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경 수필가

조회 수 8531 추천 수 1 2016.03.01 16:03:21
                                                    값진 인생과 문학의 향연

  - 유태경 수필집 교향악단 지휘자≫에  붙여

 

 

 

                                                                                                         강   정  실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장

     

1. 들어가며

   문학 중 수필은 인생을 위한 축복이요 행운이다. 그만큼 수필은 진솔한 장르이기에 그렇다. 재미수필가 유태경과는 문학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으나,

수필을 통해 이내 친구처럼 친숙해졌다. 수필 등단에서부터 첫 옥동자로 펴내는 수필집 교향악단 지휘자에 대한 서평까지 적는 이 자리가

보람되게 여겨진다.

   유태경 수필가는 먼저 첫인상부터 밝게 와 닿는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4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시골에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쌀 2말을 유산으로 받아 서울로 올라간다.

   막상 서울에 올라왔으나 갈 곳도 없던 그는 신문팔이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차 즉석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남대문시장의

신축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꼿꼿한 성품과 꿈을 잃지 않고 억척스럽게 버틴다. 그리고는 남보다 3년이나 늦은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어렵사리 졸업을 하자, 자신감을 얻은 그는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졸업할 때까지 여러 곳의 식당 골방을

전전하고 하숙생활 중에도 학비를 벌기 위해 머슴처럼 일하면서도, 미래를 다짐하며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어지는 길은 군대였다. 육군으로 있으면서 얻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여러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군 생활이 정말 편했다고 했다. 무엇이 그리 편했느냐고 했더니, 먹여주고 입혀주고 운동도 시켜주고는 월급까지

주는데 무엇이 어려웠겠느냐는 말 속에는 아픔이 배어 있다. 그만큼 어린 나이의 타향생활은 엄청 어렵고 고달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2. 새로운 삶을 위한 시도

   3년의 군 생활 이후, 의약 출판사(범문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고향 친구로 알고 지내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 아들 하나를

낳고 생활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딱지 때문에 회사에서의 승진은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오는 회사직원을

만나면서 또 다른 꿈을 갖게 된다. 여행사와 여러 지인을 통해 미국에 가는 방법을 연구해도 길이 없자, 가족을 남겨둔 채 남미의

여러 나라를 통해 미국 입국을 수차례 시도한다. 그조차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자 늦둥이 학생신분으로 과감히 영국을 선택한다.

그곳에서 다시 기회를 보다 LA올림픽을 관람하겠다는 목적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입국 담당직원의 의심스러운 눈을 피하지

못해 별도의 독방에 갔지만, 세관원에게 손짓발짓을 다 동원하며 애원하여 그토록 소원하던 LA공항을 결국에는 통과한 억척 중의

억척이다.

  미국에 안착한 유태경 수필가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하루살이, 그야말로 미래를 살피기 위한 하루살이를 시작한다.

어릴 때 고달팠던 생활은 그래도 같은 한국인으로 한국말과 글을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언어부터 모든 것이 녹록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학생 신분을 잘 유지했다. 문제는 미국에서 학생이 되면, 한국에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다. 한국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부모형제가 있기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다른 한국인들은 캐나다나 멕시코에 나갔다가

학생 신분을 유지하려고 시도하다 80% 정도는 실패하고 한국으로 쫓겨간다. 이를 눈여겨본 그는 더 먼 나라, 삼촌이 사는 브라질에

들렀다가 미국영사관에서 한국을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당당한 스탬프를 받아 무난히 미국에 재입국을 하게 된다.

   입출국이 자유로워진 그는 다시 영주권을 목표로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그는 한국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남들은 다 포기하는 다른 주에 있는 미국농장으로 간다. 그곳 도살장에서 3년 간 날마다 무수히 많은 닭의 모가지를 따고, 땡볕에서

밭뙈기 일을 하며 영주권을 받게 된다.

   이렇게 일인다역을 감당해 내면서 가족을 데리고 온 이후, 몇 번이나 강도의 총을 맞아 죽을 뻔하면서도 조금씩 경제적으로 성장해 간다. 단골손님을 위해 가게의 운영을 단 하루라도 쉴 수가 없어 어머니의 장례에도 참석 못하는 불효를 하고 말았다. 그만큼 고생한 대가로 가게도 늘리고 집도 장만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성탄절이나 노동절에는 자신의 가게 앞에서 몇 백 명의 노숙자를 위한 불고기 파티를 하는 등 베풂도 있지 않았다.

   13년 전, 늦은 봄날이다. 평소처럼 가게에서 일하던 중 가슴에 심한 통증이 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진열대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쓰러졌다. 그리고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중환자 회복실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는데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붙어 있고, 팔에는 주삿바늘, 가슴과 여러 곳에는 심장박동을 점검하기 위해 긴 줄이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 한순간에 기계 인간으로 변한 자신을 본 것이다. 이렇게 병실에 누워 있던 유태경 수필가는 인생과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온 것을 생각하니 후회가 되었다. 퇴원하면 자신을 위한 생활도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의 이런 품성이나 생활 모습이 여러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퇴원하자마자, 일하던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큰 사업체를 두 개나 열어 주고, 결혼까지 시켰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큰 아픔을

겪는다. 이후 유태경 수필가는 그동안 배우고 싶던 피리, 태평소, 해금, 장구, 경기민요까지 두루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는 수필에

대한 열정으로 몇 번이나 수필 강의를 들었으나 중도에 손을 들고 만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다시 도전한 결과 올봄,

그토록 원했던 한국의 유명 수필지에 정식 당선 절차를 마쳐 당당한 문인으로 궤도에 오르게 된다. 미국에 도착한 후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고서 꿈을 이룬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더욱이 외국에서 고생하면서도 한사코 모국어로 글을 쓰며 자아를 지키며 사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 이후, 또 다른 중풍과 맹장까지 찾아왔지만, 굴하지 않고 인생의 소중한 60 중반을 넘기며 마침내 첫 수필집을 펴내는 터라 더욱

뜻깊다. 이 일은 이민생활 30년이 넘은 자신만의 감회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40여 년과 미국에서 쌓아온 30여 년의

세월은 통과의례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수필집은 유태경 인생의 중간평가서이며 진솔한 고백서이기도 하다. 또한, 이 수필집은 고마운 이웃과 오늘까지 은혜를 베풀어준 하늘에 계신 부모님과 고향 및 조국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이고,

자기반성과 소박한 미래의 소망을 담은 기록적 수필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교향악단 지휘자의 원고를 한 편씩 읽으면서 몽테뉴가 은퇴 후 써낸 그의 수상록에 자신이 살아온 사사로운 일

하나하나까지 고백한 내용이 생각났다. 유태경 수필가도 자신의 약점을 숨기거나 곱게 분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발리스의 말 그대로 인간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먼저 <작가의 말>에서 보릿고개 넘나드는 부모를 졸라 쌀 두 말을 유산 삼아 받아 걸머지고 16세에 고향을 떠나 서울 시내를

방황하다 미국에 정착한 지도 30여 년이 되어간다.”라고 했다. 이는 독자에게 자신의 삶이 진실한 증거를 말하고 작가 자신에게는 물상과 소통을 위한 몸부림을 말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글쓰기에 집중할 겨를이 없는 삶이라 그랬는지,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는 듯하다. 처음 사진기를 잡으면

모든 사물을 자동에 맞추고 찍는다. 그리하여 더 신선한 감동을 독자에게 주는 면도 있지만, 대신 문장은 호흡이 거칠고 밀도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 어찌하랴! 이것도 인생살이의 한 단면인 것을.

  58편의 수필은 <만우절>, <참새 한 마리>, <교향악단 지휘자>, <술버릇>, 그리고 <이민자의 삶>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5부로

나뉘어 있다.

 

  1부의 <만우절>은 만우절에 생긴 일화가 힘든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 재미있는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에게는 같은 부서의 직장동료 갑돌이라는 고향 친구가 있다. 어느 만우절, 퇴근 후 술좌석에서 또 다른 고향 친구 형만이를 만나게 된다. 친구의

아들 자랑에 갑돌이는 아들이 없는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오인하고, 형만이는 전부 자신의 자식이라고 폭탄선포를 한다. 그때부터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씩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친구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부부싸움 탓에 이혼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경험담을 쓸어 담는다. 그러다가 화해라는 명제에는 현대문명의 이기인 유전자 검사까지 한다는 삼단논법의 결론이다. 만우절에는 기발한 웃음이 있고, 친구 간의 부부싸움이 있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비로소 치유되는 헛헛한 웃음이 나오며, 어딘지 모르게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나는 지난번 술을 마신 날이 만우절이었음을 상기시키며 형만이를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형만이가 또 나를 찾아왔다. 자신의 아내인 행자에게

그동안 경과를 다 이야기 했단다. 그런데 그 오빠, 본래 농담 잘 하잖아요. 어서 잠이나 잡시다.”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코를 골더란다. 형만이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내의 얼굴, 딸의 얼굴, 아들의 얼굴을 요리조리 다 살펴보았단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아들의 발가락까지 갑돌이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니, 확신한다고 했다.

 

  수필의 성격 규명에서 종래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질 때가 잦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심경적 체험의 개성적인 글에서 위트와

유머가 있는 글에 대해 알베레스는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이미지 문학이라고 했다. 이렇게 상상의 세계를 드나듦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힘이고, 그 힘이 수필로 이어지는 만큼, 작가는 작품에서 상상의 깊이가 느껴짐은 필연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부에는 <참새 한 마리>가 중심으로 떠오른다. 작가는 자신이 운영하는 마켓에서 끈끈이에 붙어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내 참새를 구해주고는 고향 산등성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한다. 이렇게 소소한 일에도 디아스포라적인 우리의 삶은 고향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게 유일한 재미요 삶일 것이다.

 

  어미 새는 이제는 안전하다 싶었는지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나오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는 후다닥 새집을

덮쳤다. 순간 바구니 안에서 푸드덕하는 소리가 나고 나의 손에는 새 한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

  “나도 잡을 수 있구나! 날아다니는 새를 말이다.”

  기쁜 마음에 발버둥치는 새를 쳐다보았다. 몸에 윤기가 나고 검은 청포도 날개 빛이 참으로 예뻤다. 도망갈까 싶어 주머니에 넣고는 풀을 베려고 했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서  잠시

푸드덕하더니만 조용했다. 이놈이 도망칠 생각에 죽은 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는데도 눈을 감고는 움직임이 없다. 손가락으로 툭툭 쳐도 움직이지 않는다.

 

   작가의 글 속에는 유년의 모습이 보인다. 고향의 야트막한 산에서 산새를 잡는 소년의 모습이다. 그의 눈앞에는 두 공간이 하나로

겹쳐 펼쳐진다. 날아가는 참새를 보며 작가는 유년시절에 있었던 세계의 반추는 마치 짜깁기하듯 이종결합을 시도한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자유로운 넘나듦이 사유의 깊이를 더해간다.

   고향은 어머니의 젖줄이요, 그리움을 붙잡으려는 질주와 과속이 보인다. 미끄러져 가는 차들과 인파처럼 줄달음치며 사는 생활.

이를 작가는 새 한 마리에서 생활의 여백을 찾아보고, 자기의 성찰, 관조의 미학을 이렇듯 존재에 천착하며 뒤집고 파헤치는 일일

것이다. 3부에는 수필집의 제목인 <교향악단 지휘자>가 단연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유태경 수필가를 한국문단에 등단하게 한 수필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곤 한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또 다른 아쉬움이 남곤 한다. 남들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만, 정작 만족한 삶을 사는 이는 몇이나 되랴. 인생은 한 번 왔다가 어느 땐가는 떠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철인은 인생은 뜬구름이라

했지 싶다.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삶과 인생을 되짚어 본다. 자의식을 심층에서 뽑아낸 정작 만족한 삶을 사는 이는 몇이나 되랴.”라는

침묵 속으로 흐르는 고뇌, 그리고 고통과 고독을 감지할 수 있다. 세월의 흐름에서 느낀 생명수 같은 깨달음이기에,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요체가 된다.

    나는 눈을 감고 장모님이 운영했던 방앗간에서의 하루를 떠올리곤 한다. 이른 새벽, 발동기가 돌아가며 관악기의 웅장한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송진을

바른 피대가 연결되면서 현악기, 타악기가 베토벤의 5<운명 교향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제51악장이다. 돌을 걸러내는 넓은 채에 폭포수처럼 벼가 흘러내리면 쌀이 된다. 쌀 떨어지는 소리는, 어느덧 첼로의 청아한 바이올린 소리로 바뀌어 간다.

호른 독주 뒤에 바이올린의 여성적인 주제가 감미롭게 흐른다. 지휘자는 잠시 쌀가마니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벼 퍼 올리는 소리, 벼 쏟아지는 소리, 벼 껍질

벗기는 소리가 발동기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와 먼지가 함께 어울려 하늘에 은하수가 되어 교향곡은 절정을 이룬다. 도정된 쌀이 가마니 속으로 쏟아지면서

1악장이 끝나고 다음 장으로 연결된다. 지휘자인 장모님은 단원 중 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즉석에서 바로 잡아주곤 했다.

 

   수필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소재가 평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내재한 존재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작가는 노년에 이른 장모님의 고단한 삶을 베토벤 제5<운명교향곡>에 대비시킨다. 이는 유사착상 기법이다. 삶을 지각하는 각성과 무거운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일상적 소재를 자기화하고 의미화하고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이처럼 유태경의 수필 발화점은 자의식을 내려놓고, 피대의 소리를 베토벤의 음악으로 보는 분별심이다. 니체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해낸다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라고 언술한 것을 보면 유태경 수필가는 늙어감과 죽어간다는 아픔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음을, 근원적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의 영혼에 근접하기 위한 소망으로 해석된다.

   4부에는 <술버릇>이 등장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금전 거래를 해보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리라.”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제목이 주는 함축성은 다분히 시사적이고 비극적인 감수성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작가가 깔아놓은 포석을 꼭 선언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이런 언술은 사뭇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아픈 과거가 숨겨져 있는 듯하여 더 눈길이 간다.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금전 거래를 해보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리라.

    술집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별안간 왝! 하며 여자가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쏟아 버린다. 비틀거리며 등을 두드려주는 남자를 보아 학생인

듯싶다. 삶에 지쳤는지 전봇대에 몸을 맡긴 채 정조준도 못하고 시원스레 바지에 볼일을 보는 사람도 보이고 어깨동무하고 만취한 친구를 부추기며 삶의 버

거움을 토해내는 거리의 가수들도 보인다. 길바닥에 누워 직장 상사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듯 흥얼거리는 사람도 보이고 경찰들이 불만을 토하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도 들린다. 술에 취해 무질서가 난무하는 현실에 백차의 웽웽거리는 소음은 삶에 버거워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들린다. 한밤중 무교동의 밤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고 주정하는 취객의 모습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리라.

 

  작가가 본 한밤중의 서울 무교동 밤거리는 환란의 비극적 이미지로 구체화되고 있다. 인간의 모호한 탐닉 밤의 꽃이라는 이미지도

눈에 띈다. 운명이라는 비극성. 고대 그리스에서는 3월이면 디오니소스 원형극장에서 며칠 동안 비극을 공연한다. 운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비극의 완성이다. 그렇다. 이곳 무교동의 거리에도 낮이 찾아들면

밤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상시의 진지한 삶을 맛보고, 되풀이되는 생활의 긴장감을 보게 될 것이다.

   또 있다. 수필의 서사성을 생략하고 정서 위주의 지적 편린은 대상에 대한 통찰과 예민한 감각으로 이어진다. 한 송이 꽃이 스러지고 피어나는 소멸과 환생의 영속성은 차라리 비극적이다.

   아내에게 미안하기는 해도 과음하지는 않았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요, 과하면 독이 된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자신의 논리의 당위성을 찾고자 직장과 가정을 구분하며 거짓말의 합당성을 찾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이민자의 삶>이 장식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모두의 앞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이를 수긍한다면 우리는 이제 그

모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엄청난 삶의 과제 앞에 지레 억눌려 낙심천만한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가게를 하는 동안 강도가 내 머리에 총구를 대며 바닥에 엎어 놓고 자존심까지 쓸어 갔어도 다시 일어섰다. 도둑놈과 싸우다 아내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가고 병원에 입원했어도 우리의 생명줄인 가게는 13년 동안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

(……)

  나는 미국시민권자다.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남의 나라에서 한 푼 도움도 받지 않고 내라는 세금 다 내며 산다.

 

   피에르 쌍소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의 무질서 때문에 나는 가끔 생활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이런 심장소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는 이상 현상 속에 빠진다. 항상 분주한 도시. 그 도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길을 걷노라면

적당한 속도로 걸으려는 나의 노력은 아랑곳없이, 항상 군중 속에 파묻혀 바삐 끌려가게 된다.” 수필가 유태경은 남의 나라에서

유유한 삶을 살고자 했다면 천부당만부당하다는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주 정부에 기대어 한 푼 두 푼 받아 연명하는

노숙자들의 애환 속에 자신을 대비시켰을 것이라 싶다. 그러면서 작가는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달려왔던 질주와 과속. 미끄러져

가는 인파 속 어디쯤엔가 옹달샘 주위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이 늘어서서 자신을 반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상향을 무언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수필은 자기 성찰, 관조의 미학이다. 존재에 천착하는 삶을 뒤집고 파헤치는 일일 것이다.

 

3. 나가는 말

   유태경 작가의 첫 수필집 교향악단 지휘자에 담긴 작품세계를 알아보았다. 작가는 자신의 생태적 가치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삶을 교시적인 대상에 연민과 연대의식을 느끼고 있다. 언뜻 보면 남과 다를 바 없는 낯익은 담론일지라도 작가의 가치는

한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독자 및 친지들과 더불어 유태경 수필가의 뜻깊은 첫 수필집 출판과 새로 거듭날 연륜만큼 값진 칠순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과 인생의 향연에 함께한 미주문학 수필반문학도文學徒 모두도 복된 유태경 수필가의 첫 작품 출판을 축하한다.

   아무쪼록 가족의 건강과 함께 더 좋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년이 없는 글쓰기와 길이 남는 창작품을 정성껏

빚어내는 문인의 영예로운 특권을 맘껏 펴보길 바라본다. 작가가 열어갈 고된 새로운 수필작업의 진로를 기대한다.*

 

                                                                                                    에세이포레2013년 봄 (통권 65) 게재

 

유태경ok.jpg

약력:

에세이포레 등단

재미국악인(해금. 경기민요)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산타모니카지부 회원

저서: <고향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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