 

알래스카 동토에서 머물면서 오직 일념으로 ‘불타는 보석(詩)을 꼬옥 안아 혼 불로 태우는 불덩이로 빛나리라’고 화자의 결연한 의지로 다짐하는 시를 음미하고 있으면 가슴이 뻐근함을 느낀다.

동토에 오는 봄, 묻혀 있을 수 없는 몸부림, 붉은 핏빛으로 물든, 불타는 꽃, 7월에 태어난 홍옥, 혼 불로 태우는 불덩어리, 뜨거운 심장 속 등 정열의 이미지 언어로 일관한 시가 주는 메시지는 우선 힘차서 좋다.

화자가 시정(詩情)을 표현하되 결코 설명이 아닌 암시(메타)로 엮어가는 시 솜씨 또한 놀랍다. 이 시에서 은연중에 음양(陰陽)의 대치가 보인다. 매운바람, 동토, 설원, 얼음의 땅 등의 시어가 절망이 음이라면, 몰아내고, (수줍어)깨어나는, (꽃으로) 피우고, (얼음의 땅을) 녹여낼, (가슴을) 태워, 희망의 (온기를)느끼고, (불덩어리로) 빛나리라 등의 시어가 희망의 양이라면 음양의 대치가 매우 조화롭게 이루어져 시작의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집의 많은 시 속에서 시어의 음양(陰陽)대치, 행간의 반어법(反語法), 희망과 절망의 긍정과 부정의 대치의 수사법의 변화나 강조의 기법이 들어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그의 시 <종살이>를 읽으면 행복을 느끼는가 싶더니, 짜증이나 투정을 부리고, 호감으로 느끼는 마족이 곧 허공에 떠 있는 영혼으로 바뀐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대비시키는 시로는 보내놓고 후회하는 <위대한 선물>, <놓아주지 않는 사랑>, <모자란 사랑> 등의 사랑 시들이 있다. 시작의 기교가 퍽 능란하다는 뜻이 된다.

(II)
시집 서문에서 화자는 사막과 같은 마음의 허허벌판에서 꽃을 발견한다.
꽃을 좋아하는 처지에 꽃이 피는 봄철을 반가울 수밖에 없다. 봄철에 그의 허허벌판에는 언제나 꽃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득 채우기를 바랐던 꽃은 다름 아닌 ‘꽃 같은 詩’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는 흔적으로 꽃밭에서 시작하여, 꽃밭에서 놀다가 꽃밭으로 가는 날까지 꽃밭을 떠나지 못하여 꽃을 피우고 가꾸는 글이 시가 되었다」고 했다. 꽃을 시로 환언하면 화자는 시 속에서 살다가 죽는 날까지 시를 떠나지 못하고 시를 쓰고 시를 가꾸는 일로 일관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이다.

화자는 「내 영혼이 뛰어나오는 대로 쉬운 뜻을 은폐하여 비틀어 감춘다. 심술부리듯 보물찾기 마냥 어렵고 난해한 시가 좋은 시인 줄 알아 쉬운 말을 감추어 쓰기를 좋아한다.」 화자는 은연중에 자기의 시작법을 이 글속에 암시했다. 현대시가 설명이 아니라 객관적 등가물(상관물)로 써가는 즉물시(卽物詩)를 선호할진데 ‘비틀어 감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아무려나 화자가 발간사에 언급한데로 마음의 허허벌판에 사계절 피어 있는 꽃을, 즉 시를 음미해봄으로써 그의 시모습을 가만가만 살펴보자.
1부 허허벌판에 꽃, 2부 벌판에 봄꽃, 3부 여름꽃, 4부 가을꽃, 5부 겨울꽃 모두 90여편의 시꽃이 이 시집 속에 피어있다. 먼저<허허벌판>의 시엣 말을 감상해 보자.

 

<허허벌판>

쉬지 않고 드나드는
생생 바람이 콧구멍 모르게
제 자리를 떠나
산 넘어 강 건너에 있다기에
찾아 가보나 아무도 없고

 

바싹 비틀어진 허허벌판에
모래 바람으로 묻힌 풀 한 포기는
한 철 머무는 동안
단비만을 기다리는 통증안고
온전히 부서지지 않는 하루를
하늘가 저쪽을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가.

 

이 시에서 화자가 산 넘고 물 건너 애써 찾아간 곳은 결코 비옥한 대지가 아니라 모랫바람에 묻힌 풀 한 포기가 한 철 동안 목이 말라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우는 불모지로 일단 설정하고 있다. 시를 쓰는 영토가 결코 평탄한 토지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생 바람이 제 콧구멍도 모르게 제 자리를 떠나 찾아간 곳이 이렇게 가혹한 모래벌판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다시 애간장이 녹아나는 가야금 소리에 살풀이춤을 추는 현장감 어린 장면의 시 한 편을 먼저 음미해보자.

 

<가야금>

 

활시위 열두 줄을
가슴에 뉘어 늘어서
큰 화살 굵은 줄을 뜯어가며
애기화살 가는 줄 튕기면
영혼에 떠도는 파편들이
녹아나는 애간장이
가슴을 안아 우려내는
나비되어 살풀이춤을 춘다.

 

늘 무르팍에서 다독거리는
떠나는 것을 찾아 부르는
부픈 소리 설은 소리로
팽팽하게 튕긴 아픈 소리들이
가슴을 뜯어 쌓이는
마음만 쓸어도 터지는 소리
간직할 수 없어 뛰어 나오는
애타게 부르는 익은 소리들이
섧디 섧게 녹아 나는 가슴틀.

 

이 시는 일단 시제(詩題)인가야금의 실상(實像)에서 느끼는 소리, 즉 청각적 이미지를 중요시해야 감상이 가능하다. 살풀이춤에 맞추어 튕기는 가야금 소리의 이미지가 어떨까 상상력으로 그려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더욱 그 소리의 이미지(心象)를 시어(詩語)로 나타내기란 무르녹는 감성이 없는 사람은 결코 불가능하리라 믿는다. 화자는 가야금의 줄을 튕기는 소리틀「영혼에 떠도는 파편들이/ 녹아나는 애간장이/ 가슴을 안아 우려내는/ 나비되어 살풀이춤을 춘다」고 했고, 그리고 가야금을 「부픈 소리 설은 소리로/팽팽하게 튕긴 아픈 소리들이/ 가슴을 뜯어 쌓이는/ 마음만 쓸어도 터지는 소리/ 간직할 수 없이 뛰어나오는/ 애타게 부르는 익은 소리들이/ 섧디 섧게 녹아나는 가슴틀」 이 녹아나는 ‘가슴틀’이 돋 가야금악기이라고 읊었다. 살풀이춤을 추는 무희를 상상해보면 섧디 섧게 녹아나는 가슴들이 가야금임을 읽을 수 있으리라. 읽음에 애쓰지 않아도 시어에 집중하면 애절한 가야금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가슴속을 휘젓는다. 그러면 화자의 창작기법을 달리한 달콤한 감각을 자극시키는 감성의 사랑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사랑의 호흡>

 

봄은 내 나이만큼 왔다 갔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뜨거운 호흡을
연인의 치마 속에서 펄럭이는
봄바람을 보았다

 

끓는 심장은 내 손목을 잡아 이끌고
물 오른 계곡에 이르러
훈훈하게 익은 바람을 타고
거친 숨소리로 헐떡거리며
해산의 고통으로 남긴 타는 몸부림

 

언 땅에도 뿌리깊이 파고든
부푼 바람 소리가 녹아
으~윽 흐흐~응 껍질이 터진
봄바람 뜨거워 꽃이 피어나 듯
애인의 치마 속은 펄럭펄럭.

 

이 시는 사랑의 뜨거운 호흡으로 대표되는 성애(性愛)장면을 떠올리면 한층 쉽게 감상이 되리라 본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뜨거운 호흡」을 연인의 치마 속에서 펄럭이는 ‘봄바람’을 보았다고 솔지히 실토했다. 「해산의 고통으로 남긴 타는 몸부림」은 헐떡대는 숨소리로 미루어 보아 아픈 고통을 호소하는 현장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연은 더욱 노골화되어, 으~윽 흐흐~응 의성어의 효과를 차입하고 애인의 펄럭이는 치마 속의 풍경을 감각적 언어를 도입해 ‘껍질이 터진’‘봄바람이 뜨거워’란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퍽 애로틱한 시상이 아름답게 형상화되었다고 하겠다.

시란 때때로 나성(裸性)의 표현이 인상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 감각적 언어가 주목을 끌 수가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랑시로 부부간에 맞추어 가는 <사랑의 방정식>, 남녀간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랑의 혁명>도 내포성이 강해 감칠 맛이 난다.
그러면 예서 풍부한 감성과 적확한 이미지로 엮은 그의 대표작품인 즉물시(卽物詩) 2 편을 음미해 보자

 

<해바라기>

 

새벽으로 마중하는
기다림에 홀린 듯 따라 다닐
같이 닮아가는 붉은 색으로

 

밤새 쓴내 나는 목구멍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멍추지 않고 바라다보는 것

 

빈 것으로 채워진 점박이를
고개 들어 올려다 보는
타는 꽃으로 피어날 때

 

하늘같은 마음은
태양이 부서지는 쪽으로
까맣게 그을려 익어가는 얼굴.

 

즉물시(卽物詩)란 아치볼트 머클리쉬의 사물시(事物詩)를 말한다. 사상주의자(寫像主義者: imagist)들의 시의 모토 인 ‘Say it no ideas but in things'(시는 설명이 아니라 사물(事物)로 말하라’에 입각한 시관으로 구체적(concreat)이고 적확한(exact) 이미지를 도출할 수 있는 사물을 강요한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이미지는 더 돌올하게 빛나는 법이다. 이 시에서 해바라기란 실상(實像)의 이미지(心象)를 얼마나 정확하게 보았는가 중요하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기하는 꽃’이다. 바라다보고 닮아가고 싶은 꽃이 해바라기의 이미지가 아닐까. 눈부신 태양을 올려다보며 까맣게 그을려 익어가는 낯짝(얼굴)로 퍽 구체적 심상으로 빛나고 있다. 이글거리며 타는 태양을 노려보며 닮고 싶어 하는 해바라기나 임을 향해 애타게 갈구하는 연인이나 무엇이 다를까. 유추(類推)로 바라보면 시 속의 해바라기의 암시성이 퍽 신성해 뵌다.

 

<석류>

 

목마르게 타는 노을빛보다
뜨거운 신열로 터지고 마는
이 모든 것이 핏빛이라고

 

돌이킬 수 없는 가슴을 찢어
상처로 치유할 수 없는
기다림의 해산

 

가마솥에서 견딜 수 없도록
끊임없이 끓고 있었던
붉어질 때까지 빛나는 홍보석.

 

석류를 바라다 본 화자의 이미지(心象)가 과연 객관적인 인식이 갈까가 문제이다. 가을볕에 껍질이 터져 홍보석을 들어낸 석류를 구체성을 띄워 적확하게 그려낸 이미지시다. 「목마르게 타는 노을 빛 보다/ 뜨거운 신열로 터지고 마는/ 이 모든 것이 핏빛이라고」 1 연의 석류알의 색깔에 대한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듯 너무나 선명하다. ‘신열로 터지는 핏빛’은 사랑의 안달을 진홍색의 핏빛으로 유추로 비겨 놓아 시작기교가 매우 돋보이고 있다. 2 연의 「돌이킬 수 없는 가슴을 찢어/ 상처로 치유할 수 없는/ 기다림의 해산/ 에 가슴을 찢은 상처로 치유할 수 없는 기다림의 해산」은 ‘갈라진 석류의 이미지’로 띄워 아픔의 느낌을 극대화해 놓았다. 마지막 연에 「가마솥에서 견딜 수 없도록/끊임없이 끓고 있었던/ 붉어질 때까지 빛나는 홍보석/에 붉어질 때까지 가마솥에 끓이고 있었던 나는 홍보석」의 붉은 이미지가 석류라고 읊었다. 석류의 성숙 이미지가 이내도록 화자의 가슴에 흥건히 적셔질까 참 감동스럽다. 이 두 편 절창의 시 외 에도 사물을 소제로한 시들은 많다.


(III)
서용덕 시인 시작품들을 감상의 마무리를 하면서 필자가 느끼 소감을 총체적으로 설파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최근 유행하는 비평에 「시를 시로 보고 비평하라」란 신비평(New criticism)이 있다. 이 말은 시장르의 장르적 본질로 시를 쓰라는 말뜻인 바, 시는 ‘시만되면 되는 글’이란 말과 같이 시를 평하되 시의 본질에 입각하는 탐미의 과정일 뿐 그 외 시외적인 요소들을 삼간다는 뜻으로, 가령 역사비평, 전기비평, 서지비평 따위는 비평에서 빼버리라는 것이다. 필자도 서용덕시인의 시를 시외적 요소를 접고 시만 보고 평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시인은 이성(理性)보다는 감성이 넉넉한 사람이 명시를 쓴다. 이성에만 호소하는 사람은 멋이 없다. 감성은 감정과 같은 동의어로 emotion(feeling),가슴에 우러나오는 감정이다. 서용덕시인의 시들은 모두 섬세한 감성의 소산으로 서정시(Lyric Poem)이다. 시마다 내용의 함축(응축)이 엄격하고, 사상(事像)의 등가물로 대신되는 시상(詩想)이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리고 유추(類推)로 바라볼 수 있는 암시성이 짙어져 있어 시의 태크닉(기교)이 또한 매우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무르녹는 감성이 베인 시속에 암시가 주는 인간의 의미가 무엇일까. 씹으면 씹을수록 그만의 독특한 맛이 우러나온다고나 할까.

 

서용덕.jpg

 

약력:

호: 설천

전북 부안 출생
미레르바 시, 한맥문학 수필등단
한국문협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한국국제펜클럽 회원

수상:

제5회 한국농촌문학상(2008년)
제12회 국제문화예술상(2010년)

저서:

《제1집:이 세상에 e-세상》
《제2집: 영혼이 불타는 통로》
《제3집: 떠나도 지키리》
《제4집: 허허벌판》
《제5집: 心 마음 가르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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