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사진

조회 수 160 추천 수 1 2021.01.29 16:17:55

 IMG_0094 es.jpg

 

                                                  복숭아 사진

 

                                                                                   강 정 실

 

 

  부엌전기 버너에 올려놓은 복숭아 사진 한 장이 5년 전 초여름날로 길라잡이한다

  새 직장으로 옮기는 아들과 함께 짐 실은 아들의 자동차로 LA에서 애틀랜타로 향해 달려간 3일간의 고난이 불현듯 떠오른다

  10번 프리웨이로 애리조나 투산과 윌콕스를 지나는데 운전석 뒷바퀴에서 투투투 소리가 나면서 타이어가 찢어진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삼각잭을 이용해 예비타이어로 교환하는데, 벚꽃같이 생긴 특수 보드가 빠지지 않고 도리어 나의 발길에 망가진다 보험사의 트럭을 통해 가까운 샌 사이먼의 타이어 가게 도착했으나 문은 닫혀 있고, 주변은 한가한 시골 마을이다 타이어 가게 옆 자택에는 서너 마리의 거위와 강아지가 우릴 보며 도둑으로 보이는지 고함을 질러댄다 간판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대로 연락하니 자식의 결혼식 피로연이 있어 밤 9시에나 도착한다나,

  밤늦게 도착한 주인은 출발지와 도착지를 묻는다 한 건 대박한 것으로 오인하는지 비굴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엄청난 요금을 요구한다 "머 저런 기 다 있노!" 타이어 한 짝 교체를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씌운다니, 단호히 거부하고 차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룻밤을 패트병의 물로 배고픔을 이기며 차 속에서 뜬눈으로 지새운다

  다음 날 아침 다른 보험사 트럭을 통해 로즈버그 타이어 가게 앞으로 옮긴다 이른 시간이라 직원을 기다리며 타이어 가게 건너편 봉숭아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잘 익은 복숭아 두 개를 따서 수돗물에 보송보송 붙어 있는 하얀 털을 씻어내고 아들과 마주 보며 한입 문다 입속에 풍성하게 흐르는 봉숭아 과즙이 어제의 괴롬은 사르르 녹아든다

  세상살이의 온갖 풍상은 온몸으로 견디며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증오와 고통의 아픔은 짧다 그리곤 아픔은 긴 추억으로 넘기며 내일이라는 희망의 기지개를 켜고 살아간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새로 입주한 부엌전기 버너에 얻어온 복숭아를 올려놓고 고충의 기억을 촬영한 후 봉숭아는 그대로 두고, 애틀랜타 공항서 LA로 향하는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높이 오른다


박은경

2021.01.30 05:59:19
*.155.194.43

오년전 추억을 사진에서 찾으셨군요

에효,,,어려운 일 당한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우리를 슬프게해요

봉숭아 사진을 보며 제 입에도 침이 고이는걸 느낍니다 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sort
공지 미국 질병예방 통제국(CDC) 강조하는 코로나91 증상과 주의 사항 file 웹담당관리자 2020-03-15 7614 3
공지 문예진흥원에서의 <한미문단> 지원금과 강정실에 대한 의혹 file [6] 강정실 2017-12-15 29743 12
공지 2017년 <한미문단> 행사를 끝내고 나서 file [5] 강정실 2017-12-14 27307 7
공지 미주 한국문인협회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file [9] 홍마가 2016-07-08 47349 12
공지 자유게시판 이용안내 웹관리자 2014-09-27 44008 5
1336 미국의 10대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 세도나 [1] 석송 2015-05-15 8580 1
1335 신정아, 조영남 전시회로 큐레이터 복귀 file 웹관리자 2015-05-19 9084 1
1334 드가 걸작 ‘러시안 댄서들’ LA 나들이 file 웹관리자 2015-06-02 7280 1
1333 한국 내 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 공포 file [1] 웹관리자 2015-06-02 4937 1
1332 쇼팽의 마주르카는 꽃 속에 묻힌 대포와도 같다" file 김평화 2015-06-03 9041 1
1331 “오래 앉아 있는 게 흡연보다 위험 김평화 2015-06-03 4846 1
1330 커피 사랑은 과로의 주범 file 석송 2015-06-04 6959 1
1329 소금처럼 설탕도 이젠 NO 식탁위 또 다른 '백색 전쟁' file 웹관리자 2016-04-04 6021 1
1328 술 때문에… 매일 6명 숨진다 file 제봉주 2015-06-05 12438 1
1327 어린이날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5-01 199 1
1326 ‘황금알’ 낳는 ‘웹소설’ 문학계 ‘지각변동’ file 강정실 2015-06-07 9623 1
1325 파랑새 file 석송 2015-06-08 4142 1
1324 조선시대의 만조천, 용산기지에 흐르고 있다 file 석송 2015-06-08 6648 1
1323 광주서 천오백년전 대규모 마을유적 file 웹관리자 2015-06-09 4779 1
1322 창의문 옛길 제 모습 찾는다 file 석송 2015-06-11 3982 1
1321 크눌프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 번역서 표절 논란 file 웹관리자 2015-06-11 6772 1
1320 길거리 공짜, 휴대신청 전화 조심 석송 2015-06-13 4154 1
1319 조지아 홍수로 동물원 맹수 탈출 비상 file 석송 2015-06-14 4759 1
1318 비행기 객실 창의 아랫부분에 있는 구멍, 왜? file 강정실 2015-06-15 5101 1
1317 우울할 땐 '즐거운 기억' 떠올려라 file 이숙이 2015-06-18 446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