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

조회 수 428 추천 수 1 2020.12.21 11:35:06

솜이불.jpg

 

                                                솜이불

                                                                                           

                                                                                                 정순옥

 

 

  솜이불은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이다. 나는 결혼한 날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추운 날엔 솜이불을 덮고 잔다. 내 몸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솜이불은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내 혼수 이불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혼수 솜이불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솜이불 속에 있으면 시집올 때 만들어 주신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어 무척 평화롭고 행복해진다. 항상 솜이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한다면 지구촌 어딘가에 따스한 기운이 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목화솜 이불은 아마도 내 유년시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내 유년시절 기억으로 우리 엄마는 항상 목화송이를 따다 말리면서 우리 막내딸 시집 보낼 때도 사용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나까지 솜이불을 해 주고 싶은 소망으로 하얀 목화송이를 손에 들고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해마다 복슬복슬한 목화송이를 조금씩 따다 말려서 모아 두었다가 행복하게 살라며 혼수 이불을 해 주신 친정어머니의 아련한 추억 중 하나다. 내가 덮고 있는 포근한 감촉을 주는 솜이불은 우리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귀중품이다. 내가 추울 때 나를 따뜻하게 해 주고, 내가 외로울 땐 어머니의 사랑 속에 묻혀 있는 느낌이 들곤 하는 솜이불. 나는 솜이불 속에서 항상 행복을 느끼곤 한다.

목화 이야기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한국역사 중 성공 신화 이야기다. 고려 시대 문익점은 학자로 원나라에 사신을 보좌하여 기록을 담당하는 서장관의 자격으로 가게 된다. 원나라에서 남몰래 붓두껍 속에 목화씨 세 개를 넣어 가지고 와서 심었으나 겨우 한 개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해를 거듭 할수록 번성해 사람들에게 직조를 가르쳐 백성을 이롭게 한 사실이다. 문익점은 조정에서 파면당한 뒤에는 고향에서 목화 재배에 집중하여 대중들에게 일반화시켰다. 목화=문익점이지만 사실은 더 일찍 삼국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재배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기록 중 고구려는 면포가 있다.’라는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선조가 있었기에 목화를 재배하게 되어 추위로부터 사람을 구한 숨 쉬는 천연솜, 폭신폭신하고 감촉이 아주 좋은 목화솜 이불을 덮을 수 있음은 행운이 아닌가.

솜이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인내와 사랑이 필요하다. 봄이면 목화씨를 땅에 뿌려 김을 매고 거름 주어 키우면 여름철에 꽃이 피고 달짝지근한 열매를 맺는다. 목화 열매를 다래라고 하는데 달짝지근하여 시골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만류에도 주린 배를 채우려고 열매를 따 먹기가 일쑤였다. 초가을이 되면 갈색으로 변한 다래 껍질 꼬투리가 터져 하얀 목화솜이 밖으로 헤집고 나와 꽃처럼 피어난다. 그래서 두 번 꽃이 피는 식물이 무엇이냐고 옛날 진사 시험에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얀 목화송이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 일일이 껍질 속에서 빼내어 말린다. 목화송이 속에 있는 씨들을 씨앗기로 씨와 솜을 분리해 낸 후 솜을 틀어 보송보송한 솜으로 만든다. 목화솜을 안에 넣고 양단이나 유똥으로 이불겉을 만들어 새하얀 옥양목 홑청으로 솜을 감싸서 꿰매면 솜이불이 된다.

  나는 원앙새가 미싱으로 수놓아진 혼수 솜이불을 첫 번째 펴던 날, 어머니 사랑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찡했던지 모른다. 울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신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르려고 노력했던 시절이 참으로 많이 흘러 솜이불을 잘 모르는 신세대들 속에서 옛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혼수 솜이불도 낡고 딱딱해져서 솜 틀기를 해서 솜을 다시 재생시키고 싶은데 재외동포로 생활하다 보니 사실상 어려워 솜이불을 먼지를 털어준 뒤 따스한 햇볕에 잘 말려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언젠가는 헌 이불을 새 이불로 탄생시킬 기회가 있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구해온 지퍼 달린 편리한 홑청으로 이불을 씌워 사용하기에 좋다. 자주 세탁할 수 있고 날씨 좋은 날에는 이불솜을 바람에 쐬고 햇빛에 자주 말리면 자연 살균이 되고 솜도 보송보송해지는 감촉이 든다.

  겨울에 하얀 눈이 천지를 덮고 있으면 하얀 솜이불이 천지를 덮고 있는 양 추운 날인데도 추위를 느끼기보다는 포근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겨울이 되면 하얀 눈들이 목화솜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 집이 없어 추위에 떨고 사는 사람들이 추위를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 속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면 이루어 주는 마왕이 생각나기도 하고 전능자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나는 항상 목화솜처럼 하얀 함박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날이면 잊지 못할 어머니의 생전의 모습이 아름답게 떠오르곤 한다. 한 손엔 쌀 한 바가지 한 손엔 미역 한 묶음을 들고서 무희의 춤사위를 떠올리게끔 하얀 치맛자락을 거센 눈보라에 날리며 마을 끝자락 허름한 초가집에 사는 영철이 집을 향해 뽀드득 뽀드득 눈 위를 걸어 종종걸음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으로 뿌린 사랑 물감 한 방울이 내 가슴 속으로 번져 퍼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어머니께서 살았던 삶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내 몸이 더욱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하얀 눈이 목화솜처럼 느껴지는 이 추운 겨울에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으로 나를 덮어 주는 솜이불.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함께할 아늑한 혼수 솜이불. 지상낙원에 있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솜이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으로 누군가의 추운 마음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구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

  이불을 덮는 두 손과 마음에 사랑의 전율이 흐른다


박은경

2020.12.22 12:45:00
*.155.194.43

천국에 가신 울 어머니 아버지도 선산 언덕에서 솜이불 덮고 쉬고계시네요

저도 어릴적에 어린 다래를 따 먹기도 하고 목화솜을 따던 추억이 있답니다

편안하고 멋진 성탄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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