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백로(白鷺)

조회 수 1799 추천 수 1 2017.10.16 15:32:40

                                               

 

                                                     

 

                                                                                아버지와 백로(白鷺)

                                                                                                                                        

                                                                                                                                                                                정순옥

 

 

어느 고을에 사라졌던 백로(白鷺)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에 내 가슴이 설렌다. 이 기쁜소식을 들으니, 하얀 수염에 한복을 입으신 아버지께서 눈부신 깃털을 살짝 접고 청송(靑松) 위에 앉아있는 백로를 보시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한 폭의 신선도(神仙圖)처럼 내 눈에 아른거린다.

새해가 시작되면 아버지는 백로를 맞이하기 위해 발걸음을 앞동산으로 새벽 일찍이 수시로 옮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어디론가 떠난 철새인 백로가 회귀본능(回歸本能)으로 다시 돌아올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백로는 길조( 吉鳥)로 아버지의 좋은 친구다. 애타게 기다리던 친구 백로를 맞이한 날은 아버지의 얼굴은 온통 행복한 어린애처럼 싱글벙글이시다. ‘백로가 왔어, 백로가- 올해도 좋은 일이 많을 거야~’ 아버지는 너무도 기뻐서 울음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는 넓다란 아침마당을 진동시킨다. 아버지의 흥분된 소리에 가족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들떠 환호하면서 앞동산으로 향한다.

어느 날이다. 마을 꼬마가 숨 가쁘게 아버지 앞에 달려와 떨리는 목소리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 보고한다. ‘사냥꾼이 초~~으로 하늘로 날아가는 큰~새를 잡았어요. 논바닥에 떨어졌는데 피를 많이 흘리면서 퍼덕퍼덕 거리다가 죽~었어요.’ 그렇잖아도 총소리를 듣고 불안해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무슨 예감을 하셨는지 급하게 앞동산으로 뛰어가셨다. ‘ ---날 짐승을 잡는 몹쓸놈의 사냥꾼이라니~ 백로가 무사해야 할 텐데-하시면서’.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안심되신 표정으로 반가운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 주셨다. 백로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고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며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마도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재외동포다. 그런데도 내 귀는 항상 고국을 향해 열려있고 마음은 고국에서 맴돈다. 솔바람 소리와, 솔향기가 자꾸만 나를 강대미 언덕 위로 이끈다. 정기 어린 모악산이 바라보이며 넓은 들판이 눈 아래 평화롭게 보이는 자연이 아름다운 강대미언덕. 내가 어릴쩍 꿈을 안고서 오르내리던 강대미 언덕에 백로가 서식한다는 소식은 언제나 들리려나-. 아버지와 백로가 대화를 나누면서 즐기시던 앞동산은 과수원으로 변한 지가 오래되었다 하니 백로가 찾아올 리가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사람의 정서를 키워주는 자연을 보유하고 있는 강대미 언덕은 소나무가 울창해지면 백로가 찾아 들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강대미 언덕 청송 위에 앉아 있는 백로와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워하는 백발의 나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와 백로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걸 알면서도 눈부신 백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환상 속에서 그려만 봐도 나는 행복해진다.


이금자

2017.12.14 06: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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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산에 살때 일입니다.  찻길 바로 옆에 백로가 수 십마리 집을 짓고 사는것을 우리는 매일 보벼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나무를 전부 베어 놓았더라구요.  집을  잃은 백로가  잘라놓은 소나무 위에서 얼마나 우는지요.

보는 내 마음이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안타까워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땅에다   큰 음식점을 진다고 하면서

그 동네가 백로 배설물로   괘로워 했다고 하더라구요.  백로 떼가 귀하고  길조인것을 좋와하면서도  집을 지어

음식점을 차리는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헤아리지 못했으니까요.    얼마 후 그 백로 떼는 사라졌지만  산이 많은

일산 어딘가에  새 보금자리를 짓고 살고라고 생각 하면서 선생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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