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함에 숨은 행복

조회 수 889 추천 수 1 2019.09.21 19: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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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상함에 숨은 행복

                                                                                                                                     

 

 

  속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다. 속상함에 숨어 있는 행복을 찾아내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두고서 내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 일이 무척 마음을 상하게 했는데, 그 원인을 알고 해결한 후에 갖는 행복을 나는 지금 만끽하고 있다.

빨간 열매를 맺으며 녹색 이파리 가장자리에 뾰쪽한 가시들이 돋친 성탄절을 상징하는 홀리(Holly)나무인 줄 알고 십 년이 넘도록 정성껏 키운 나무가 다른 종류의 나무였다니. 아닌 것을 맞는다고 믿어온 나의 어리석음에 무척 속이 상해서 집 처마를 헤치게 할 것 같은 나무를 톱질해 미련없이 없애버렸다. 그리곤 그 자리에 빨강 선인장 화분을 놓았더니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결단 후, 속상함에 숨은 행복을 찾아낸 기쁨이 참으로 크다. 나는 엉뚱하게도 이 시간 꿈속에서 본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핼쑥한 얼굴로 초췌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쓰러질 것같이 연약해진 여인은 아무도 부축하여 주지 않음에 무척 속이 상해 있는 느낌을 준다.

 성탄절 무렵에 흔히 볼 수 있는 홀리나무라고도 부르는 상록 관목인 호랑가시나무가 빨간 열매로 내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나는 성탄절을 상징하는 홀리나무를 우리 집 뜰에도 심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어느 날 나는 직장 주위에 있는 길목길에서 빨간 열매를 맺고 있는 홀리나무에서 내 눈길이 멎었다. 커다란 나무 곁에 있는 꼬마나무를 발견하고서, 옮겨 심으면 살지도 모른다는 욕심 된 생각이 들어 뿌리째 뽑아 소중히 들고 와 뒤뜰에 심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와 인연을 맺은 꼬마나무는 삶의 터전이 옮겨졌는데도 좋은 흙과 물과 거름을 주면서 정성을 다했더니 차츰차츰 모습을 으스대면서 잘 자라기 시작했다. 내 꿈속에 나타난 그 여인도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된 친구 같은 여인을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이 생겨 함께 지내기 시작했을 거다.

 우리 집 좁은 뒤뜰에 심은 홀리나무는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삶의 지경을 넓혀가면서 자꾸만 내 눈길을 앗아갔다. 나는 해가 지날수록 홀리나무와 대화를 하는 게 기뻤다. 아름답게 자라서 빨간 열매를 맺으면 제일 먼저 성탄절 꽃꽂이하여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은 소망이 컸다. 홀리나무와 나는 주위의 다른 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음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 꿈속의 여인도 풍족한 환경에서 삶의 지경을 넓혀가는 친구 같은 여인을 만나 백옥주사니 뭐니 인공적인 예쁨이를 맞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다. 더욱더 예뻐져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싶은 여자들의 변신은 무죄라면서 만민에게 평등해야 할 법도 아랑곳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홀리나무가 빨간 열매 맺기를 기다렸지만, 해를 거듭해도 열매를 맺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틀림없이 빨간 열매를 맺을 거라고 맘속으로는 굳게 믿었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히 우람한 홀리나무 곁에서 꼬마나무를 손가락으로 캐 와서 심었기 때문이다. 꿈속의 그 여자도 내가 홀 리 나무일 거라고 믿은 것처럼 친구 같은 여인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남자의 분신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우리 집 뒤뜰을 구경하는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무슨 나무냐고 묻는다. 내가 설명하면 어떤 사람은 홀리나무가 아니라 옥(Oak)트리 같다고 한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심지어는 내 가족에게까지도 왜 내 말을 못 믿느냐고 쏘아붙이기까지도 했다. 내 꿈속에 나타난 여인도 진실한 친구가 아니라는 주위의 사람들 조언에도 나처럼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피붙이를 멀리해도 좋을 만큼 자기 생각이 완강했을 거다.

 모든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내가 홀리나무로 알고서 십 여년을 키워 온 나무가 내 생각과는 다른 나무임이 확인됐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나무를 좁은 뜰에 키울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없애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어느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톱을 쥔 손이 떨리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나무는 내 톱질에 난도 당하자마자 사납게 온 힘을 다해 피를 토해 내면서 내 얼굴을 할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 엉덩방아를 찌면서 뒤로 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나무가 외치는 소리에 질려 꿈쩍할 수가 없었다. “! 좋다고 함께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싫다고 나를 버리느냐?” 나는 사물을 잘 살피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깊이 깨달았다. 꿈속에 나타난 그 여인의 얼굴을 생각해 본다. 친구 같은 여인과 잘못된 만남임을 깨닫고 너무 놀라서 넋이 나갔기에 얼굴이 창백할 거다.

 이름을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나무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그 나무를 없앤 자리에 빨간 선인장꽃이 피어 있는 화분을 놓았더니 그 자리가 얼마나 예쁜지 내 마음을 시시때때로 앗아가고 있다. 나무를 베어내면서 무척 속이 상했는데 그 속에 행복이 숨어 있었다니 말이다. 사물을 잘 살피지 못한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받은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아낸 나는 기쁘다. 꿈속의 여인도 안 좋은 사람과의 인연을 미련없이 청산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재외동포로 연약하게 사는 내 꿈속에 또다시 나타날 때는, 빨간 선인장같은 가슴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들의 사랑을 눈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속상함에 숨은 행복을 찾아 기쁜 나의 마음이 꿈에 나타난 그 여인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 그루터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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