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석 아동작가

조회 수 366 추천 수 1 2020.02.02 20:40:09

       

                                              동화적상상과 홍용암의 동시

                                         - 19세때 홍용암이 쓴 동시에 대하여

 

 

                                                                                    김 만 석

 

 

 

1. 시대적인 영향

 

  1970년에 출생한 홍용암이 소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보면 문화대혁명이 갓 끝나고 그릇된것을 바로잡던그런 력사적시기였다.

  문학분야에서 보면 4인무리3돌출문학창작법을 배격하고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면서 문학이 정치를 위해 복무하던데로부터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면서 문학이 사회주의와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데로 방향전이를 하던 때였다.

  아동문학, 그가운데서도 동시분야를 보면 4인무리를 분쇄한 정치적 분위기속에서 4인무리를 성토하고 억압받던 간부와 교원을 노래하고 배움의 권리를 되찾은 기쁨을 노래하던 그런 시기였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정치적사상성이 짙은 시적내용을 그때까지 내려오던 재래의 작시법대로 운률을 맞추고 격식화된 련을 조직하면서 작자의 리념을 적라라하게, 그리고 시시콜콜하게 피루다가 나중에 ---, ---감탄사를 련발하며 끝내는 그런 형식들을 취하였었다.

  홍용암이 중학교에 다니면서 처녀작을 발표하던 1980년대 중반기에 우리 동시단의 작가들은 저마다 자기의 지난날의 동시창작을 검토하고 반성하면서 모진 진통을 겪었기에 동시창작은 한시기 침체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이러한 시기에 창작고민의 진통에서 먼저 해탈되여나온 일부 동시인들이 1980년대 후반기부터 새로운 동시를 찾아 탐구의 길에 나섰다.

  그들은 동요와 동시, 동시와 가사의 구별에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고 우선 동시에서 격식화된 틀을 타파해버리였다.

  그다음 현대동시의 창작기법을 점차 도입하여 환상동시, 이미지동시, 특히 감각동시들이 개발되여 우리의 동시는 새로운 차원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런 변혁의 시기였던 1980년대, 아직 세계관을 완전히 수립하지 못한 나어린 홍용암은 그 나이탓으로 하여 아동을 신심이 건전한 사회성원으로 육성하려는 그런 목적, 의식성을 가지고 동시를 창작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어린 홍용암은 자기의 타고난 문학재능으로 각종 신문, 잡지들에 많은 동시들을 창작, 발표해오다가 드디여 1986년에는 첫 동시집 꽃무지개를 펴냄으로써 문학신동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날렸었다.

  이러다가 19세에 나던 해인 1989년에 또 두번째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를 출판함으로써 단순히 자아표현에 머무르던 소년기를 일약 뛰여넘어 일정한 목적, 의식성을 가지고 동시를 창작하는 전도유망한 문학소년으로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오늘, 홍용암이 19세때에 쓴 동시들을 전문 조명하고 투시해보면서 19세때 홍용암의 동시가 오른 수준의 높이를 가늠해보고 그 당시 홍용암동시의 미학적특징을 따져보려고 한다.

 

2. 력사적인 락인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에서 동시가 도합 101수가 실렸는데 그가운데서 1989, 즉 홍용암이 19세때에 쓴 동시가 37수가 되는데 이것은 전반 동시집가운데서 36.6%를 차지한다.

37수의 동시는 그 당시 홍용암동시의 일반정황을 보여줄뿐만아니라 그 당시의 홍용암동시의 수준도 보여준다.

  홍용암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그러한 정치적환경과 그러한 문학적환경속에서 13세때에는 왜 놀라니?내 얼굴 화끈 달아올랐죠, 14세때에 칠색비단내가 만약 무지개라면어쩌면 몰라!, 15세때에는 별 하나, 나 하나, 우리 집 빨간 수탉, 16세때에는 , 해비, 눈꽃, 노랑다람쥐, 허풍쟁이 게사니등을, 17세때에는 빨간 사과, 은하수, 잘 가라, 열일곱살이여등을 써내면서 문학신동으로서의 시적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19세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자기의 시적주장을 가지고 동시를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홍용암도 진공속에서 살수 없었던 관계로 당시의 그러한 문학영향하에서 시대적영향을 받지 않을수가 없었고 또 그렇게 창작한 동시들에 력사적인 락인이 찍히지 않을수가 없었다.

  첫째, 문학이 계급투쟁공구로 충당되던 그런 위독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여 동시를 정치선전선동공구로 만든 점도 엿보였다. 동시 입대하던 날, 선배들을 본받아, 그해 겨울등은 바로 그러한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둘째, 교육아동문학설의 영향에서 아직 해탈하지 못하여 사상성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수단으로 동시들을 쓴것도 두루 엿보인다. 동시 잔디, 돌피와 해바라기등이 바로 그러한 영향을 다다소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셋째, 동시의 예술성에 대한 리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여 시적인 내용을 운률에 맞추어 격식화된 판에 찍어내는 그런 페단들도 얼마간 엿보인다. 동시 미래음악가, 이제 크면등도 바로 그러한 례들로 된다. 이런 동시현상은 홍용암이 바로 그러한 특정된 력사적 시대에 산 사람이며 또한 그러한 동시책임제작풍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 문학소년이였음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만약 19세때에 홍용암이 쓴 동시들이 단순히 이 정도에 머물렀다면 홍용암은 그 당시의 문학신동으로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말았을것이다.

  하지만 홍용암은 그러한 영향을 받아 그러한 작품을 쓰면서도 또 새로운 동시를 써보려고 모지름을 썼던것이다. 동시 생각, 꽃사슴, 꽃망울, 채마전, 봄눈, 전선대등 작품들은 새로운 동시로서 수자적으로 너무 많지는 않지만 19세때의 홍용암 동시의 수준을 말해주는 대표작으로 될수 있다.

  이렇게 볼 때 19세에 나는 홍용암은 시대적인 변화의 년대에 력사적인 락인을 받으면서 문학신동으로 이름을 날린데 그친것이 아니라 새로운 동시를 추구해나온 전도유망한 문학청년으로 발돋음하였던것이다.

 

 3. 홍용암동시의 미학

 

  홍용암은 고중을 다닐 때까지 그 누구의 체계적인 문학리론강의를 들어본적이 근본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독자적으로 동시의 새로운 미학적 견지를 어쭙게나마 파헤치였다. 이것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막론하고 이 점에서 홍용암은 문학신동의 재질을 타고 났으며 또 전도가 내다보이는 문학소년이였음이 객관적으로 증명되고있다.

  첫째, 동시는 독자적인 미학을 갖기 위하여 동화적인 상상력을 수용하게 된다.

  동화적상상이란 아이들의 시점으로 비인격물을 인격화하는 상상을 말한다. 바로 동시는 이런 동화적상상을 수용함으로써 성인시와 구별을 보이게 된다. 즉 동시도 시의 일종이기에 시적상상을 하는것만은 사실인데 동시는 또 거기에 동시의 독자성에 의하여 동화적상상을 덧보태게 되는것이다. 이 점에서 동시는 성인시와 다른 독자적인 미학을 창출하게 되는것이다. 홍용암의 동시 전선대에서 작자는 남다를 시점에서 시적대상물인 전선대를 바라보고 그것을 키꺽다리인간으로 인격화하고있다.

  그럼 시적대상물을 인격화하여 운률에 맞춰 쓰면 동시로 되는가? 아니다. 여기서 동심세계를 예술적으로 파헤치는 문제가 제기된다.

  홍용암은 동화적상상의 나래를 펴고 동심에로 박근해들어가 그 키꺽다리가 전화를 거는걸로, 줄뛰기를 하는걸로, 바줄당기기를 하는걸로 상상하면서 즐거운 아이들의 동심세계를 펼쳐보였다.

  이런 동심세계에로의 박근은 19세에 난 홍용암으로서는 그 누구보다도 가능하였다. 그것은 19세에 난 홍용암으로서는 그때로부터 4, 5년전인 동년시기에로의 회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기때문이다. 게다가 아동문학을 지향하고 새로운 동시를 써보자고 노력한 홍용암으로 놓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되었다.

  그 당시 홍용암은 이미 동심의 문턱을 뛰여나온 청년이였다. 이런 청년이 동심세계에로의 일반적인 회귀가 아니라 진지한 회귀를 할수 있은것은 그로서의 문학적재질이 있었기때문이다.

  최근에 어떤 평론가들은 학생작문을 평가할 때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동심의 문턱을 뛰여넘어 들어갔다고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면 아동문학년령범주에 속하여 아직 동심에 사는 그런 나이로서 동심의 문턱을 넘어서지도 않았는데 어찌 동심세계에 다시 뛰여들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더욱 놀라운것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랑만주의 세계관까지 확립했다는 결론이다. 그 평론가의 론리대로 보면 그 14살짜리가 랑만주의 세계관을 확립했기에 이미 동심의 문턱을 넘어섰소, 오늘 동심을 반영하니 그 랑만주의 세계관을 확립한 14살짜리가 다시 동심의 문턱을 뛰여넘어 들어갔다는것이다. 엉터리없는 망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홍용암의 경우, 19세에 나는 홍용암은 동시의 문턱을이미 뛰여나와 아직 세계관을 완전히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점차 세계관을 수립해가는 과정에 처한 그런 열혈청년이였다.

  런 홍용암이 동심에로의 진지한 회귀, 동심에 대한 남다른 포착, 동심세계데 대한 현란한 환상처리는 홍용암이 새로운 동시에 대한 의식적인 접근이고 또한 홍용암이 새로운 동시를 찾아 지름길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둘째, 동시에서는 또 시적대상이 의인화되고 유정화되면서 그것을 단순, 간결, 명쾌한 형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것은 동시 특유의 미학적 형식요구로 된다.

 

  홍용암의 동시 꽃망울은 꽃망울을 인격화한 깜찍한 동시이다. 이 동시에서 시인은 남다른 예술적시각에서 꽃망울이 터치는 그 한순간을 확대촬영하면서 감각적으로 처리하고있다.

 

  ≪무엇에 성났을가 / 뾰로통---- / 입 꼭 다문 꽃망울

 

  여기서 작자는 꽃망울을 시각적형상으로 돋보여주고있다. 성이 나서 입을 꼭 다문 <<뾰로통한 꽃망울>>을 독자들앞에 선명히 보여주고있다.

 

  그다음 아지랑이 / 살곰살곰 / 간지럽혀놓자고 하면서 작자는 그 꽃망울속에서 촉각적인 감각을 유발해내고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해 / 캐드득---- / 아이, 숨막혀 그만…≫라고 하면서 꽃망울이 간지럼타다가 캐드득----웃고마는 그 소리를 동화적 힘을 빌어 청각화하여주고있다.

 

  마지막에 노여움 / 가시고 / --긋 웃네요...라고 한다.

 

  나중에 꽃망울은 인격화되여 성낼줄도, 간지럼 탈줄도, 웃을줄도 아는 그런 유정한 시적대상물로 되여있다.

  그런 꽃망울이 꽃송이로 터지는 그 한순간을 확대 조명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동심적이며 순간적인 이야기를 반짝 빛내주면서 꽃이 피는 이 자연과정을 간단하고 간결하고 명쾌하게 독자들한테 알려주었다.

바로 이렇게 동화적인 한순간을 깜찍하게 처리하면서 감각적으로 썼기에 이 동시는 성공할수가 있었다. 이 점에서 홍용암은 이런 동시를 쓰면 성공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셋째, 동시는 시적대상에 대한 순간적인 포착으로부터 시작하여 동화적상상의 나래를 펴고 객관적인 사실적요소와 주관적인 랑만주의요소를 한데 결합하여 동심적인 꿈을 만들어내는 문학이다.

   독자들은 그런 꿈에 취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또 그런 인식에서 남다른 쾌감을 느끼게 된다. 즐거운 꿈같은 현실속에서 세계를 예술적으로 인식하는 이것이 바로 동시의 미학적내용으로 되는것이다.

 

  홍용암의 동시 채마전은 동화적상상을 리용하여 창작한 놀라운 화적(話的)동시이다.

 

  ≪욕심돼지가 씩- - 울바자 틈새를 뚫고 채마전에 들어간다.

 

  줄당콩은 바빠라 바자타고 오르고, 고구마는 혼비백산 땅굴속에 몸을 감추고, 꽈리는 부랴부랴 주머니속에 숨는다…≫

  작자는 침략자욕심돼지가 채마전을 습격할 때 비겁한 자들의 랑패상을 풍자적이면서도 동화적으로 그려낸다.

  그다음 팔굽을 썩- 걷어붙이고 싸움에 나선 강냉이, 비수를 빼들고 일어선 고추, 방망이를 꺼내들고 일떠난 가지…≫ 등 용감한 자들의 반항정신을 동화적으로 노래하고있다.

 

  작자는 이 반항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호박꽃이 <침략자와 일떠나 싸우라>고 총동원나팔까지 분다고 힘주어 강조하고있다.

여기서 동심에 회귀하여 동심적인 사색을 굴리며 동심세계를 한껏 펼쳐보인 홍용암의 시적재질을 보아낼수가 있다.

 

  물론 채마전은 뒤죽박죽이 되였지만 자기의 채마전을 지키기 위하여 총동원된 강냉이, 고추, 가지 등을 찬양한 이것으로써 아이들한테 자위정신과 진취정신을 고스란히 뿌려준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예술적효과라고 해야 하겠다. 이런 황당한 객관적현실, 주관적인 랑만주의 꿈이 서로 결합된 그런 시적내용으로 동시의 미학적내용으로 삼은 여기에서 홍용암동시의 개성적특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19세때에 쓴 홍용암 동시에서의 동화적상상을 리용하여 쓴 동시들을 중점적으로 두루 살펴보았다.

  물론 동시 꽃사슴생각과 같은 시들은 사색적인 동시로 주목되고 동시 봄눈은 은유적인 상징동시로도 볼수가 있다. 그러나 19세때의 홍용암의 동시를 일별해보면 그래도 동화적상상을 도입한 동시들에서 그 성과가 보이며 또 수자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이런 동시가 홍용암동시의 주류를 대표하는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동화적상상으로 동심에로 회귀하여 그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고 더 천진하고 더 재미나는 동심세계를 펼쳐보인 여기서 19세때 홍용암의 동시의 주되는 특징이 보여진다.

또 동화적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고 동심세계에 박근하여 황홀한 동심을 노래한 여기서 홍용암의 문학적재질이 보여진다.

  하여 홍용암이 이 방향에서 계속 창작, 전진하기만 하면 동시창작에서 풍만한 열매를 거두고 개성적인 특징을 잘 살릴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후 아쉽게도 홍용암은 바다에 뛰여들어 새로운 경제령역을 개척하다보니, 그의 이러한 특징과 재질을 계속 꽃피우고 발양하였는가 하는것은 앞으로의 동시창작에서 다시 찾아보고 연구해보아야 할 숙제로 남기고 제기하는수밖에 없다.

 

                                                                    -문학과 예술, 잡지 2001년 제2

 

 

 

김만중es.jpg

 약력:

김만석 아동작가는 1939년에 출생, 1969년 연변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습작학>,<아동문학>,<현대조선어>를 강의했다. 퇴직 후에도 조선족아동문학을 위해 평론분야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아동문학연구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아시아아동문학학회 회원, 연변주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웹담당관리자

2020.02.03 10: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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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이 거주하는 연변 일대는 대한민국이 사용하는 한글문법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두음법칙과 띄어쓰기, 사용하는 단어와 어법 등이 많이 다릅니다. 그곳에서 사용하는 문장을 그대로 옮겼으니,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솔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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