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벡년 해로를 위하여

조회 수 100 추천 수 0 2020.05.29 13:55:49

백년 해로를 위하여

 

 

따스한 햇살 아래 꽃향기가 날리면 청춘 남녀의 결혼 소식이 청첩장이 실려 여기저기서 날아든다. 

며칠전 브라질 선교사와 유월에 결혼한다는 조카딸의 청첩장을 받고 형편이 허락치않아 갈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동안 참석했던 수 많은 결혼식이 오후 내내 기억속에서 슬라이드 쇼를 펼쳤다. 

세월에 따라 결혼 풍속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은 크고 화려하게, 없는 사람들은 작고 소박하게, 

그리고 어떤이들은 그저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천지신명께 고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도 했었다. 

미국의 결혼식 모습도 많이 다르지는 않다. 

내가 잘 아는 한 녀석은 아무에게도 결혼 소식을 전하지않고 증인으로 친구 한명과 함께 

법원에 가서 선서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끝내버렸고 친하게 알고 지내던 어떤 의사 부부는 

하와이에서 하는 딸 결혼식에 양가 친척들을 미국 한국 그리고 딸의 시댁인 중국에서도 

모두 불러와 호텔에서 한 주 내내 성대하게 치렀다고 한다. 

 

 

삼십여 년 전, 내 결혼식은 미군 부대 안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시댁 식구들 하나도 없이 간소하게 치러졌다. 

실연으로 방황하던 이십대의 내 청춘은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함께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갈색눈의 미국인이 나의 신랑이었다. 

몇 달을 따라다니던 그 이에게 마음을 열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얼굴 한 번도 못 보고도 중매로 결혼해서 내내 잘 사시지 않더냐고. 

잉크 냄새 가득한 부대 교회 사무실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고 대기하다가 

한복을 차려입으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웨딩 마치를 할때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해로하지 못했기에 일부러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중하지 못했던 나의 성격이 성급하게 결혼을 했고 또 참지 못해 헤어졌으니 누구를 탓하랴... 

주례를 서 주셨던 미모의 여군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멀리서 와 주신 가족들과 함께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먹으며 피로연을 대신했다. 

일어를 잘 하시는 고모님이 영어밖에 못하는 신랑에게 자꾸 일어로 대화를 시도하셔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던 일은 기억에 남아 있다. 

 

 

십여년 전 한번은 모르는 미국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얻었다면서 토요일 저녁 다섯시에 꼭 와서 통역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한국인인 신랑 신부는 영어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날아 온 친정 어머니가 말이 안 통하니 

옆에 앉아서 결혼식 전체를 통역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신랑은 어려서 입양되어 온 잘 생긴 한국청년이었고 신부는 영어 통역사로 신랑이 지난해에 

한국지사에 근무할 때에 통역을 하면서 만났던 사이라고 한다. 

신부 어머니 말씀이 홀어머니 외딸이라며 애써서 영어공부 시켜놨더니 

애미를 버리고 멀리 가 버린다고 하시며 많이도 울었다. 

물론 함께 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 또한 부모를 버리고 멀리 미국으로 시집왔으니 그

분의 아픔이 내 어머니의 아픔이었구나 생각되어 가슴이 아려왔다. 

그 결혼식에서 기억에 남는것은 시아버지가 한국 참전용사로 두 다리를 다 못쓰고 

아들 딸 모두 입양으로 얻은 자녀라는 것과 그 부인의 모습이 너무나 인자하고 정말 천사같았다는 것이다. 

식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면서 통역비라고 신랑이 쥐어주는 봉투를 기어이 친정 어머니 손에 돌려주고 

식사 초대에도 시간이 여의치않아 그냥 돌아오면서 아름다운 부부가 내내 행복하기를 속으로 빌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결혼식에는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고 주례앞에서 신랑에게 신부를 인계하지만 

미국에서는 주례가 "누가 이 신부를 신랑에게 주느냐"고 꼭 묻는다. 

이때 신부 아버지는 "I DO[내가 줍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리고는 신랑이 와서 아버지와 악수를 하고 신부와 함께 주례앞에 서게 된다. 

요즘은 더러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하여 식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보았던 한 결혼식에선 

신부와 함께 걸어들어와 주례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한 사람이 다름아닌 다섯살 꼬마 신부의 아들이었다. 

어린 녀석이 그 말의 의미를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걸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가정은 절대로 아이때문에 다툼이 생기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식을 마치고 지하 식당에서 교회에서 준비한 닭날개와 작은 샌드위치등 간단한 핑거푸드와 다과

그리고 음료수로 조금은 아쉬운 피로연이었지만 어렵게 새로 가정을 꾸리는 이들에게 

절약은 필수라는 생각으로 허례허식을 버리고 간소하게 준비한 이들이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년 전, 오월에 대학을 졸업한 딸이 구월에 결혼한다며 다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뭐가 급해서 그리 빨리 결혼하려 하느냐고 물으니 약혼자가 여덟살 연상이라서 더 이상 기다릴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 부산 거리도 아니고 넓디 넓은 미국의 동서를 가로질러 같은 해에 두번 딸에게 날아갔다. 

시어머니가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는다면서 나에게 꼭 고운 한복을 입으라 강권하고 

결혼 비용을 아끼기위해 교회 마당에서 열리는 피로연에 쓸 식탁과 의자들, 

테이블보와 천으로 된 냎킨까지 직접 빌려왔다. 

피로연장에 텐트치고 꽃장식하는 것까지 일일이 관여하면서 

시간이 다 되어 옷 갈아 입으러 가기까지 딸은 본인이 오늘의 신부인지 웨딩플레너인지 구분을 못하게했다. 

교회당에 들어서자 식이 시작되기 전 두사람의 어릴적 사진들을 슬라이드를 통해 보여 주어 

하객들에게 보여져 큰 웃음을 선사하였고 필리핀 사돈과 내가 화촉을 밝히고 

딸과 사위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마쳤다. 

출장 부페로 차려진 음식을 먹고 신랑 신부의 왈츠를 시작으로 하객들이 춤을 추는데 

난 멋지게 차려입은 아들과 춤을 춘것이 제일 좋았다. 

짠순이 신부덕에 빌려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뒷 마무리를 하는 수고를 하면서도 

이 아이들이 잘 살거라는 확신이 있어 행복했다.

이십년 또는 삼십년을 남남으로 살다가 둘이 하나되어 살아 간다는것이 처음 생각처럼 쉬운것은 아니다. 

인생의 나머지 반, 아니 그 두 곱 세 곱을 둘이 하나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간혹 신혼 여행도 가기전에 문제가 생기는 부부도 있고 또는 살면서 후회가 밀물처럼 그들을 덮을때도 있을것이다. 

고리타분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옛 어른들처럼 좀 더 참고 조금 더 양보하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아무리 이혼율이 높고 주변의 유혹이 많다고 해도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만들수 있을 것이다. 

깨어져 버린듯한 부부도 자식 때문이든 또는 다른 어떤 이유이든 

그대로 살다보면 미운정이 들어서인지 허허 웃으며 사는 사람들도 본다. 

결혼을 앞 둔 청춘 남녀에게 꼭 이 말을 해 주고싶다. 

시작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고, 한번 결심하면 죽기까지 함께 헤쳐나가기를 각오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누가 물었을때에도 다시 이사람과 살고싶다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이제 곧 결혼 할 조카도, 결혼한 지 삼 년 된 딸도, 그리고 모든 젊은 부부들도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오래 오래 해로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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