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2
이동순
한 해가 갔다
연극의 한 토막이 끝났을 때처럼
막간엔 잠시 불이 들어오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부신 우리들은
한 치 앞을 못보는 청맹이 되어서도
보이지 않는 앞을 줄창 바라보면서
어디선가 제야의 종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위의 사물들이 은은히 밝아올 무렵
다시 불은 꺼지고
끝없는 암담한 우리들의 눈앞에서
새해의 막은 소리없이 올라갔다
아니 팡파르가 요란하게 들린 것도 같았다
무대 위에선 낯익은 배우들이
인간의 거짓사랑을 진실처럼 꾸미기 시작했고
그의 머리위에는 스치로폴을 부수어 만든
그해의 첫눈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배우들이 자리를 옮겨 다닐적마다
내려도 녹지 않는 화학제품의 그 눈들은
짜증스럽게 따라가서 펑펑 퍼부었다
그날 밤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며
눈조차 녹지 않는 시대의 봄이
그 언제쯤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지금쯤 도오랑을 대충 지우고
막 잠자리에 든 배우들의 중얼거리는 잠속에도
피곤한 눈은 내리고 있을까
시인 이동순 약력
경북대 동대학원 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1973), 문학평론(1989) 당선.
영남대 명예교수 시집으로 <개밥풀><물의 노래><좀비에 관한 연구> 등 18권 발간.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