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입니다. 취재 때문에 충주에 갔다 돌아오려는 순간에 만년필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됐습니다. 취재하는 내내 안 쓸 땐 분명히 바지 오른쪽 앞주머니에 넣었었는데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올라서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없는 겁니다. 현장에서 흘렸나 싶어서 돌아가서 찾아봤지만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척 언짢았습니다.
어제 들고갔던 만년필은 4년째 써 온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쓰던 만년필을 취재 나갔다 잃어버린 바람에 새로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잃어버린 만년필은 꼬박 10년을 길들여 써 온 것이었는데 종로에서 거리 인터뷰를 하다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리고 너무 속이 상해서 다시는 만년필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를 못 버티고 다른 만년필을 새로 구입했었죠.
어제는 다행스럽게도 서울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의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만년필을 발견했습니다. 차에 올라타서 앉을 때 빠졌었나 봅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적어도 새해 들어 지금까지 50여 일 사이엔 그보다 더 기뻤던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물건인들 잃어버리고 기분이 좋을 리야 없지만 만년필을 잃어버리면 유난히 속이 상합니다. 필기구치고는 조금 값이 나가는 탓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함께한 세월 때문입니다. 흔히 쓰는 일회용 필기구와 달리, 만년필은 정성껏 길들여가며 길게는 수십 년 씩 품고 쓰는 물건입니다. 오죽하면 이름이 '萬年筆'이겠습니까?
만년필을 쓰는 이들은 자신이 쓰던 만년필을 좀처럼 다른 이에게 빌려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펜을 쥐는 방식이나 눌러쓰는 압력이 다르기 때문에 펜촉이 쓰는 사람에 맞춰 닳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길'이 드는 거죠. 잘 길들인 펜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금세 펜촉 상태가 달라집니다. 돌려받아서 써 보면 필기감이 다릅니다. 결국 만년필은 그냥 펜이 아니라 손때 묻은 세월만큼의 주인의 체온과 성격과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물건입니다. 저는 만년필만큼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년필 한 자루 때문에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사연 많은 충주 취재는 문화재 취재였습니다. 충주의 한 건설현장에서 무덤이 발견됐습니다. 2천2백 년 쯤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입니다. 그 속에서 귀중한 세형동검 7점을 비롯한 청동기 유물 7종, 19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발견된 유물의 양만 놓고 봐도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번 발굴이 특히 의미 있는 건 무덤 주인의 신분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무덤의 주인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 집단의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무덤 주인의 신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무덤이 만들어진 당시 한반도 북쪽엔 고조선이 있었습니다. 남쪽엔 이른바 '진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른바'라는 표현을 쓴 건 강력한 국가였던 것이 분명한 고조선과 달리 진국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진국'은 그 범위가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물론이고 단일 국가였는지 아니면 '소국'들의 연합체였는지조차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대이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탓이죠. 그나마 그동안 알려졌었던 건 충남과 전남 지역이 진국의 중심이었다는 정돕니다.
그런데 이번에 무덤이 발굴된 충주는 이제껏 알려져 온 진국의 범위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우두머리의 무덤이 나왔다는 건 완전한 국가이든 소국이든, 어떤 형태로든 충북지방에도 권력집단 형태가 존재했었다는 최초의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고조선과 진국 사이에 물음표로 존재하던 한반도 중부 내륙 지방에 관한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조사단은 어떻게 이 무덤이 '우두머리'의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그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 때문입니다. 무덤에선 우선 세형동검이 나왔습니다. 검은 군사력의 상징입니다. 또 청동거울도 나왔습니다. 거울은 예로부터 제사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제의 때 거울을 많이 사용합니다. 무덤에서 검과 거울이 함께 나왔다는 것은 주인이 군사와 제사를 동시에 관장했다는 증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함께 나온 각종 도구입니다. 이번 발굴에선 세형동검과 거울 외에 청동으로 만든 도끼와 새기개, 끌 같은 작업 도구들이 함께 나왔습니다. 우두머리, 말하자면 그 지역 왕의 무덤인데 공사장 인부나 쓸 법한 작업 도구라니 뭔가 영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도구들에 대한 한 전문가의 추정이 재미있습니다. 이 도구들이 '글쓰기'의 상징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엔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들이 유일한 '기록'이었습니다. 고대 벽화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될 겁니다. 아직 학계의 공식 의견은 아니지만 들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이 도구들이 실제로 글쓰기의 상징으로 확인된다면 무덤의 주인은 군사, 제사와 함께 文까지 관장한 명실상부한 수장이라는 게 증명되는 것이죠.
죽은 이는 말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죽은 이가 사용하던 물건들은 말을 합니다. 어떤 문자나 기록보다도 더 명확하고 강력하게 말을 합니다. 마치 제가 늘 들고 다니는 제 만년필이 잘 뜯어보면 저라는 사람을 꽤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문화재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물건들을 쓰고 계신가요?
어제 들고갔던 만년필은 4년째 써 온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쓰던 만년필을 취재 나갔다 잃어버린 바람에 새로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잃어버린 만년필은 꼬박 10년을 길들여 써 온 것이었는데 종로에서 거리 인터뷰를 하다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리고 너무 속이 상해서 다시는 만년필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를 못 버티고 다른 만년필을 새로 구입했었죠.
어떤 물건인들 잃어버리고 기분이 좋을 리야 없지만 만년필을 잃어버리면 유난히 속이 상합니다. 필기구치고는 조금 값이 나가는 탓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함께한 세월 때문입니다. 흔히 쓰는 일회용 필기구와 달리, 만년필은 정성껏 길들여가며 길게는 수십 년 씩 품고 쓰는 물건입니다. 오죽하면 이름이 '萬年筆'이겠습니까?
만년필을 쓰는 이들은 자신이 쓰던 만년필을 좀처럼 다른 이에게 빌려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펜을 쥐는 방식이나 눌러쓰는 압력이 다르기 때문에 펜촉이 쓰는 사람에 맞춰 닳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길'이 드는 거죠. 잘 길들인 펜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금세 펜촉 상태가 달라집니다. 돌려받아서 써 보면 필기감이 다릅니다. 결국 만년필은 그냥 펜이 아니라 손때 묻은 세월만큼의 주인의 체온과 성격과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물건입니다. 저는 만년필만큼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년필 한 자루 때문에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사연 많은 충주 취재는 문화재 취재였습니다. 충주의 한 건설현장에서 무덤이 발견됐습니다. 2천2백 년 쯤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입니다. 그 속에서 귀중한 세형동검 7점을 비롯한 청동기 유물 7종, 19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발견된 유물의 양만 놓고 봐도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번 발굴이 특히 의미 있는 건 무덤 주인의 신분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무덤의 주인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 집단의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무덤이 발굴된 충주는 이제껏 알려져 온 진국의 범위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우두머리의 무덤이 나왔다는 건 완전한 국가이든 소국이든, 어떤 형태로든 충북지방에도 권력집단 형태가 존재했었다는 최초의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고조선과 진국 사이에 물음표로 존재하던 한반도 중부 내륙 지방에 관한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조사단은 어떻게 이 무덤이 '우두머리'의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그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 때문입니다. 무덤에선 우선 세형동검이 나왔습니다. 검은 군사력의 상징입니다. 또 청동거울도 나왔습니다. 거울은 예로부터 제사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제의 때 거울을 많이 사용합니다. 무덤에서 검과 거울이 함께 나왔다는 것은 주인이 군사와 제사를 동시에 관장했다는 증겁니다.
그런데 이 도구들에 대한 한 전문가의 추정이 재미있습니다. 이 도구들이 '글쓰기'의 상징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엔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들이 유일한 '기록'이었습니다. 고대 벽화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될 겁니다. 아직 학계의 공식 의견은 아니지만 들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이 도구들이 실제로 글쓰기의 상징으로 확인된다면 무덤의 주인은 군사, 제사와 함께 文까지 관장한 명실상부한 수장이라는 게 증명되는 것이죠.
죽은 이는 말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죽은 이가 사용하던 물건들은 말을 합니다. 어떤 문자나 기록보다도 더 명확하고 강력하게 말을 합니다. 마치 제가 늘 들고 다니는 제 만년필이 잘 뜯어보면 저라는 사람을 꽤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문화재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물건들을 쓰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