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꽃 퍼레이드/여름 이야기

조회 수 69 추천 수 0 2021.06.28 07:04:29

 

축제의 꽃, 퍼레이드 [2015년 8월 미네소타 호숫가에 살 때 이야기임다]

살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했던 행운을 잡는 일이 생기곤 한다.
지난 토요일 아침 급하게 동생에게 부칠 편지가 있어 일하다 말고 우체국에 갔다.

마침 이번 주말이 매년 여름 마을 축제가 열리는 주말이라 길거리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북적거렸다.

우체국 앞길에는 행사 관계자가 주차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난 우체국에 잠깐 들렀다 바로 간다고 말하고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운전해 들어갔다.

곧 편지를 부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아뿔싸, 이미 거리 행진이 저 끝에서 시작되었고 난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고 바쁘다 해도 이미 양옆으로 늘어선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나갈 용기는 없었다.  

덕분에 생각지 않았던 마을 행사에 관객으로 참석하게 되었으니 이제 마음을 비우고 즐기는 수밖에.

나는 미니밴의 뒷문을 열어놓고 걸터앉아 편한 자세로 각양각색의 행렬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첫 번째로 등장한 팀은 미국 성조기를 포함해 여러 개의 깃발을 든 기수대가 제복을 갖춰 입은 군악대의 행진곡에 맞춰 선두로 지나갔다.

그 뒤를 인디언 깃발과 화려한 머리장식을 한 인디언 추장 행렬이 지나가고,

십여 대의 불자동차들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를 놀라게 했고 마차에 탄 서부 개척자들의 행렬에서는 추억의 서부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형 플롯(float)에 탄 재향 군인회 군인들이 각 군을 대표하는 깃발과 멋진 제복을 입고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며 행렬을 지켜보았다.

그 뒤에는 직접 조립해 만들었다는 모델T 자동차들과 앤틱 자동차들의 행렬이 있었고, 인디언 복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탄 바이커들이 뒤를 따랐다.

다음은 북부의 전설인 거인 목수 폴 버니언이 대형 도끼를 들고 빨간 웨건(wagon) 위에서 손을 흔들었고,

제복의 보안관들은 늠름한 모습으로 말 위에서 깃발을 들고 있었다.

빨강 파랑 불을 번쩍이며 지나는 경찰차들 뒤로는 꼬마 사륜 오토바이에 어린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이민 온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전통 복장에 백 파이프 연주로 흥을 돋구었다.

한 가지 색다른 것은 거의 모든 단체마다 사탕이나 비즈 목걸이 같은 작은 선물들을 한 주먹씩 주위 사람들에게 던져주는데  

구경꾼들이 다 주워 가지 못할 만큼 그 양이 많아 다음 행렬이 밟고 갈 지경이었다. 

어느 팀은 플라스틱 용기에 든 얼음과자를 주변에 돌아다니며 구경꾼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고,

빵집 아저씨는 달달한 미니 도너츠를 트럭에 싣고 지나가며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야생 동물 보호가 단체에서는 아이들을 조랑말에 태워 지나며 바퀴를 단 벽보에 선전용 사진과 구호들을 써 붙여 놓기도 하였다.

대형 트레일러트럭에는 어린이 놀이기구를 싣고 색색의 연과 풍 등을 달아 눈길을 끌었고, 초대형 하버 크레프트(hovercraft)와 제트 스키(jet ski)를 실은 트럭도 보였다.

그다음은 크고 작은 트랙터를 몰고 온 십여 명의 동네 농부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부터 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이까지 트랙터마다 자신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모두 한 집안사람이라며 빨간 단체복으로 멋을 내었고 옛날 농기구들을 웨건에 실어 선보이기도 했다.

다음 차례는 인도풍의 옷을 입은 밴드가 트럭 위에 앉아서 동양 음악을 연주하며 지나갔고, 모래 위를 달리는 둔버기(dune buggy) 행렬과 각종 보트가 트럭 꽁무니에 매달려 지나갔다.

마을 교회에서 준비한 웨건에는 악기들을 갖춘 찬양대가 찬송가를 부르고 노란 건초를 가득 싣고 골든걸-할머니들이 손을 흔들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고, 골프장에서 보낸 골프 카트에는 골프 가방에 골프 클럽이 가득 꽂혀 있었다.

병원의 구급차는 양옆으로 병원 이름이 쓰인 깃발을 꽂고 사이렌을 울리며 길을 비키라 하고, 장난감 트렉터를 탄 인디언 소녀는 마치 귀여운 인형 같았다.

두 개의 동네 술집에서도 나지막한 트레일러에 간판과 미니바를 만들어 놓고 몇몇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연출했고,

영화관을 광고하는 트럭에는 대형 종이상자에 풍선을 가득 담아 팝콘을 표현하고 무료 팝콘 경품권을 나누어 주며 지나갔다.
동네 부동산에서도 자신들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강아지 목에 풍선을 달아 걸어가며 주위의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도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둔 유세행렬 정치인들이 트럭에 선거 문구와 국기, 자신의 이름이 쓰인 깃발들을 나부끼며 지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이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게리슨 커머셜크럽이 중장비 트럭에 깃발을 휘날리며 천천히 지나면서 행렬을 총괄하며 지났다.

 

한 시간에 달하는 퍼레이드 행렬이 끝난 길에는 미처 줍지 못한 사탕과 선물들이 쓰레기처럼 널려 있었고,

난 행렬의 끝이 보이자 자동차 시동을 걸어 슬금슬금 사람들 틈으로 차를 뽑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 행사를 위해 무더위를 무릅쓰고 줄 서서 대기하는 참가자들과 뒷정리를 위해 수고하는 많은 사람이 있어 해마다 멋진 축제가 이루어진다.

나도 내년에는 호텔 간판을 그려 달고 대열에 참석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할인 쿠폰을 만들어 나누어주면 호텔 경영에 약간의 도움이 되려나?

급하게 갔다 온다고 휴대폰을 안 들고 나가서 멋진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무척 컸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많은 퍼레이드를 본 것 같다.

티브이에서 국군의 날 퍼레이드도 여러 번 보았고 외국의 이국적 퍼레이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년 전 귀국했을 때는 고향에서도 중양절 맞이 원님 행차와 농악대를 만나 한참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했다.

마을 이름을 적은 깃발을 앞세운 농악대들이 각양의 모습으로 풍악을 울리며 지나는 모습들이 신이 나고 또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전통을 지키고 또 재연해가며 후손들에게 알리고 기리 보존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열린 퍼레이드에는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조화, 이주민들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기억하고 되살려내는 역사가 있었다.

현대적인 것들과 오래된 옛것들의 어우러짐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지역민이 하나가 되어 함께 고생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방문객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마을 축제 20주년을 맞는 올여름이 마을 주민 모두에게 날씨 변화 때문에 줄어든 낚시 인파와 상관없이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행복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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