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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시아 꽃향기 흩날리는 기전동산

                                                                                                                                            

                                                                                                                                                                정순옥

 

하이얀 아카시아 꽃망울이 터지는 교정. 아카시아 꽃향기 흩날리는 기전동산엔 내 인생의 신앙과 꿈 그리고 낭만과 행복을 가슴 터지도록 품고 있는 아름다운 여고시절이 있다. 전주시 다가산에 위치하고 있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새워진 빨간 벽돌의 기전학교는 아카시아꽃 향기롬으로 그윽한 곳이다. 경천(敬天), 순결(純潔), 애인(愛人)을 학교 교훈으로 삼고 언제나 예배시간을 시작으로 학교생활를 한다. 기전동산을 올라가려면 수많은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가는데 교정까지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음은 적당한 곳에 쉼터가 있어 숨을 고를 수가 있어서다. 그 때 숨결을 타고서 폐부로 들어오는 아카시아꽃 향기롬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 진다.

나의 학창시절의 교복은 하얀 칼라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자주색 골지 투피스여서 여러 모양으로 변형시켜 입을 수 있었다. 소매가 없는 맬빵이 달린 원피스에 소매가 있는 짧은 웃도리를 덧입는 스타일이다. 햇빛 따사한 여름철에는 하이얀 부라우스에 원피스를 입고, 날이 추워지면 원피스에 허리길이가 짧게 만들어진 웃도리를 흰 칼라를 달아서 입을 수 있게 디자인이 되어 참 예쁘면서도 고상하고 여성스럽게 만들어진 교복이었다. 자주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탱탱한 살내음을 풍기며 깔깔거리고 웃을 때는 기전동산은 온통 꿈나라 신천지로 변한다.

수많은 돌층계 밑으로는 같은 기독교 제단인 신흥학교인 남자학교가 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전주천을 끼고 있는 다가교를 발로 콕콕 찍으면서 걸으면 보이는 큰 학교문을 함께 들어서서 가로수 길로 한참을 함께 걷다간 오른쪽으로 위치한 돌층계을 걸어 올라가 우뚝 솟아 있는 솔잎에 둘러싸인 기전학교로 올라간다. 헐떡거리며 한 계단 한 계단씩 돌층계를 올라서 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나도 그만큼 자라났다. 여드름이 빡빡 난 짓굿은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 치마가 바람에 날려 누구의 속살을 보았다는 둥 낄낄대면서 얘기를 한다는 소문이 기전동산에 파다하게 퍼졌다. 참으로 어이없는 소문들이 난무했을 때, 항상 한복을 곱게 입고 출근하시는 근엄한 여교감 선생님의 강권으로 학교 등교길이 계단에서 운동장 옆길 아카시아 언덕을 끼고서 걷도록 교문이 다른 새로운 학교길이 생겼다. 새로운 길은 비가 오면 질퍽질퍽 해서 운동화가 벗겨지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찣는 소동이 일어나 말괄량이 아가씨들의 ㅎㅎㅎ-웃음이 끊이지 않는 낭만의 길로 변해 버린다.

기전학교는 신흥학교와 더불어 호남 기독신앙의 주요지로서 독립운동과 일제 강점기 시대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폐교당했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역사의 한 획을 새기고 있는 기전동산은 항상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교목이 계신다. 회오리 바람이 불어 운동장 황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면 수업시간에 무심코 운동장을 보던 누군가가 소리친다. “얘들아! 운동장 바라보아라! 지금 엘리아 선지자가 바람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의 모습을 상기시킬 때쯤이면 교실안은 공부하기 싫은 여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해 수업은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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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기전동산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전통을 자랑하는 완산구, 한옥 기와 지붕들---. 더 멀리에 모악산의 기()가 퍼져 나오고 있음을 볼 수있다. 모악산은 생각만 해도 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어 건강해진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내가 지금도 살아 있음은 아마도 어디를 가든지 모악산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내심으로 실천하면서 살아와서 일게다. 오른쪽으론 내가 유년시절 병원에 입원했을 때 좋아했던 간호사가 있는 예수병원을 비롯해 선교사님 사택들이 있다.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 선교사님이 선교목적으로 새운 학교여서인지 피스코라고 불리운 노랑머리 선생님도 계셨는데 영어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던 그녀의 환한 미소가 눈에 아른거린다.

나는 틈나는 대로 미술실을 찿는다. 그곳엔 아담하게 생긴 친구 보연이가 이젤 앞에서 곱슬머리 석고상을 뚜러지게 바라보면서 석고소묘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연필을 눈앞에 두고서 손가락으로 곱슬머리 석고상을 등분하면서 뎃상을 하고 있는 거다. 나는 친구에게 석고상를 나보다도 더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속삭이고선 제일 단순하고 깔끔하게 생긴 석고상 앞에 이젤을 놓는다. 나는 지금도 하이얀 비너스 석고상을 내 곁에 두고 있음은 친구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있고 싶어서 일게다. 친구는 미술교사 시절에 자기 그림을 학교 복도에 많이 걸어 놓았는데, 방학 때 그림과 함께 열정도 모두 도난당한 충격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 아쉽다. 지금은 작은자의 자세로 살아 있는 천사의 모습을 보여 주며 신앙생활만 하고 있으면서 나의 친구로 남아 있어 주어 고마울 뿐이다.

   1969, 기전여고 졸업 기념 앨범에는 단발머리 꿈 많은 소녀들이 싱싱한 얼굴에 풋풋한 꿈들을 품고 있는 사진들이 있다. 모두 다 청아하고 참으로 예쁜 친구들의 모습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모교 서무과에 잠시 근무하신 혼불의 저자이신 최명희 선생님, 한국문학의 주역으로 계시는 소설가, 시인 선생님들의 모습도 젊음이 넘쳐 흐른다. 내가 처음으로 쓴 기행수필 탐라여 잘 있거라를 교지에 실게 해준 제주 수학여행 필름들이 그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 아카시아꽃 향기롬에 취한 꿈을 한 아름 안고 무지개 빛 사랑을 밤 하늘의 별들에게 즐겁게 들려줄 수 있는 기전동산. 나는 이 시간 내 인생의 꿈과 행복, 신앙이 서려있는 아카시아 꽃향기 흩날리는 기전동산 돌층계의 쉼터에 서 있다. 미래의 고운 꿈을 안고서 보낸 배움의 터전을 추억하면서, 나는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으며 어떤 향내를 내면서 살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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