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낙엽과 삼식이

조회 수 378 추천 수 2 2021.12.19 11: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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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 젖은 낙엽과 삼식이

 

                                                                                                 정순옥

 

  요즈음 정년퇴직하는 남자들을 슬프게 하는 은어隱語가 일본에서는 비에 젖은 낙엽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삼식이라 부른다. 비에 젖은 낙엽이란, 비에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이 부인 곁에 꼭 붙어 있는 처량한 남편 신세를 말한다. 삼식이란,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때로는 남편 뒷바라지에 지쳐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주부 중의 한 사람인데도 듣기에 거북스러운 것은 웬일일까. 내 소원이 있다면 정년퇴직한 남편이, 비에 젖은 낙엽과 삼식이라도 내 곁에 평생토록 살아 있는 것이다.

  정년퇴직한 남편인, 젖은 나뭇잎과 삼식이는 쌀쌀한 가을에 은퇴하여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겨울을 맞이할 시기에 있다. 새 희망이 넘치는 봄날 같은 젊은 시절엔 가정에 파릿한 새싹을 내기 위해 꿈이 부풀 때가 있었다. 혈기 왕성한 여름 같은 시절엔 녹음을 만들어 가족들을 편안하게 쉬게 한 때도 있었다. 인생의 사계절 중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여 은퇴하는 남편이 평생을 살아온 아내에게 푸대접을 받는 일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닌가. 은퇴하기까지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얼마나 많은 인내를 했으며 얼마나 가슴을 조아리며 울분을 참았고  비굴한 감정에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려던 심정을 억제했던가. 또한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직장생활에서 퇴직하는 마음도 쓸쓸한데 더하여 부인으로부터 비하하는 말까지 들으면 인생의 겨울처럼 마음이 추울 것이리라 싶다.

늦가을과 겨울이 접목된 2021124일은 문학행사가 미국 일리노이주, 바람과 건축의 도시로 불리는 시카고(Chicago)에서 있던 날이다. 한미문단과 시카고문학 공동 출판 기념회다. 근래에 비에 젖은 낙엽과 삼식이가 된 남편을 부축하면서 나는 여행을 했다. 은퇴한 남편이 두 번이나 넘어져 같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나의 도움이 없이는 활동할 수 없는 처지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은 상태여서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걸을 수 있는 상태다. 남편은 여행을 못할 것 같다고 하더니, 나를 위해서 아픈 다리로 여행길을 결심한 셈이다. 새벽 일찍이 내가 사는 곳에서 산호세까지 에어버스를 타고 비행장 곁에 도착하니 햇살이 떠올랐다. 금관 사슬 같은 노오란 은행잎들과 빠알갛게 물든 단풍잎들이 은빛 이슬에 반짝이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언제나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연이야~ ”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빗자루에 붙은 비에 젖은 낙엽과 삼식이가 된 남편은 문학여행을 위해 한 손에 지팡이를 쥐여 잡았다. 한 손은 나를 잡고서 근육이 상해 빨갛게 퉁퉁 붓고 아픈 오른쪽 다리를 겨우 구두에 집어넣고 걸었다. 늦가을을 맞이한 듯한 남편의 오른발을 바라보는 나는 낙엽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 안타까웠다. 다행히 내가 사는 미국은 장애인 시설이 잘 되어 있고 휠체어 서비스를 받기가 쉬워 공항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은 팁 제도가 양성화되어 있기에 서비스걸에게 팁을 넉넉히 주니 얼굴이 환해지며 한마디 한다. “요즈음은 신종 코로나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경제 위기라 여행객이 줄어 근무시간이 짤리니 수입이 적어 배고플 때가 있는데 점심값이 매우 고맙다.” 사랑으로 서로서로 위로하고 돕지 않으면 살기가 어려운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시대임을 실감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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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이병호 시인과 함께

 

시카고공항에 도착하니, 시카고 문인회 박창호 회장이며, 김영숙 시인과 신호철 시인 등 문인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엘에이에서 출발한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강정실 회장, 오애숙 시인, 하와이에서 날라 온 정덕수 수필가와 재회하니 시카고공항이 환호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행삿날 아침에 도착한 유경순 시인, 이 모든 것이 함박눈은 볼 수 없었어도 이른 성탄절 트리엔 깜박이등이 반짝반짝 정답게 속삭이며 생전 처음 시카고를 찾은 나를 반기는 듯했다. 시카고 중심거리를 차 안에서 바라보면서, 시카고 고층 건축물들이 아름다운 빌딩 숲을 이루고 있음에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문학행사는 신종 코로나 아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시대에 맞춰 멋지게 진행되었다. 의학적으로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얻은 다양한 간호법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발을 딛고 일어서서, 남편 이병호 시인이 영상을 보며 자작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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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낭송

 

문학여행에서 가이드 박 부장의 설명으로 본 모든 곳은 참으로 귀하고 나를 경이롭게 했다. 내가 그리도 보고 싶었던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명물인 콩같이 생긴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서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 있는 남편과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카고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수련 등 환상적인 예술품들이 내 발을 묶어 놓을 듯했다. ‘노인과 바다를 쓴 유명한 고전 소설가 헤밍웨이 생가나 일리노이주 청사 내부는 시카고가 건축의 도시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고전소설 <톰 소야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Mark Twain), 미서부가 개척되면서 동부에서 서부로 접하는 관문인 게이트웨이, 링컨 대통령의 묘지, 특히나 링컨 대통령의 조각상에서 코를 만지면 행운(위사진 대통령 흉상 사진)이 온다 하여 나도 힘껏 뛰어서 반들거리는 행운의 코를 만질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우리 남편의 다리 세포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행운을 빌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언어의 뜻도 인간의 가치도 다양해져 가고 있다.

요즈음 흔히 듣는 비에 젖은 낙엽이나 삼식이는 은퇴해서 집에서만 지내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주부들의 투정이다. 지금 우리 남편은 비에 젖은 낙엽이요 삼식이 같은 처지에 있다. 그래도 내 소원은 평생토록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거동이 불편해도 남편이 있었기에 행복한 문학여행을 할 수 있었던 나는 우리 남편을 삼식이나 비에 젖은 낙엽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융화가 잘되어 은은한 맛을 낼 수 있도록 감초에 천년초를 넣어 끓이는 건강수가 보글보글 끓어 오르면서 내는 수증기 속에 남편과 함께할 행복한 날들의 꿈도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

 


이금자

2021.12.19 12:53:12
*.147.165.102

정순옥 선생님 오랫만에 글 읽었습니다.  글 중에 ' 삼식이" 그런 말은 한국에서 나온 말 같아요.

평생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했는데.  그런 말 들은 남편들은 얼마나

속상할까요?  평생 직장생활 한 남편과 오손도손 잘 사는게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좋은 글 이곳에서 읽길 바라면서 나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배원주

2021.12.19 15:28:44
*.48.184.98

링컨 대통령 흉상과 잘 어울립니다

박은경

2021.12.21 09:40:04
*.90.141.135

맞아요 삼식이어도 좋고 비에 젖은 낙엽이어도 오래오래 함꼐하는게 좋다는 걸

모르는 주부들은 나중에 가슴을 치고 후회하지요

아픈 몸을 이끌고 함꼐 여행하시니 참 보기좋네요

우리도 그랬어야 하는데 모임 하루전에 하필 수술 날자가 잡혀서

아쉽게도 이번 기회를 놓쳐 버렸네요 ㅠㅠ

내내 건강 건필하시고 오래오래 해로하시길 빕니다~~~~~

정순옥

2021.12.21 17:27:03
*.208.238.159

이금자 선생님, 배원주 선생님, 박은경 선생님 부족한 제 글에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쓰도록 더욱더 노력 하겠어요. 다음 문학회 때는 우리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강정실 회장님이 좋은 기회 만들어 주시도록 서로 기도해요.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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