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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본’이라는 훈민정음 해례본(세종 28년·1446)이 나타났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도, 어쨌든 1000억·1조원을 호가하는 경북 상주의 훈민정음 해례본도 아니다.

고서화 수집가 편영우(75)씨가 1986년 7월 일본 오사카 재판소(법원) 뒷골목의 골동품 상가에서 구입, 보관해 온 것이다. 간송본, 상주본과 달리 1쪽도 낙장이 없는 완전한 훈민정음이다.

“간송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되며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남몰래 소장하고 있었는데, 상주본이 일으킨 작금의 사태를 보다 못해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는 편씨는 이 훈민정음을 편의상 ‘왕실본’이라고 부른다. “29년 전 일본에서 훈민정음과 함께 다른 고서, 유물을 한꺼번에 여럿 구했다. 예외없이 문화재 수준이다. 개중에는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급 물건들도 있다. 추측컨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왕실에서 통째로 유출된 듯하다”는 이유에서다.

“왕실본의 종이는 명나라 수입품이고, 목판에 찍어낼 때 사용한 먹물 역시 최고급 당먹(唐墨)”이라는 방증도 제시했다. 특히 “훈민정음, 기타 조선의 고서들 속에 섞여 있던 규장각 직인인 거북형 규장지보도 같이 샀다. 규장각은 조선왕실의 도서관이다. 이 훈민정음이 왕실본이라는 확실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편씨의 왕실본은 기존의 간송·상주본과 일부 다르다. 글자의 획이나 삐침 등이 간송·상주본보다 덜 거칠다. 미려하고 세련된 편이다.

‘용자례(用字例)’에서는 한 곳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조선어학회가 간송본을 베껴 1946년에 펴낸 훈민정음과 비교하면 ‘ㅁ’자가 다르다. 간송본에는 ㅁ아래에 。이 있지만, 왕실본에는 ㅁ만 있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52) 소장은 “용자례, 즉 훈민정음 해례본 24쪽 뒷면~25쪽 앞면은 초성 ㄱ, ㆁ, ㄷ, ㅌ, ㄴ, ㅂ, ㅁ, ㅸ, ㅈ, ㅊ, ㅅ, ㅎ, ㅇ, ㄹ, ㅿ을 쓰는 예를 설명한 부분이다. 간송본에서는 모두 위 글자들 밑에 중간쉼표 권점(圈點; 。)을 찍었는데, 유독 ㅁ자 하나만 빠져 있다. 아마도 현대인이 원본을 보고 쓰는 과정에서 실수한 탈자로 보인다”고 짚었다.

박 소장은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각 문장의 중간이나 끝부분에 둥근 권점의 구두점이 쓰였다. 구두점은 구점(句點)과 두점(讀點)으로 나뉜다. 구점은 마침표, 두점은 쉼표다. 해례본에서는 마침표 권점은 문장 끝글자 오른쪽 아래부분에 썼고, 쉼표 권점은 글자와 글자 가운데 부분에 썼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간송본은 1940년대 발견 당시 ‘國之語音異乎中國’(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으로 시작되는 세종대왕의 서문 두 장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조선어학회가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마침표 권점과 쉼표 권점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오른쪽 아래에 찍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권점이 구별되지 않고 조선어학회본과 똑같으니, 잘못 고증된 후대의 조선어학회본을 보고 쓴 것이며, 1차 오류에 이은 2차 오류라는 주장이다.

왕실본의 자형과 서체 등 글자체도 문제 삼았다. “최초 훈민정음의 서체는 마치 막대기처럼 반듯반듯한 고딕체다. 이와 달리 ‘왕실본’의 ㅂ자를 보면 수직선의 시작 부분이 약간 구부러진 해서체다. ‘러울’의 ‘ㅜ’ 수평선 부분도 ”고딕체가 아닌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위작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동일본인 간송·상주본이 아닌 또 다른 판본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박 소장의 감정은 “진본으로 판정된 간송본”을 근거 삼은 것이기 때문이다.

왕실본을 찾아낸 편씨는 서울시립남산도서관 사서과장 출신이다. 선지식(善知識) 유묵관(遺墨館)을 세우려고 지난 45년 간 국내는 당연하고 일본, 중국, 대만, 프랑스, 영국 등지의 도서관과 고서점을 뒤지고 다녔다. 대만 푸런(輔仁)대학과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국제정치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옌볜대 객좌교수를 지냈다. 런민르바오(人民日報)와 신화사 계열 한국지사에서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다.

편영우씨는 “나는 사서다. 서책 감별이 일이다. 고서화에도 전문적 식견을 갖췄다. 이제 문화재청 등 중앙행정기관이 나서서 왕실본이 진본임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훈민정음 간송본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상주본  조선어학회 사건  규장지보(奎章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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