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같은 사랑

조회 수 3143 추천 수 3 2015.10.24 16:14:03

장미사~1.JPG

 


 

 

                                                    바람 같은 사랑                                           


                                                                                                                                                      蒑池  정순옥


  내 안에 바람 같은 사랑이 있다. 생성하는 자극으로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 준 것이다. 그것은 일 년 사시사철 나의 몸을 스치는 바람 같은 사랑이다. 육안(肉眼)으론 볼 수 없지만, 느낌이나 소리로 그 흔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과 쓰러진 들풀들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 같은 사랑은 봄에는 꽃향기로, 여름날에는 소나기로, 가을날에는 나락 익는 냄새로, 겨울에는 함박눈으로 내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든다. 그렇기에 내 가슴은 바람 같은 사랑이 지나간 흔적으로 운치와 멋이 있는 신비스런 삶의 무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본다. 때로는 다른 방법으로 내게 온다. 바람 같은 사랑은 봄날에는 미풍으로, 여름날에는 회오리바람으로, 가을날에는 사그락 거리는 갈바람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겨울날에는 휭~! 하며 나목(裸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칼바람으로 온다. 이렇게 바람 같은 사랑은 온 천하의 사계절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인생만사(人生萬事)라는 물감으로 내 몸과 삶 곳곳에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으니 어쩌랴 싶다.
  또 있다. 바람 같은 사랑은 내 관절 마디마디에 찾아들어 숭숭 구멍을 뚫어 놓는다.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헤매다 지쳐 침대에 누운 날에는 바람 같은 사랑이 내 관절을 쑤셔대며, 심한 통증까지 수반해 내 몸에 거(居)하고 있노라 외친다. 그러다가는 또 한 번씩 바람 같은 사랑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 세포 사이를 후비고 다닌다. 이때 나의 가슴은 멍글멍글한 피보다도 더 빨간 응어리가 요동친다. 엄청난 고통에 아파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나는, 이때 인생사의 무늬가 심장 부위에 빨갛게 새겨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바람 같은 사랑은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속성을 가졌노라.”고. 그러면서 또다시 나에게 “나를 한곳에 온전히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의 욕망이며, 욕망은 집착에서 온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지만, 잡아두고 싶은 집착까지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집착은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기에, 근심과 굴레 같은 삶일지라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리라. 바람 같은 사랑은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움직이는 사랑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온전히 놓아 버리고 자유인으로 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몸을 스쳐 가는 바람 같은 사랑인 것을 알면서도 치마폭을 팽팽히 넓게 벌려 잠시나마 품어 보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바람결 같은 사랑과 함께 빙글빙글 돌고 싶어 안달까지 한다.
  향기로운 꽃 바람이면 좋겠다. 아니다. 나를 감싸버리는 회오리바람 같은 사랑이 좋겠다. 하지만 바람 같은 사랑만 움직이지는 않을 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있던가. 그렇다. 모든 것은 움직이며 변한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영원불변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늘나라에 계시는 유일신(唯一神)뿐이다.
  바람 같은 사랑은 구태여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느낌으로나 소리로 보이지 않고 내 곁에 잠시 머물다가 스쳐 간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품은 바람 같은 사랑이기에 나는, 더욱더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마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바람결 같은 사랑은 내 가슴을 풀어놓은 날에는 중구난방으로 내 몸을 쑤시며 막무가내로 파고든다. 때로는 허파 깊숙이 파고들어 오는 바람 같은 사랑 때문에 호흡곤란에 생겨 혼미해질 때가 있다. 이미 예민해져 버린 나는 빨리 내 몸을 스쳐 가라 고함친다. 내 심장의 피가 펄펄 끓어올라 모세혈관들이 다 충혈되면 터져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가끔은 바람 같은 사랑은 뇌신경 세포 속을 후비고 들어와 기어코 내 꿈길까지 요동치게 한다. 결코, 나를 떠나버릴 수 없는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려는 듯이 말이다.
 사랑이란 이름 앞에 수많은 언어를 붙이고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부모 사랑, 친구 사랑, 자식 사랑, 첫사랑……. 모든 사랑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의 속성을 가졌기에, 나는 바람 같은 사랑이라 부른다. 내 코에 생기(生氣)가 들어올 때부터 함께 살아온 인연이 없었다면 결코 살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랑이다. 늘 내 곁에 있어도 그리움을 품고 다니는 바람 같은 사랑은 내 영혼의 그림자처럼 줄기차게 존재한다.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큰 보배라는 생각에 붙잡으려 하면 바람 같은 사랑은 어느 사이에 저만치 떠나고 만다. 어차피 내 곁을 스쳐 가기만 할 바람 같은 사랑이라면, 나는 미련없이 보내야 하리라 싶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며 신선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다니기를 빌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람 같은 사랑은 나의 목울대를 겁나게 훑어 내리던 날. 저울질하던 잘난 집안, 학벌, 앞에서 그리도 무정하게 나를 등지고 가더니만, 무슨 일인지 백만 송이 장미를 들고 돌아왔다.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백만 송이 장미를 스치게 되면서 변화된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허공을 휘저으며 헤매고 다닌 고단한 흔적이 나를 가슴 아프게 해, 나는 애써 침묵으로 품어 준다. 아마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 속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수필처럼 살다가 바람 같은 사랑과 함께 먼 길을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이제야 알았나 보다. 알면 뭣 하나. 어차피 내 곁에 머물지 않을 바람 같은 사랑인 것을. 그래도 바람 같은 사랑이 좋은 걸 어쩌랴. 나는, 모악산 하얀 갈대밭에서 덩실덩실 춤추던 바람결 같은 사랑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을.
 그래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은, 바람 같은 사랑이 언제나 내 곁을 스치며 생(生)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영원히 붙들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랑, 그럼에도 내 인생과는 뗄 수 없는 참 인연이다. 바람 같은 사랑은 오늘도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로 내 몸을 스친다.
   바람 같은 사랑은 멋있고 운치 있는 내 인생의 무늬를 신비하게 그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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