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방아

조회 수 17604 추천 수 2 2014.12.13 2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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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방아
                                                                                                                                   蒑池 정순옥 

 정겹다. 쿵덕- 쿵덕- 떡방아 찧는 소리가.
하이얗게 부푼 떡쌀을 절구통에 넣고서 절굿공이로 절구질하는 소리가 장단 맞춰 들린다. 맛있는 떡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선 거친 쌀들이 절구통 속에서 찧어져야 한다. 더하여 떡가루가 고울수록 떡이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기에 빻은 떡가루를 체로 거르는 힘든 작업을 한다. 나도 내 인생의 맛있는 떡을 만들기 위한 고운 떡가루를 만들려면 더 많이 신앙인 떡방아에서 찧어지고, 잘 빻아진 고운 가루를 숭숭 구멍이 나 있는 얼겅이체가 아닌 이성의 가는 체로 더 많이 걸러내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가벼운 고운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면. 내가 만일 사람들과 함께 으깨어지면서 사는 특별히 맛있는 인절미 같은 인생이라면, 혀끝에 걸리는 떡 옴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의 떡방아를 찧는다. 쿵덕- 쿵덕-.
 생각 속에 있는 나의 유년의 뜰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곳에는 언제나 우리 어머니와 새언니가 나를 위해 사랑의 떡방아를 찧으시던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시골 생활에선 떡은 별미다. 나의 유년시절은 전쟁 후 참으로 힘든 시골 생활이어서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떡이 먹고 싶어도 함부로 떡 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가족들의 생일이나 내 생일은 어김없이 맛있는 떡을 먹을 수 있었던 건 내 생애의 한 축복의 측면일 것이다. 
  내 생일은 팥고물을 얹은 찹쌀 시루떡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가끔은 인절미였는데, 물에 불린 찹쌀을 시루에 쪄서 그대로 절구통에 쏟아 부은 후 거친 떡쌀이 부서지고 으깨어져서 부드럽게 서로 찐득찐득 달라붙을 때까지 절굿공이로 찧은 후, 고소한 콩가루를 묻혀서 만든 떡이었다. 다른 떡과 달리 재래식으로 만드는 인절미는 언제나 두 명이 호흡을 맞춰야만 떡을 만들 수가 있다. 
  한 명은 떡을 치고, 한 명은 두리뭉실한 커다란 덩어리 떡에 물을 적셔주면서 잘 찧어질 수 있도록 이리저리 돌려주는 일이다. 새언니와 짝꿍이 되어 땀을 펄펄 흘리며 인절미를 만드신 어머니는 떡 맛을 보시면서 가끔은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인절미에 떡쌀이 빻아지지 않은 옴이 너무 많아- 하시면서. 
시골이나 산골 마당 한구석에 있는 절구통은 돌이나 나무 속을 파내 만든 생활도구다. 두텁고 기다란 나무를 손으로 잡기에 좋게 만든 절굿공이로 절구통에 들은 곡식을 쿵덕-쿵덕- 찧으면 원하는 만큼 곡식 껍질이 벗겨지거나 곡식이 바숴진다. 맛있는 떡을 만들려면 미리 쌀을 물에 담가서 불린 후 소쿠리에 담아 물을 빼고, 하이얗게 물에 부른 거친 쌀을 절구통에 넣은 후 절굿공이로 떡방아를 찧고, 더 부드럽고 고운 가루를 만들기 위해선 잘게 부서진 쌀가루를 고운 체로 몇 번이고 거르는 인내의 수고가 따른다. 이런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하시면서 나의 생일을 위해서 맛있는 떡을 만드시고 위대하신 신神에게 나의 앞날을 기도하던 어머니의 정결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성이 오롯이 담긴 그 아름다운 모습이 내 눈에 서릴 때면 나는 거친 내 말과 행동이 내 인생의 떡방아 속에서 더욱더 고운 가루로 찧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맛있는 인절미같이 서로 찰떡 사랑으로 살아가는 오묘한 인생살이에서 깨어지지 않아 혀끝에 자극을 주는 떡옴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크다.
  쟁반같이 둥근 환한 보름달이 밤하늘에 휘영청 떠 있는 날은 나는 천연의 나라에서 떡방아를 찧는 옥토끼를 찾아 나선다. 커다랗고 밝은 보름달 속에는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는 전래 동화가 있기에 나는 항상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달 속에서 찾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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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아폴로 우주선이 달 착륙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에 천연의 내 꿈의 나라를 파괴한 문명을 거부해 본 적도 있는 나. 한없이 신비하고 오묘한 아름다운 달나라에서 펼쳐보는 동심童心의 세계는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답다. 내 꿈이 머물고 있는 그리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내 꿈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는 나는 몸과 마음이 세상 욕심으로 한없이 부풀고 거칠어져 있다. 
  오늘은 동심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지 오늘따라 더 밝고 커다란 둥근 보름달을 따다가 내 마음의 마당 한가운데에 내려놓는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을 앗아가는 동화 나라 달 속의 신비한 옥토끼와 함께 신앙인 절구통으로 내 인생의 떡방아를 찧는다. 거칠어진 내 생각, 행동, 언어, 탐심, 교만 등을 집어넣고서. 신앙信仰의 떡방아로 찧고 또 찧고 이성理性의 체로 거르고 또 거른다. 고운 가루로 떡을 빚어 제사를 드려야만 나를 빚으신 창조주께서 열납하시고 흠향 하실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옴이 있는 내 산재물은 못마땅해하심을 알고 있기에.  
떡방아로 쿵덕 쿵덕 찧을 때 고운가 루로 부서짐은 얼마나 아름다운 아픔인가. 떡방아로 찧을 때 서로 으깨져 찐득찐득 붙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고역인가. 나는 그 아름다운 아픔과 고역을 은혜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에 품곤한다. 보통 사람인 나는 자유롭게 거주와 직장의 이동이 가능한 노마드(nomad)시대에서 인생살이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미세한 지체가 되어 시시때때로 새로운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공동체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은 떡방아를 요리조리 피해 깨어지지 않고 혀를 자극하는 인절미 속에 있는 옴같이 특별한 사람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으깨어져 찰떡 사랑으로 공동체 생활하기를 소원한다. 먼 훗날은 부서지는 아픔 속에서 고운 가루가 되어 하늘나라로 바람을 타고 두둥실 올라가고 싶은 열망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 꿈이 머물고 있는 천연의 나라에서 사는 옥토끼와 동무가 되어 소통하면서 내 인생살이 떡방아를 정겹게 찧는다. 쿵덕-쿵덕-.


이금자

2015.06.02 13:11:27
*.49.228.79

  우와~~~ 오래간만에 보는 절구입니다. 거기다

  쿵덕쿵덕 장단 맞춰 방아를 찧는 글 솜씨에 내 입에 구수한 인절미가 한입 가득 씹히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나도 시골태생이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글을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옛 생각을 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선생님의 재미있는 글 또 들어가서 읽을께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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