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은퇴

조회 수 1168 추천 수 1 2018.03.31 15:28:41

                                                                                                    

                                                                        감사한 은퇴

                                                                                                           정순옥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정년퇴직을 생각하게 되다니-. 은퇴는 대략 육십 대에서 하는데, 언제나 비실비실한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은퇴다. 나는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간호사로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서 사랑을 펼치려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은퇴를 생각하게 된다. 기적적으로 46년간을 병동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한다. 은퇴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서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잘 키워서 인생 이모작을 잘 결실하고 싶다. 은퇴 이후의 삶은 신앙을 가진 한국문학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문학을 더욱더 사랑하며 이웃들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두 손으로 촛불을 받들고 하얀 유니폼을 입고서 간호사의 상징인 캪을 쓴 후,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나이팅게일 서약문을 엄숙한 모습으로 외우던 때가 1972. 되돌아보면 참으로 멀고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의료계에서 직장생활을 번 아웃(Burn out)하지 않고 봉직할 수 있었음은 보이지 않게 돌보아주신 손길이 있음을 믿고 살 수 있었음에 감사 할 뿐이다. 잦은 교통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간호사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현지 간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 나만을 위해 살아온 듯한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면서 받은 슬픔으로 죽고 싶은 유혹을, 구원받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앙생활로 이겨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피눈물이 나는 삶의 현장 속에서도 믿음 안에서 아름다운 인생살이를 하고 싶은 꿈이 항상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나의 처음 직장은 이십 대에 고국인 한국에서 5년을 전남 광주시에 있는 조선대학부속병원에서 지냈다.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직시험에 합격한 젊음이 넘치는 낭만의 시절에 보낸 나의 첫 직장생활은 언제나 싱싱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정말 순수하게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환자들을 간호했다. 의대생들을 위해서 미리 신설한 의과대학 부속병원 병실에서 일하는 나는 첫 번째로 의대생들이 실습 나왔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첫 번째 직장에서 첫 번째 맞이한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내과병동 의사들이 간호사들에게 선물해준 빨간색 토퍼론 스카프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을 품고 있는 스카프는 신선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싶기에 나는 평생토록 간직하고 싶은가 보다. 나는 첫 직장에서 수간호사 시절에 결혼했고, 아들도 낳았다. 내 인생살이를 축복해 주고 격려해 주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던 반세기 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참 많이 생각난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비는 마음이다.

   다민족이 어우러져 생활하는 이민생활과 함께 삼십 대에 시작된 나의 새로운 직장생활은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기에 바쁜 나날이었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사람 살아가는 방법은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과 함께 빈혈이 날 정도로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게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지라 무엇보다도 사랑이 제일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글로벌 간호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한 젊은 시절이다. 노스 홀리우드 컴뮤니티병원(Community Hospital of North Hollywood)은 재미동포로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작한 첫 번째 나의 직장이다.

   남편을 따라 이사하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장은 몬터레이 파인(Monterey Pines SNF)이라는 양로병원이었다. 삶의 애환을 맛보면서 보낸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 내 인생의 절반을 보낸 곳이다.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 현지 정식 간호사( Resister Nurse)시험에 도전한 뒤, 1년에 2번씩, 8년 만인 16번째에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어찌 다 표현하랴. 간호 생활해 나가야 하는 의료법과 인정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고민이 있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하나밖엔 없는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어머니처럼 한국할머니를 간호해 준 일은, 나는 역시 한국의 얼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국인임을 스스로 굳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터득하기도 한 곳이다. 세찬 세상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고 휘어지면서도 다시금 곧게 세워 견뎌온 세월이다.

   나는 이제 육십 대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이곳, 은퇴의 집 병동에서 파트 타임, 풀 타임으로 이십오 년을 지내고서 은퇴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만남의 인연을 갖은 때부터 나를 도와주고 있는 익스큐티브 디렉터 노마(Executive Director, Norma B)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동생이나 된 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옆에서 보살펴 준 메리 안(Marry Ann)과 로웨나( Rowena) 정말이지 수많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병원은 꽃이 많고, 깨끗하고, 사랑이 많은 곳이다.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이곳엔 재이드 가든(Jade Garden)이 있는데, 5 억 년 전의 숨결을 품은 옥수석이 운치 있게 모자이크 된 뜨락에 조형되어 있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 억 년 전에 형성된 옥수석의 침묵은 진실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도 영원 속의 한 점으로 이음새가 되고 있는 귀한 생명체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제, 나는 은퇴를 생각할 수 있어 기쁘다. 남은 인생은 미주이민 1세로 살아온 나의 삶의 흔적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은퇴 후의 삶은 사랑으로 주위의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신앙을 가진 한국문학인으로서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살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시간 나는, 지금까지 건강 허락해 주시고 내 평생 직업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간호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 드릴 뿐이다. 어느 날이 될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감사한 은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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