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 푸름이 심연에서 메아리친다.
가슴에서 이른 봄부터 봄햇살 가~아득 농부들의 구릿빛 땀방울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고 노래부른다.
가을 들판 산해 진미의 향내가 식탁에서 춤을춘다. 엇그제가 봄이었다 싶은데 다음 주간이 추수감사절 기간이라니, 세월 참 빠르게 가는 걸 실감한다. 우리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추석"이라는 명절이 있듯이,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라는 명절! 이명절은 수확을 거둔 것에 감사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축제다. 하여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쨰주 월요일"에 기념합니다. 또한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한다.
작금, 추수감사절은 추석과 비슷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주로 가족끼리 모여서 파티를 열고,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교해서 먹는 음식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한 의미의 행사다. 하지만 정확한 의미와 유래를 살펴보면 16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주한 102명의 청교도인들이 첫 수확을 한 후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축제를 연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초이자 유래라고 알려있다.
하지만 20년 전에 미국에 와서 수업시간에 배운바 어두운 이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디언과 관련된 이야기다.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북미 해변가인 프리기스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무지했고 환경에 대한 적응을 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육지에 도착한 이후에도 먹을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 그리고 야생동물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당시 그 지역 인디언인 "왐파노악족 추장"인 사모셀드와 스구완도가 그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일로 화친을 맺었으나 문제가 발생하고만다. 인디언들과 화친을 맺고, 식량을 나누어 받고 농사 짓는 법과 사냥하는 법을 전수 받았다.이후, 청교도인들은 그 방법에 따라 열심히 일해 가을에 수확을 맺을 수 있었다. 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축제를 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는데 미국에 정착한 이들이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인디언들과 전쟁 해 학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늘 설로 현재 살아남은 인디언 후손들은 백인들을 살린 것에 대해서 명백한 실수라며 분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이곳에는 당시, 많은 나라에서 노다지를 줍겠다고 상당히 많은 이주민들이 있었다. 그런이유로 약탈 전에 이루워졌다. 한 때 서부극이 드라마 부분의 수의를 높이던 때가 기억된다.추수 감사절의 의미를 다시 집고 넘어가 본다. 청교도인들이 신앙의 자유 찾아 정착한 곳이 미국이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the Puritan)들이 그로부터 1년후 낮설고 물설은 개척지에서 갖은 풍토병과 각종 생활의 질고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해 농사를 수확한 후 얻은 새 땅에서의 첫 결실을 감사하여 드린 감사 기념 예배에서 유래된 것이다.
청교도의 감사는 눈물의 감사다. 이른 봄 봄햇살 가아득 가슴에 품고 뿌리는 농부처럼 이들은 결실을 통해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된 벅찬 감동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가 되어졌다 싶다. 그런 감사가 온전하게 하나님께 상달되는 감사의 예배였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현대 미국을 탄생시킨 선조(the Piligrim Fathers)들이 된 것이다.즉 이들이 드렸던 첫 추수 감사절의 벅찬 환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건국 일화나 한 해의 추수의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자유의 존엄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개척자 정신의 고귀함을 보여 주는 산 실례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모든 인류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준다. 특히 이들의 후예인 미국 교회의 선교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의 자연스런 영향으로 추수 감사절을 지키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건국자들이 가졌던 신앙과 개척정신을 크게 상실한 미국 교회뿐 아니라 전세계 교회는 이 추수 감사절을 다시금 자신의 신앙의 활력을 소생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가을 청명함! 가슴에 나붓기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