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바구니

조회 수 6629 추천 수 2 2014.11.07 16: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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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 바구니
                                                                                                                                      蒑池 정순옥


   나는 만들고 싶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단풍 바구니를.
 초록색 나뭇잎들이 가을철이 되면 신비스럽게도 붉은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물든 가을 정취 나는 단풍잎들을 대바구니 속에 차곡차곡 담아서 아름다운 내 인생의 단풍 바구니 하나 만들고 싶다. 내 인생의 추운 겨울이 되면 햇살 따사로운 이 가을에 만든 향기 있는 단풍 바구니를 보듬고서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내 인생의 꿈인 참으로 아름다운 예쁜 색깔의 단풍잎을 만들려면 나는 더욱더 사랑스러운 자연을 아끼며 빛나는 햇살과 신선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 앞에 더욱더 겸허하게 서야 할 것이다. 기후 변화로 식물이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듯이 내 인생도 여러 가지 변화로 물들어 갈 때, 한 날을 살 수 있으매 감사하면서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서서히 채색되어 가는 단풍잎처럼 고상한 색깔을 품은 인생단풍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나는 더욱더 아량 있고 인내하면서 내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 설령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귀한 가을날 햇볕과 같이 따스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어야 신기할 만큼 짙게 물든 사랑의 향기가 배어 있는 인생단풍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온갖 초목들이 조금씩 조금씩 연한 움이 돋아나고 싹이 트는 봄. 수액이 왕성하여 이파리들이 초록으로 짙게 물들이고 꽃이 피는 여름. 마른 갈바람에 초목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그리고 수액이 흐름이 멈춰가기에 메마르고 차가운 겨울.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은 우주 만물의 기본적인 질서이기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다. 인생살이도 사계절四季節로 나눈다면 나는 이미 가을이어서 단풍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여름 햇빛 찬란한 시절에 핀 꽃들로 꽃바구니를 만들어 두지 못한 나는 이 가을에 곱게 참으로 곱게 물든 단풍잎들로 아름답고 풍성한 단풍바구니를 만들고 싶다. 가능하다면 가을 소풍을 즐기는 마음으로 천천히 단풍잎들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구니에 담고 싶다. 추상秋霜을 거친 뒤에 화려하게 물든 단풍잎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처럼 내 인생에 된서리 맞아 빨갛게 물든 단풍잎들은 예술적인 색깔이 되어 어쩜 경이롭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가능하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흠 없이 곱게 물든 단풍잎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억 속의 샛노란 은행단풍잎처럼.
 시시때때로 추억 속으로 나를 불러대는 예쁜 은행단풍잎은 내가 희망을 품고 다니던 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우리는 부부 은행나무라고 부르면서, 조금 핼쑥해 보이는 나무는 남편이고, 풍성하게 보이는 은행나무는 부인 은행나무라 불렀다. 추운 겨울을 인내로 이겨낸 은행나무는 봄이면 연한 은행이파리 새싹을 내어 보는 가슴을 뛰게 하고, 여름이면 생동감 있는 초록빛 은행잎으로 무성해지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여 간밤에 무서리가 내리고 느닷없이 불어대는 세찬 가을 비바람에 미련도 없이 우수수 땅에 떨어진다. 그러면 은행나무 곁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샛노랗게 물든 예쁜 은행잎에 감탄사를 보내며 땅에 떨어져 있는 은행잎을 서로서로 줍곤 했다.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도 더 예쁜 은행잎을 고를라치면 익살스러운 친구들은 남학생들을 놀리기도 했다. 남자들이 무슨 짓 하는 거냐고. 그러면 남학생들은 “나는 사람이 아니냐? 우리 엄마 줄끼다.” 하면서 더 예쁜 은행잎을 찾느라 공부 시작종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날이면 우리 어머니도 틀림없이 노란 은행단풍잎 때문에 행복해하셨다. 내가 고른 은행단풍잎과 오빠가 주어온 흠 없이 샛노란 은행단풍을 번갈아 보시면서 옛 띤 소녀의 표정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글을 그 당시에는 언문 諺文이라 불렀는데, 우리 어머니가 서투르게 쓰시는 언문 살림살이 일기장엔 노오란 은행단풍잎이며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빨간색 단풍잎들이 노트 속에서 말려져 처음 모습대로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예쁜 단풍잎들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가 새봄이 돌아와 경칩驚蟄이 되면 언제나 문을 새 창호지로 바르실 때 단풍잎들을 문에 붙여 주시어 우리 온 가족은 예술적인 자연을 즐기면서 살았었다. 나는 항상 문을 여닫을 때마다 마주 보는 처음 색깔처럼 고운 가을향기 품은 단풍잎들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의 소박한 인생의 꿈을 헤아려 보았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의 아름다웠던 인생단풍처럼 나도 내 인생의 예쁜 단풍잎들을 만들고 싶다. 가을날 노랗게 물든 벼들을 추수할 땐 언제나 논 한 자락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냥 놓아두셨던 우리 아버지. 얼마나 넉넉히 남겨 두셨느냐고 아버지와 일꾼들과 함께 즐거워하시던 우리 어머니. 다음 해엔 풍년이 들어 더 많은 벼를 들에 남겨 두어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름다운 꿈인 노란 벼 단풍잎들을 가슴에 많이 품고 사셨던 우리 부모님.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면서 아름답게 살았던 삶의 흔적이 아름다운 단풍이 되어 창호지 바른 문에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 자리하고 있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던, 지금도 내 눈에 아롱거리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나에게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문풍지가 흔들리는 바람이 불고 싸락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되면 문에 창호지로 덧입혀진 아름다운 단풍잎들을 바라보시면서, 동네 불쌍한 사람들을 걱정하시기도 하고 오손도손 새해의 희망찬 계획들을 세우시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단풍인생들 모습이셨다.
 어느 사람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찾아온 가을 인생에, 수액이 말라 땅에 떨어져 쓸쓸히 뒹굴면서 부서지는 소리만 내는 낙엽이 아니라, 인고의 삶 속에서 자연에 감사하며 이웃사랑으로 곱게 물든 부모님 같은 인생단풍잎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평생 노란 벼 단풍잎들과 벗 삼아 이웃들에 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 세상에 산 삶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지금도 내 가슴 속에 단풍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삶처럼. 이웃에 관해 관심과 사랑, 더하여 나를 버겁게 하는 사람까지도 곁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다면 내 인생 단풍바구니는 더욱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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