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겨울밤
정순옥
2020년의 겨울밤은 불청객 코로나 바이러스가 광란의 춤을 추고 있다. 고요하고 거룩한 겨울밤. 흰 눈이 사뿐히 대지로 내려앉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하는 겨울밤. 세상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있는 겨울밤인데, 2020년의 겨울밤은 코로나가 온 지구촌을 점령하고 있어 사람들은 입에 마스크를 쓰고서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0년 겨울밤의 거리는 너무도 황량하다. 어두운 길 위로 몇 사람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추운 날씨임을 말해 주듯이 입고 있는 재킷 깃을 세우고 있다. 해마다 깜빡이는 전등불과 크리스마스 캐럴로 사람들의 마음을 유인해 가던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설령 문을 열었다 하더라도 고객이 없어 횅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다행히 식량과 생활품이 있는 가게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옆 사람과의 대화가 없이 그저 살기 위해서 생필품을 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쌀과 휴지를 놓고 파는 곳은 현재 물건이 없다는 안내문만 있어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때가 잦다. 시장 길가에서 군밤이나 땅콩을 사고 군 오징어를 사서 섞어 먹으며 연인들과 팔짱을 끼고 다니던 낭만의 겨울밤 거리는 이제 옛 추억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싶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접촉을 꺼리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다음 세대의 청춘 남녀들은 어떻게 사랑을 키워 갈 수 있을지 사뭇 걱정된다.
2020년의 겨울밤은 방콕/Staycation 생활하라는 방역당국의 지시다. ‘방콕’은 코로나19으로 인해 새로 생긴 ‘방에서 콕 박혀 있다’라는 뜻의 신조어다.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 객지에서 사는 사랑하는 아들딸 손주들도 품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가족들과 모여 윷놀이, 화투치기 등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목이 터지라 웃어대던 겨울밤이 불안과 염려의 겨울밤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져서 비대면 영상으로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지만 스마트 폰이나 줌 등 화상으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겐 서로의 소식이 무척 궁금하고 서로가 그리울 뿐이다.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밤의 병실은 너무도 적막하다. 통상적으로는 초저녁의 병실은 가족들의 만남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볼 수 있어 사람 사는 세상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단 한 명의 보호자들도 병문안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허허롭기만 하다. 낮에는 커다란 거울을 작은 출입문 사이에 두고 병원의 환자와 병원 밖의 보호자가 멀리 얼굴을 보면서 워키토크나 핸드폰으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가끔 유리창 너머로 손짓 발짓하면서 비대면 면회를 하니 별난 세상에 사는 느낌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없는 괴로움으로 어떤 환자들은 정신적인 불안이 심해져 징징 울면서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며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거리두기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껴안고 정을 나누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어 나타나는 코로나 우울증 현상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한다.
2020년의 겨울밤. 내가 사는 포인트 공원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정각에 깜빡등이 깜빡인다. 그런데 주위에는 아름다운 겨울밤을 즐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팔짱 끼고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남녀노소도 없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하늘의 별과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장식된 별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없다. 모두 어디서 팬데믹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고 있는 것일까. 잠잠히 방콕/ 스태잉 홈 생활을 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칠 인간의 지혜를 짜내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기다란 벤치가 너무도 적막하고 쓸쓸하게 보인다.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외로이 흔들며 놀고 있다.
2020년의 겨울밤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사랑의 향기를 품게 한다. 고달프게 살아온 인생길에서 휴면기를 준 분위기다. 새해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할 때 쓰기 위해 세포마다 에너지를 비축하는 기분이다. 나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 해를 핥고 지나가면 반듯이 새해에는 새싹이 트인 생명의 환희로 근사해질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은 한 해쯤 살풀이춤보다 더한 광란의 코로나-19 춤사위를 구경해 줄 아량이 있지 않은가. 서로 만나고 웃고 걷고…토론하는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미친 듯이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해(害)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광란의 춤사위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지구촌 사람들은 독수리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지혜 속에서 만들어진 백신과 치료약으로 악질 코로나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모두 서로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2020년 겨울밤이 다 지나고 나면 2021년 새 아침을 알리는 밝은 해가 반듯이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광란의 춤을 추던 악질 코로나 바이러스-19는, 방역대책을 나부터 지키는 높은 시민의식, 백신과 치료약에 못 이겨 인간을 떠나 지구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그리곤 올해는 생전 처음으로 광란의 코로나-19 춤사위를 구경한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팬데믹 코로나를 힘들게 이겨낸 한 해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은 불청객이 없이 자유를 흠뻑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아픔과 눈물을 준 팬데믹 코로나-19를 품은 2020년 겨울밤이여! 안녕, 영원히 안녕~
올해는 특별히 송구영신을 제대로 해야할 듯 하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정작가님
편안한 송년 되시고 멋진 신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