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속에서 꾼 꿈

조회 수 1946 추천 수 1 2020.11.07 06:38:24

                                         인종차별 속에서 꾼 꿈

 

                                                                                            정순옥

 

 

인종차별. 존재의 차별을 당한 사람은 절망의 깊은 늪에서 허덕이기 쉽다. 그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에 대한 꿈을 꾼 사람이 있다. 인종차별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모멸감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미스 유(애칭). 인종차별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아름답게 꾼 꿈을 간직하고 있던 미스 유가 오늘따라 무척 생각이 난다. 새로운 삶을 위해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노라면서 언젠가는 다시금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하던, 뒷모습이 애처로웠던 그녀.

우연히 알게된 미스 유는 미국에 살면서 맛있는 한국음식을 세계화 시키는 게 꿈이라 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은 한국식당을 차리는 것이라 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상류층 시집 식구들까지도 한국 불갈비며 잡채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꾸기 시작한 꿈이라 한다. 내가 만난 미스 유는 한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도회지에서 여상을 나온 아주 여린 마음을 가진 삼 십 중반쯤 되는 젊은 주부였다. 내가 본 그녀는 아담하고 수수하게 생긴 전형적인 한국여성 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인내로 점철된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 나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도회지에서 여상을 졸업을 한 후, 지인의 소개로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취직이 되었다는 미스 유.

  미스 유는 아름답고 영화롭게 살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 주셨다는 미영(美榮)이라는 이름의 뜻을 나에게 설명해 주면서 지나온 과거사를 들려 주었다. 가끔은 행복한 모습으로 가끔은 서글픈 모습으로 가끔은 홍조를 얼굴에 띄우며 떨리는 모습으로 얘기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여고시절엔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쥐똥이 떨어져 내리기도 했던 도회지 변방 허술한 집에서 배고품 속에서 살았지만, 형제들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았기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미스 유는 여상을 졸업 한 후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취직을 할 수 있어 뛸듯이 기뻤다.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큰오빠가 보수적인 가정교육을 시켰기에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남학생 근처에 가는 것 까지도 망설이며 살았단다. 순수한 시골 여학생이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취직이 되었으니 집안에서는 기쁨 반 걱정 반 이었다. 더군다나 사랑에 빠진 미군과 결혼을 한다고 하니 다시는 집에 발걸음을 하지 말라고 큰 오빠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미군인 남편과 서류 결혼 후 집을 찿았으나 큰 오빠가 무서워서 동네 아줌마에게 선물만 전해주라고 부탁하고선, 서럽게 울면서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을 설득한 후 미국으로 건너 와 살면서 지금까지도 친정집을 가지 못하고 있노라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시집은 미국에서도 고급 주택이 즐비한 백인 우월주의가 심한 곳에서 법조계의 명문가로 통하고 있었다. 남편은 한 번도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 법적으로 혼자서 결혼 할 수 있는 나이 였기에 부부로 가정을 꾸미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모임에서는 언제나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어느날 가발을 쓰고 서구적인 화장을 하고서 가족 파티에 간다는 남편 앞에 모습을 보였다. 남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어떤일이 있어도 마음 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가족 파티에 참석했다. 가족들은 마치 원숭이 바라보듯이 냉대했고 남편의 표정은 굳을대로 굳어 있었다. 세월이 지나 또다시 몇번의 용기를 내어 불갈비를 준비해 들고 가서 바베큐 해서 맛 보게 했더니 시집 식구들이 마음문을 열기 시작함을 느꼈다. 어느때부터 김치며 한국음식을 해 달라는 주문이 올 정도로 가족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인종차별을 느끼는 속에서 꿈이 생겼는데, 한국음식을 세계화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꿈이란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은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고질화된 병으로 남아있다. 세계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합중국이라는 특수한 이유도 있지만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 원주민들과 개척자들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나라다. 은근히 느끼게 되는 인종차별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행하여 지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마도 천지개벽이 일어 나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고서는 토착화된 인종차별은 영영 없어지질 않을 것 같다. 인종차별이란 사람을 만들어 주신 창조주 앞에선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인데 말이다.

 한 때는 ‘I can’t breathe’ 라는 팻말을 들고 길가에 서서 데모하는 흑인들이 많았다. 20205월에 한 백인 경찰이 George Floyd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과잉 진압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진 사건이 있은 후였다.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말한 조지 플로이드는 흑인이었고 이 일로 인해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 하다는 BLM 운동이 재점화 되었다. 인종 차별로 인해 무차별한 폭행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사례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될 때마다 미국의 고질병은 더욱더 악화되는 느낌이다. 남을 존중하지 않고 낮잡아 보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어 심하면 천하보다도 귀한 한 생명을 잃게도 하니, 인종 차별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인종차별 속에서 꾼 꿈을 이루어 내고 싶어 오늘도 누군가에게 맛있는 한국 불갈비 바베큐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미스 유. 한국음식을 세계화 시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박한 꿈을 품고서 온갖 노력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웬일인지, 미스 유가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찿아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자꾸만 아려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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