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등불

조회 수 7535 추천 수 1 2017.07.21 20: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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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의 등불


                                                      

                                                                                                         정순옥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하여 누군가의 꿈을 이루게 하는 농촌의 등불이 있다. 낮에는 초가집 처마 밑에서 침묵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품고도 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사면엔 유리로 덮여있고 아래로는 나무 받침을 만들어 호롱불을 놓을 수 있게 조립해 손으로 들 수 있도록 만든 조명기구다. 반세기 전에 주로 농촌에서 사용하던 등불이어서 지금은 골동품상에서도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의 소망인 이 나이에 알맞은 아름다운 인생살이를 생각해 보면서,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흔적으로 내 가슴 속에 아름답게 새겨 있는 농촌의 등불 같은 삶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두운 곳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밝은 빛을 주어 꿈을 이루게 하고, 필요치 않을 때는 침묵으로 도움 줄 사람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모습의 농촌의 등불 말이다.

밝은 햇빛이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면 농촌의 마당은 어두움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때에, 시골집 처마 밑에 걸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불은 밝은 빛이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불이 켜진다. 대부분은 저녁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일을 끝내지 못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농민들을 위하여 이 등불은 넓은 마당을 밝히게 한다. 특히나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여 타작을 기다리는 볏단들이 산더미같이 마당에 쌓여있는 날은, 농촌의 등불도 최선을 다하여 농민들의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가는데 앞장선다. 가을 들판에서 거둬들인 황금색으로 탱탱하게 영걸은 벼들을 타작마당에서 벼훑이로 한 줌씩 잡고서 후드득! 훑어낼 때 농부들의 꿈도 벼 낱알들과 함께 톡톡 튀어 오른다. 농부들은 이마에 환한 미소를 띠고 큰소리로 소리 내여 웃으면서 일을 하다가도 어두움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손놀림이 빨라진다. 이때에 농부의 꿈을 이루어 가는 수고와 노력을 위로하며 어두움을 물리치는 길잡이가 되어 환한 빛을 힘껏 발하는 농촌의 등불은 숭고까지 하다.

   전기 시설이 없던 때, 추억 속 농촌의 등불은 참으로 귀한 생활의 조명 도구였다. 우리 집 처마 밑에 걸려있는 직사각형 등불도 호롱불을 넣어 두고선 언제나 사용했다. 이 등불은 필요에 따라서 호롱에 불이 켜지고 수시로 옮겨 다녔다. 주로 처마 밑에서 사용되지만 때로는 부엌으로 옮겨지고, 화장실 갈 때도 사용되고, 어떤 때는 내 책상 위로도 옮겨졌다. 이 등불이 참으로 귀하게 쓰일 때는 식구 중에 누군가가 밤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중 나갈 때 손에 들고서 동네 어귀까지 나간다. 특히나 아버지가 5일 만에 서는 원평시장에 가신 날은 우리 가족들은 처마 밑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등을 찾아 호롱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켠다. 그리고 가족들은 두 편으로 갈라서 아버지를 마중 나간다. 왜냐하면,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두 길이 있어, 어느 길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 길은 자갈이 깔린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오다간 새장터 골목길로 들어오는 길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른 길은 뜸북새 우는 꼬불꼬불 좁다란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인데 강대미 언덕을 오르려면 숨이 가빠도 조금은 빠른 길이다. 우리 가족들은 직사각형 등불을 손에 들고서 자칫 넘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을 비켜 걸으면서 원평장터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곤 했다.

어두움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을 때, 원평 5일장에 나가신 아버지를 마중하러 내 손에 들고 있는 사랑의 향기를 발산하고 싶어하는 농촌의 등불은 모악산이 보이는 강대미 언덕에서 깜빡인다. 낮에는 나즈막하고 두리뭉실한 산들이 구릉지를 이루고 구릉지들이 또 다른 능선을 이루어 출렁이는 물결같이 생동감을 주는 가운데서 우뚝 솟아 정기를 품어내는 모악산이 보이는 마을 언덕 위다. 동네 어귀 들녘엔 홍자색 자운영 꽃이 무리로 피어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모악산 바라보며 웃음 웃으며 굳세게 자라기 위해서 오르내린 언덕 위, 어스름 속에서 등불을 들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추워서 오돌오돌 떨리는 몸과는 달리 훈훈했다. 아버지는 어두움 속에서도 탁 트인 벌판 너머로 멀리서 깜빡이는 등불을 보고서 가족이 기다리고 있음에 반가워서 오시고 있음을 기분 좋은 큰소리로 알려주셨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기다렸다가 포근한 품에 행복하게 안길 수 있었음은 어두움 속에서 장애물을 비켜갈 수 있도록 발길을 밝혀 준 고귀한 농촌의 등불이 있어서였다. 농촌의 등불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사한 재회의 꿈을 이루게 도와준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 있는 등불을 들고 동구 밖 언덕에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습이 수시로 떠올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서로 살펴주는 농촌의 등불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이 시간도 나는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하는 등불을 들고 서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주위가 캄캄해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라 서성일 때 길을 밝혀 주면서 위로와 희망을 주는 등불.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기다림의 아름다운 모습을 품고 있는 등불. 등불은 내가 남을 위해서 들고 있거나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스스로 들고 있을 때 생각만 해도 안심이 되어 좋다.

  이 나이에 알맞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해 누군가에게 꿈을 이루게 하고, 더 밝은 빛이 있을 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처마 밑에서 침묵으로 시간을 관조하며 누군가의 필요함을 기다리는 농촌의 등불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가슴 속에 옛날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이 되어 그리운 사랑의 무늬로 판화처럼 남아 있는 농촌의 등불 같은 삶의 모습 말이다. 남은 나의 인생살이가 아름다운 농촌의 등불 같은 인생살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금자

2017.12.25 1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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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어린 시절하고 똑같은지요?  그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등잔을 썼던 기억이 또렸하답니다.

그래도 저는 그때 그 시절이 더 좋은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를 잘도 풀어나가셨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는답니다.  우리는 김포 서울 근교입니다.  어릴 때 저녁 7시에 전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집에서

전등만 바라보다가 전기가 들어오니까 모든 식구들이 박수를 첬던 생각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짓게 떠올랐습니다.

양파에 대해서 쓰신 글도 책에서 읽었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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