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빨치산

조회 수 732 추천 수 2 2020.08.31 15:09:18

     빨치산.jpg

                                                           

                                                             빨갱이, 빨치산

 

                                                                                                        정순옥

 

빨갱이, 빨치산.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어쩐지 으스스하고 소름이 끼치는 언어들이다. 이렇듯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언어 속에서 기억도 없는 아버지 탓에 빨갱이 새끼라는 굴레를 쓰고 자란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에 태어난 친우가 있다. 가슴 한가운데에 빨갱이라는 단어가 똬리를 틀고 앉아 늘 아프게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슬프고 참담한 역사의 한()을 품고 사는 친우다. 다시는 우리나라에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한국전쟁으로 격변과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 하는 선민들은 사람을 평등하게 잘 살게 한다는 새로운 세상 같은 공산주의 사상에 솔깃했을 것이다. 전쟁 시기에 지리산을 중심으로 공산당 게릴라전이 심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쳐대고 끈질기게 포섭해서 빨치산 당원으로 합류시켰는데 이 시기에 순진한 농사꾼인 친우 아버지도 동참하지 않았나 싶다. 전쟁 중이라 나라를 사랑하는 선민이지만 어쩌다 보면 빨갱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빨갱이 소리를 듣게 되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루 사이에 선민이 빨갱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혼란의 시기가 우리나라 역사에 있었으니 참으로 슬프고 경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6·25동란 후인지라 먹고사는 일도 힘들었지만, 사람들도 무서웠다. 밥을 얻어먹으려고 지저분한 얼굴로 다니는 거지들, 책보를 뺏기지 않으려고 손으로 꽉 쥐고 다니게 했던 넝마주의, 목탁을 두드리면서 시주하는 가짜 돌중,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문둥이라고 불렀던 찌그러진 표정의 사람들, 쇠갈고리로 된 손이나 목발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상이군인들이 대문 밖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나는 어리지만, 시골집을 보면서 이들에게 곡식을 줄 때가 잦았다. 어떤 사람은 윽박지르듯이 험한 얼굴로 무섭게 겁을 주면서 귀한 쌀만 달라고 해서 오돌오돌 떨면서 곳간에서 퍼다 주었던 기억도 있다.

학교에서는 날마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 민주주의나 애국에 대한 사상교육을 많이 시켰다. 노래도 폭력적인 언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무찌르자 공산상,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싸움터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초등학생들 입으로 아무렇게나 불리곤 했다. 빨갱이 빨치산을 조심하라는 교육도 받았다. 친구들 사이에는 빨갱이 새끼가 우리 반에도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마을에서 도둑을 맞으면 빨갱이인 산사람들이 필요해서 밤에 내려와 가져갔을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나 빨치산 또는 산사람은 같은 의미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 ! !

총탄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나열해 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씩 총살을 당해 쓰러져 가는 무차별 대량학살 장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친우 오빠는 이 참혹한 광경을 멀리서 목격했다.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끌려간 아버지는 호숫가 둔치에서 공산당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총탄을 맞고 쓰러진 것이다. 그 당시 시체는 그대로 호수에 던져버려 가족은 볼 수도 없었다 한다.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그래도 자기 아버지 시체를 가져와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재빠른 판단에서였다.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산악 지역이나 토굴에서 외치던 친우의 아버지는 그렇게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잃었다.

친우는 남의 집으로 삯일하러 다니는 어머니 등에서 서럽게 자랐다. 학교생활은 밖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친구들이 빨갱이 새끼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언제나 우울한 정서가 형성되었다. 가끔 오빠의 불편한 마음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 날 또 싸울까 봐 가슴을 조이기도 했다. 상이군인들은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라를 구하려다가 병신이 되었노라고 집 안까지 들어와 무섭게 삿대질을 하면서 보상하라고 대드는 게 다반사였다. 세월이 흘러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사상검증에 빨강 줄이 그어져 진학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오빠는 억제할 수 없는 분노로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잦았고 생활이 엉망인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친우는 지금도 빨갱이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가슴에 통증이 온다 한다.

빨갱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 언어를 요즈음 정치 중심가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사용하고 있음에 놀랍다. 반대파를 공격하면서 조롱하며 싫은 태도로 빨갱이 색깔론 등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올바른 시대정신을 가졌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남북관계를 중요시하는 이 시대에 서로 할퀴는 이런 언어들이 정치인들 사이에서 범람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재외동포로 사는 나지만 늘 고국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살기 때문에 국민과 민족을 위해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염려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국가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모든 분야에서 발전해 가고 있는 나라다. 정치인들의 태도도 세계에서 모범이 되고 으뜸이 되는 국민의 대변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빨갱이,

빨치산으로 간주해 아버지가 학살만행을 당한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오랜 시간 친우가족이 노력한 결과 국가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었노라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총살당한 음지에서 나라를 사랑하셨던 친우의 아버지와 빨갱이 새끼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침울하게 살았던 친우 그리고 가족들을 마음 깊이 위로한다.

다시는 우리나라에 가슴 아픈 역사가 형성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맺는다

 

PS: 내용의 사진과 아무 관련이 없고, 영화의 한 장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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