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풍경들
정순옥
그립다. 추억 속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참으로 그립다. 그리운 풍경들은 아름다운 내 삶의 결을 만들어 준다. 그리운 풍경들은 나의 삶의 결을 반짝이는 윤슬 같이 아름답게 해준다. 정녕 잊을 수 없는 시절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순간을 더욱더 아름답게 살아 행복의 시절이 되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일생을 살면서 지나간 수많은 그리운 풍경들은 아름다운 결이 되어 사랑으로 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운 풍경은 사람들의 모습 자연의 모습 일상생활에서 보았던 수많은 모습이 있다. 기나긴 일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겪었던 일들은 모두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품고 있다. 여러 가지 지난 일 중에서도 추억 속의 그리움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것들이다. 세월 속에서 각종 인연으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귀한 사람들과 자연과 예술과 문화와 문명과 여러 가지 환경들이 내 삶의 결을 만들어 준다. 나는 때로는 비단결보다 더 곱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도 하고 때로는 흉흉한 파도보다도 더 거친 마음속에서 살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아름다운 창조의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은 대부분 부모님의 생활 속에서 산다. 나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작은 마을의 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셨다. 그러기에 동네 사람들은 거의 한 식구나 같이 살았다. 새해 첫날인 설날이 되면 우리 부모님은 색동옷 입은 우리 형제들의 세배를 받으시고 세뱃돈을 차례로 주셨다. 세뱃돈을 받은 우리는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어른들께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새해 인사가 끝나갈 즈음이면 누군가가 우리 집 창고에 있는 커다란 징이며 꽹과리 장구 북 등 각종 악기를 꺼낸다. 꽹과리 징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온 마을 사람들은 마당에 모여서 농악놀이가 시작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서로 손잡고 몸을 흔들며 둥실둥실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참으로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추억 속의 그리운 풍경이다.
학창시절은 부모님의 도움 아래서 산다. 나는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를 기치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 때나 1961년 5.16일 군사정변 시대를 보냈다. 역사의 격변 시대에도 낭만은 있어 미니스커트 장발족 통기타 등 젊음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다. 공부하기 지겨웠으나 앞날에 대한 비전이나 꿈을 꾸기도 하고 독서를 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얀 눈을 뭉쳐 눈싸움하던 친구들은 모두들 어디에 있을까.
청년 시절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산다. 자유를 맘껏 누리고 살아서 좋다.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직장동료들과 한참 유행이던 고고클럽에 갔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폭풍의 계절이 지나가듯 사랑의 계절도 지나가고 나면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시기다. 윤기나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친구와 함께 밀레 특별전 피카소 특별전을 찾아다니던 처녀 시절은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다.
중·장년 시절은 대부분 결혼 후의 삶이다. 나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을 떠나 미주이민 1세로 살고 있다. 자녀를 낳아서 키우고 교육시키면서 자녀의 웃음 속에서 부모들이 느끼는 보람과 행복을 누렸다. 아이들의 부풀어 가는 희망과 함께 내 가슴도 부풀어 갔다. 이민자가 대부분 겪는 고난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온갖 소리들이 한없이 그립다.
노년시절은 다시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때다. 그래서 노인 아기란 말이 생겼나 보다. 대부분 칠순에 이르면 노인이라 부르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차츰차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데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로서로 사랑으로 도와가며 사는 이웃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느낀다.
오랜 세월 살아오니 내 인생살이의 결이 켜켜이 쌓여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 밑바탕은 사랑이 연연히 이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추억들은 대부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증만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운 풍경의 배경엔 언제나 내가 살아가기에 좋은 사랑이 있었다. 어디에 있든지 그리운 사람들은 그리운 시절과 함께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터이니 말이다.
그리운 풍경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리운 풍경들은 내 삶의 결이 되어 내 일생을 연연히 이어가고 있다. 이 시간 그리운 풍경들이 추억 속에서 자꾸만 되살아나고 있다. 사랑스러운 소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