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의 이국적 풍물·인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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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의 이국적 풍물·인물화

 
 
서울시립미술관 쪽 “딸이 유골함 들고 다녀가”
사망설이 꾸준히 나오던 천경자 화백이 최소 수개월 전 사망했으며 천 화백의 딸 이혜선 씨가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씨가 “어머니가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다‘며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씨는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 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천경자 화백 연보>

    △ 1924년 전남 고흥에서 아버지 천성욱씨와 어머니 박운아씨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남. 본명은 옥자.

 △ 1931년 고흥보통학교에 입학.

 △ 1937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전남여고) 입학해 미술교사에게 그림을 배움.

 △ 1941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뿌리치고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
           이때부터 경자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함.

 △ 1942년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 1944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귀국해 동경제국대학 유학생과 결혼.

 △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며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염.

 △ 1951년 폐결핵으로 투병하던 여동생 옥희가 사망함. 최초의 뱀 그림 ‘생태’를 그림.

 △ 1954년 홍익대 미술대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돼 상경.

 △ 1955년 작품 ‘정’을 대한미협전에 출품해 대통령상 수상. 첫 수필집 ‘여인소묘’ 출간하고 이후 다수의 수필집과 단행본을 출간함.

 △ 1959년 부산 소레유 다방에서 ‘전설’을 비롯해 30점을 출품해 회화전 개최.

 △ 1960년 한국일보에 연재소설 ‘사랑의 계절’ 삽화를 그림.

 △ 1961년 국전 추천 작가가 됨.

 △ 1964년 오월문예상 본상 수상.

 △ 1969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프랑스 유학 기념 기념전 개최. 8월부터 8개월간 미국, 유럽, 남태평양 일대를 여행.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고에쓰의 아카데미에서 유화를 배워 사실적 데생과 묘사력을 익힘.

 △ 1970년 신문회관에서 남태평양 풍물 시리즈 스케치전을 열어 첫번째 해외여행에서 얻은 결과물을 전시.

 △ 1971년 서울시 문화상(예술부문) 수상. 신촌에 ‘천경자 미술연구소’를 세움.

 △ 1972년 6월 문공부가 주관하는 월남종군 화가에 선정됨.

 △ 1973년 현대화랑에서 초대 개인전.

 △ 1974년 3월에 두번째 해외 스케치 여행을 떠남. 홍익대 교수직 사임하고 그림에 전념.

 △ 1975년 ‘꽃무리’로 3.1 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 1976년 1월부터 문학사상에 자서전 연재. 아프리카 여행을 바탕으로 자서전적인 대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1년간 그려
         완성.

 △ 1977년 ‘계간미술’(3권 여름호) 특집 ‘평론가들이 뽑은 동양화 10대 화가’에선정.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에 출품해
         호평받음.

 △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 됨.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출간.

 △ 197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5개월간 인도,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아마존 유역과 중남미 지역을 돌아보는
        세 번째 해외여행.

 △ 1980년 3월 현대화랑에서 ‘인도, 중남미 풍물전’ 개최. 이후 1995년까지 개인전을 열지 않음.

 △ 198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이후 여행과 신문 연재.

 △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이 일어나 이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하면서 시련을겪음.

 △ 1995년 1980년 현대화랑에서 전시회를 한지 15년만에 그의 작품을 총결산하는 대규모 개인전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

 △ 1998년 9월 미국 뉴욕으로 이주. 11월 일시 귀국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채색화와 스케치 93점 기증.

 △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축 개관 기념전으로 ‘천경자의 혼’을 열었음. 서울시립미술관에 상설 전시실 ‘천경자실’ 개관.

 △ 2003년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짐.

 △ 2006년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그림에세이 ‘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 발간. 갤러리현대에서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전시회 개최.

 △ 2007년 고흥군, 종합문화회관 내에 150여㎡ 규모의 천경자전시실 마련.

 △ 2010년 천 화백 가족과 연락이 닿은 부산 미광화랑에서 개인전 열림.

 △ 2012년 전남 고흥군, 천 화백 가족 요청에 따라 기증받은 작품 60여점 반납하기로 결정. 가족은 2010년 고흥군이 관리소홀로
         작품을 훼손하고 있다며 반환을 요청한 상태였음.

 △ 2013년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딸 이혜선씨가 요구함.

 △ 2014년 대한민국예술원, 천 화백 근황 확인 안 된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 잠정 중단. 천 화백 가족은 이에 반발해 탈퇴서 제출.

 △ 2014년 8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 전시 중인 천경자 작품 10여년만에 전면 교체.

 △ 2015년 10월22일 딸 이혜선씨가 유골함을 들고 수개월 전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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