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유랑 나이

조회 수 2258 추천 수 2 2016.08.14 07:58:42

                

 

                                                                         디아스포라의 유랑 나이

 


                                                                                                        정순옥

 


  나이란 떠도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디아스포라 미주한인 이민자로 살고 있는 나의 나이는 움직이면서 떠도는 나이다. 이름하여 나만의 신조어로, 유랑나이라 말해도 좋을성 싶다. 이중문화권 속에 살다보니 내 나이가 역동성이 있어 떠도는 유랑 나이가 된 느낌이다. 유랑나이라 생각하니 자유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서린다.  유랑 나이는 이방인 인생의 연륜(年輪)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항상 움직여야 하나 보다. 미주한인 이민역사는 디아스포라 이민자의 꿈이 서려있는 유랑나이가 옮겨진 나무의 나이테처럼 여러 모양으로 아름답게 연륜을 쌓아가는데 한 몫을 하지않나 싶다. 다른 문화이기에 존재 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 유랑나이는 각종 아름다운 색깔을 띠고 디아스포라 삶의 신비로운 나이테를 만들어 가는 자양분이 돼준다. 이방인의 자유가 서려있고 미주한인 이민역사가 담겨있는 보배로.
 신원과 정신 상태를 파악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 생년월일이라.
 어느 날, 진료실에서 백인 의사가 나의 신상문제를 묻는다.
  How old are you? / 당신 나이가 몇 살이요? 
 Yeem, Do you know the Korea war ?/ 음~당신 한국전쟁 아나요?
  나이를 묻는데 한국전쟁을 아느냐고 따지듯 묻는 나의 생뚱맞은 질문에 의사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서 나를 바라 본다. 그리곤 또 묻는다. 당신 나이가 몇살 이냐고 물었소./ 학창시절에 한국전쟁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단 말이요? 노! 라고 대답하는 의사에게 나는 말한다. 아마도 배웠지만 잊어 버렸겠지요.1950년 이라오. 나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 해에 태어났지요. 그래서 66살이 되는데, 법적으로는 65살로 되어 있지요. 아~니네요. 내일 모래 이틀이 지나야 내 생일이니 오늘 나이는 미국식 나이로 64살이네요. 한국식 나이로는 67 살이라오.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한국전쟁을 도와 주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한국전쟁을 도와주었던 나라에서 내가 살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뿐이죠.
  진료를 하기 위해서 신원파악을 하던 의사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미소만 지어 보인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나의 속 마음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국의 존재조차 생소해 하는 이민국의 한 사람에게 나의 조국을 알리고, 한국전쟁 때 우리를 사랑으로 도와 주었던 우방국의 후손에게나마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랑나이 덕분이라 싶다. 현지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살았던 세월 보다도 휠씬 더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고국의 정서와 타국의 정서가 유랑나이에서 만나고 있음을 느낀다. 유랑나이는 한국인의 정서를 간직하고 싶어하는 이방인의 마음 속에는 항상 존재하고 있음이다.
  때때로 나는 한국식 나이, 미국식 나이의 문화적인 차이로 일어나는 나이 때문에 내 나이도 잘 모르는 사람이 될 때가 있다. 언제나 움직이는 유랑나이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미주한인 사이에 상당히 많이 있음을 안 후엔 화제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쟁 때는 늦게 호적을 올리는 바람에, 업무과실사등 여러 이유들이 많다.초창기 하와이이민 땐 결혼식을 먼저 서류부터 작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생년월일이 법적으로 자기 생년월일이 된 경우도 있단다. 문화적인 차이로 생년월일을 서류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생년월일을 틀리게 적는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유랑나이가 디아스포라 미주한인 이민사회에 많이 존재하고 있음에 놀랍다. 삶의 리듬이 있는 디아스포라의 유랑나이는 고국의 문화와 이방나라의 문화가 만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 사람의 존재가 알몸으로 이 세상에 나온 건 단 한 번 뿐이기에 생년 월일은 고정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랑나이는 역동력이 있어 한 곳에 머물 수가 없다. 양력 음력이 엇갈려 지는 2월이 생일인 나는, 한국식 나이 속에서도 무척 헷갈리고 호적상의 나이, 미국식 나이 때문에 나이가 헷갈려 실제의 나이를 말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그래도 세월은 흐르기에 디아스포라 미주한인으로 살아 온  이민 역사는 자꾸만 연륜이 쌓여가고 있음을 안다. 디아스포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을 잘 시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몇 분 동안 꾸뻑 졸음으로, 마른빵을 흘러 내리는 짭짤한 눈물에 섞어 차 안에서 먹으면서 또다른 직장으로 향하던 이민생활도 함께 어우러진 신비한 색채를 내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정확한 생년월일도 간직하지 못한채 타국생활의 밑바닥을 핥으며 위태위태 살아 온 세월.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괜찮아질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인내로 살아 온 세월. 관중 속의 외로움 속에서 속울음을 토해 낼 곳을 찿던 고통의 세월. 넓다란 사막길에서 애타게 오아시스를 찿던 심정의 세월. 더욱더 아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정서와 희노애락이 어우러진 여러 색갈이 곰삭아 이민자의 나이테가 만들어 지면 영원히 남을 신비스러운 미주한인 이민역사가 형성 되지 않겠는가. 디아스포라의 유랑나이는 과거와 현제와 미래를 잇대어 소통시키는 세월 속을 쉬지 않고 떠돌아 다니면서, 자리를 옮겨온 이민자의 가슴 속 나무에 나이테를 그리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생활이 삭혀진 신비스런 색갈로 변해서 미주한인 이민생활의 역사를 세월의 연륜(年輪)으로 해마다 채색하면서 말이다. 디아스포라의 유랑나이는 이방인의 자유가 서려 있고 미주한인 이민 역사가 담겨있다. 참으로 귀중한 보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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