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사랑은 과로의 주범

조회 수 7025 추천 수 1 2015.06.04 14:47:04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매일 출근하자마자 나른한 몸과 머리를 깨우기 위해 커피로 빈 속을 채웁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적입니다. 커피 전문점들이 도시의 거리를 메우고 좁은 골목까지 빼곡히 채우고 있습니다. 성인 한 사람이 일 년에 마시는 커피의 양은 640잔이나 됩니다. 어마어마하죠?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 떼를 찾다가 '빨간 체리'를 열심히 먹는 염소를 발견한 게 기원입니다. 목동은 호기심에 열매 맛을 보고 새빨간 체리 속에 가득 찬 카페인에 기분이 좋아져 그 열매를 챙겨 수도원의 친구들에게 건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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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이슬람권의 수피교도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수피교도가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밤을 새워 명상하는 수행 중에 커피의 각성 효과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수피교도를 통해 이슬람권에 퍼져 나간 커피는 16세기에서 17세기 100년간 유럽 각국으로 전파됐습니다.

유럽에 카페가 처음 생긴 것은 1650년이었습니다. 중동 출신 유대인이 영국 옥스퍼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런던에 건너오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반세기도 못 돼 런던에만 2천 개가 넘는 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합니다.

카페는 한가로운 기운이 넘쳐나는 평화롭고 여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원기를 되살리고 명민하게 해준다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카페를 찾았고 그곳에서 사색을 즐겼습니다. 카페는 정치적 장소로 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무기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술집은 정치 토론을 하기에 안전한 장소가 못 됐습니다. 걸핏하면 목숨을 건 결투가 벌어지기 일쑤였죠. 하지만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는 달랐습니다. 뜨겁지만 이성적 토론이 가능했습니다. 카페에는 민주주의의 향기가 피어올랐던 것입니다.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의견 교환과 정보 교류가 이뤄집니다. 파리에서 카페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카페는 낱낱의 정보들을 하나로 모음으로써 언론의 역할도 합니다. 카페에서 이어진 자발적인 토론과 정보 공유는 시민의 힘을 기르고, 이 힘이 근대 사회를 여는 초석이 됩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커피 애호가로 유명합니다. 발자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나흘 글만 쓰기도 했습니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글을 썼는데 머리가 둔해지면 진한 커피를 연거푸 마시면서 집필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커피가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그렇게 검고, 그렇게 강하고, 그렇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자극성의 물질을 조합해주지는 못했다." 발자크의 말입니다. 발자크는 커피의 자극성에 기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창작 열을 불태웠습니다.

한때 창조성과 여유로움의 원천이었던 커피가 현대사회에선 각성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를 몰아내고 야근할 때 잠을 쫓는 각성제로 말이죠. 아침에 정신이 들려면 커피 한 잔은 필수입니다. 나른한 오후를 견디는 데도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되는 활력제이죠. 일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기 위해 커피를 오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커피의 각성 효과가 과로를 부추겨 건강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커피의 역사는 착취와 수탈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커피는 원래 에티오피아에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나무죠.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커피가 유행하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추운 유럽 기후에선 커피 나무 재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각국은 식민지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합니다. 네덜란드가 자바에서 커피를 생산하고 프랑스가 서인도 제도에 커피 나무를 심어 남미에서도 대규모 커피 재배가 이루어집니다. 커피 재배는 사람 손이 많이 가고 혹독한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힘든 노동으로 원주민 수가 줄자 일손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서인도 제도의 커피 농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흑인노예의 가혹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커피는 '니그로의 땀'이라 불렸을 정도입니다. 상황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적도를 따라 이어지는 '커피 벨트' 지역의 사람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단돈 몇 푼을 벌어보고자 고생하는 커피농장 노동자들의 피와 땀입니다. 노동의 대가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자는 취지의 '공정무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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