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문학평론가

조회 수 1129 추천 수 1 2019.11.01 10:34:34

 

 

서해맹산(誓海盟山)은 정치권 소유물이 아니다

=무인(武人) 장수(將帥)들이 외적을 무찌르려는 다짐의 맹서=

장 희 구(張喜久)

 

 

 

= 목 차 =

1. 정치권이 [서해맹산(誓海盟山)]을 부르짖는 어리석음

2.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속뜻은 무인 이순신의 충정(忠情)

3. 이순신의 충정(忠情)에 대한 22대 정조의 화답(和答)

4. 고신(孤臣)이었기에 바다()와 산()만큼은 알리라

5. 우국지사(忠臣)이었기에 서해맹산(誓海盟山)을 읊고

6. 총신(寵臣)을 자처했기에 바다와 땅은 어땠을까?

7. [서해맹산(誓海盟山)]보다 [맹천서인(盟天誓人)]이라 했어야

8. 선택된 국무위원인 총신(寵臣)으로 맹천서인(盟天誓人)

 

1. 정치권이 [서해맹산(誓海盟山)]을 부르짖는 어리석음

이따금 정치권에서 서해맹산(誓海盟山)”이란 한자용어를 쓰는 경우를 가끔 만난다. 그 뜻과 유래 과정도 모르고 사용하여 어리둥절 하는 모양새를 만나면서 씁쓸한 생각이 든다.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용해야 할 때 사용하지 않아야 할 때를 모르는 경우도 있고, 1회용으로 한번 내던지는 말로 사용함으로서 무지(無智)를 유지(有智)로 치장한 후에는 그것이 무엇이더라하는 인위적 무지소치를 더러 만난다. 특히 정치인들은 극도로 야무지게 응축(凝縮)된 사자성어 한 마디를 말머리에 놓음으로서 자기를 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들도 흔하다. 정치권의 전유물처럼 사용하는 [서해맹산(誓海盟山)] 사용이 심하여 정치권에 소유권 등기라도 이전해야 될 판은 아닐까.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하는 것이고, 실천으로 하는 것이다. 번지르르한 고사성어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지보다는 행동과 모범으로 그 실천의 의지를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서해맹산(誓海盟山)’처럼 우리 선현들이 말이나 산문인 글로 또는 운문인 시()나 교훈적 의미를 꼭꼭 눌러 담아 남겨놓은 교훈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는 이순신이 남겨놓은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의미와 유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보려 한다.

 

 

2.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속뜻은 무인 이순신의 충정(忠情)

서해맹산(誓海盟山)’은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호연지기의 심정으로 애국심이 가득 담긴 이순신에 의해 조탁(彫琢)된 사자성어다. 이 성어는 이순신(15541598)의 한시 진중음1(陣中吟1)에 나오는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 盟山草木知)’를 줄인 시어다. 이는 바다에 서약했더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했더니 초목이 알아채는구나라는 뜻을 담는다. 이순신이 선조의 피난 소식을 접한 뒤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울분에 찬 애국심을 담아 작시되었다. 오언율시로 이순신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정도를 알게 한다.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東宮北地危(동궁북지위)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임금님 행차는 서쪽으로 멀어져만 가고

왕자는 북쪽 땅에서 위태롭기 그지없네

외로운 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할 때이니

사나이는 공훈을 세워야 할 시기로구나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굳게 맹세하니 초목이 알고 있구나

내 힘으로 원수를 모두 멸할 수만 있다면

비록 죽음이 올지라도 사양하지 않으리라.

=이순신 [진중음(陣中吟)1] 전문

 

선조(宣祖)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勃發)해 의주를 향해 가다가 드디어 평양성까지 함락되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접한다. 선조는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이제는 중국으로 넘어가 망명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세자인 광해군에게 통치권 절반을 이양하는 [분조(分朝)]를 단행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인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비통한 마음을 잡아 충정에 찬 애달픈 심정으로 읊었던 5언 율시 한 수를 가만히 열어젖힌다.

시인은 둘째 연인 함련(頷聯)에서 나라의 위태로움을 안전에 두고 그냥 넘어갈 장부가 어디 있으랴 하는 비통한 심정을 우러러 한 줌 시상으로 내뱉는다. 이제 외로운 이 신하가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걱정할 때라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이제야 말로 사나이로 태어나서 국가를 위해 공훈을 세워야 할 때라는 자신 만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패기에 찬 모습을 만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다시 시인은 화자의 깊은 뜻까지 담아 셋째 연인 경련(頸聯)에서 무인(武人)다운 날카로운 기질을 담아 서해맹산(誓海盟山)’이란 명언 한마디를 시적인 상상력 속에 물씬하게 남겼다. 저 푸른 바다에 나의 뜻을 서약(誓海)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겠고, 산야에 굳게 맹세(盟山)하니 초목들이 내 마음 모두를 알고 있다는 시상에 그만 파묻히고 만다. 56구라는 머릿글 두 글자씩의 시어를 토해날 수 있었다. 시인은 넷째구인 미련(尾聯)에서 내 힘으로 원수를 모두 멸할 수만 있다면 모든 힘을 다 바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담더니만, 화자의 입을 빌어 큰 다짐한 마디를 한다. 한 목숨 바치려는 듯이 비록 죽음이 올지라도 사양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게 된다. 과연 이순신 다운 펄펄 넘치는 기상을 진중음1” 한 수로 모두 담았다.

 

 

3. 이순신의 충정(忠情)에 대한 22대 정조의 화답(和答)

서해망산(誓海盟山)은 위에서 보인 이순신의 진중음1(陣中吟1) 5행과 6행의 첫 두 글자를 합성했던 최초의 공로자는 영조의 손자인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그 첫째다.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충무공의 결연한 의지를 압축한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다. 정조는 조선 최고의 이순신에 대한 열광적인 펜이었다. 이순신에게 영의정을 추증한 것(1793)과 충남 아산 이순신 무덤 앞에 신도비(神道碑 : 2품 이상의 관원이나 임금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비명을 직접 짓고 비석을 세우는 것(1794) 등은 모두 정조의 충정어린 발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조는 1795년에는 규장각 각신들을 시켜서 현충사에 보관 중이던 충무공 난중일기를 대본으로 삼아, ‘장계, 서신, 시문등을 집대성하여 148책 분량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발간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던 장본인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인용한 진중음1(陣中吟1)의 출전도 이 이충무공전서에 기인하게 되었던 것도 처음이다.

정조는 문신이 아닌 무신의 문집을 발간하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이겠지만, 문신의 경우라 해도 임금이 직접 신하의 문집을 발간했던 것 자체가 일찍이 없었던 희대의 일이다. 이를 빌미로 삼아 신하들이 반대의 상소를 올리자, 정조의 화답은 한 술을 더 떴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순신 같은 신하가 100명이 더 있다면, 100명 모두에게 다 문집을 만들어 주겠노라라고 하면서 이를 관철시키는 마니아(Mania)란 주역을 톡톡히 해냈다. 정조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서문에 해당하는 윤음(綸音-임금이 백성에게 내리는 글)을 직접 썼다고도 하며, 이와 더불어 자신이 지은 어제사제문(御製賜祭文-임금이 내린 제사문)도 함께 싣도록 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도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그 이름을 알았네(誓海盟山草木知名이라 하며 문맥을 각색하는 구절까지 처음 등장하게 된다. 곧 충정을 다 바치면 천지신명과 산천초목도 자신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이순신의 믿음에 대해 산천초목도 알게 된 것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이라고 화답했던 대목의 지혜로움을 안다. 이는 이순신의 깊은 충정을 서해맹산(誓海盟山)으로 축약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정조다.

 

 

 

4. 고신(孤臣)이었기에 바다()와 산()만큼은 알리라

정조가 이순신의 마니아(Mania)란 키워드를 삼았기에 서해맹산(誓海盟山)’이 녹아있는 진중음1(陣中吟1)15927월 한산대첩을 전후하여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뼈아픈 평양성 함락과 광해세자의 분조(分朝)가 이루어진 시점이 그 해의 6월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는 이순신의 절명시(絶命詩 : 숨이 떨어지기 직전에 쓴 시)라 불러도 될 만한 내용을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을 수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왜적을 멸할 수 있었다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겠다는 마지막 두 행의 결의는 159811월 노량해전에서 실제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원루(寃淚)가 다하여 멀어져 가는 임금에 대한 시적인 묘사는 그와 같은 임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고신(孤臣)이란 자의식 표현에서 보이듯이, 선조의 질투(?)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백의종군하게 될 자의식의 처지까지 미리 예견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조정이 자기의 처지를 알아주지 못었다 해도 [바다()와 산()]만큼은 꼭 알아주리라는 외로움과 절박함까지 용해되었다.

이순신은 서해맹산(誓海盟山)에 해당하는 56행을 특히 아끼면서 자신의 쌍검에 새겨 넣었다 한다. 그렇지만 아깝게도 그 쌍검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현대에 새긴 현충사에 남아있는 쌍검 한 쌍에는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란 두 구는 절묘한 대구를 이루고 있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석 삼자 검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벌벌 떨고, 쌍검을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강산이 피로 물들었다]는 뜻을 담아 표현되어 있는 명문이기도 하다. 이는 이순신이 받은 충무공과 같은 시호로 널리 알려진 중국 송나라 명장 악비(岳飛)’를 두고 서애 유성룡이 찬사를 아끼면 표현한 것이다. 악비는 남송 최후의 재상 문천상(文天祥), 촉한의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최고의 찬사를 받는 충절의 상징으로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온 인물을 대비했다.

 

 

5. 우국지사(忠臣)이었기에 서해맹산(誓海盟山)을 읊고

정조에 이어 두 번째로 서해맹산(誓海盟山)’을 인용했던 인물은 조선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맨 손으로 막아내려고 했던 우국지사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다. 해방이후에는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학장을 역임하면서도,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를 단연코 거부하면서 부정선거 음모의 덫을 잡고 당당하게 맞서 싸웠던 인물이다.

 

將軍祠下竹林間 장군사하죽림간

底事書生痛哭還 저사서생통곡환

誓海盟山何處是 서해맹산하처시

東鯨日噴接天瀾 동경일분접천란

 

장군님의 사당 아래의 대숲 사이에서는

어이한 일로 서생이 통곡하고 돌아오다

바다와 산에 맹세하던 곳이 그 어디인가

동쪽고래 날로 하늘에 닿을 듯 물을 뿜네.

-심산 김창숙서해맹산(誓海盟山)전문

 

위 시는심산유고(心山遺稿))1에 실려 전하는데, 시인이 그만 깜박 시제를 놓쳤기에 필자 임의로 명구 [誓海盟山]이라 붙였다. 이 시의 앞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짓게 된 동기를 담은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어 가슴을 섬칫하게 한다.1010일 밤 꿈에 김진우 군과 함께 바닷가 어느 대숲에 이르러 이충무공의 사당에 배알하고 술을 부어 통곡하다가 시 한 편을 읊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기록으로 남기다(十月十日夜夢 / 與金君振宇 / 相携至海上一處竹林中 / 謁李忠武祠 / 酌酒痛哭 / 詠一絶詩 / 覺而記之)라고 첨기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에 이순신은 민족이 처한 난관의 극복과 위안, 승리에 대한 열망의 상징이었음이 분명하다. 독립을 위해 맹렬하게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고문후유증으로 장애를 입고 은둔하던 당시(1936) 심산(心山) 김창숙에게 애국애족에 대한 욕망은 더욱 절실하였으리라. 꿈속에서 충무공의 사당을 배알하고 통곡하고 시를 읊었다는 것도 그러한 자신의 정황과 심사를 깊숙하게 담고 있었음이 분명했으리라 본다. 함께한 일주(一洲) 김진우(18831950)는 구한말 의병으로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 의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며 당대 묵죽(墨竹)의 최고봉으로 그 명성이 대단했다.

통곡하고 돌아오는 서생은 심산 자신 또는 일행을 가리키겠으며, 통곡하는 이유는 시어인 다음 두 구에서 그 진면목을 알겠다. ‘서해맹산(誓海盟山)’은 이순신의 시진중음(陣中吟)바다에 서약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동쪽 고래가 날마다 하늘까지 물을 뿜는다(東鯨日噴接天瀾)는 것은 한창 왕성한 일제의 침략세력을 뜻하겠는데, 곧 암울한 당대의 현실을 타개할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강성일제에 대한 강한 분노의 표출이겠다. 이러한 비분강개의 기저를 담아 우리는 국난 극복에 대한 강건한 의지와 굳은 열망이리라.

민족이라는 상상적인 공동체는 꼭 영웅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영웅은 시대의 열망과 목적에 따라 재현되면서 민족의 집단적 기억으로 되살아난단다. 우리 민족에게 이순신만큼 강력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웅이 또 어디 있었을까. 이순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족을 구원한 무결점의 성웅(聖雄)에서부터 고뇌와 갈등 속에 번민하는 실존(實存)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소환되고 있음은 우리들의 한결 같은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6. 총신(寵臣)을 자처했기에 바다와 땅은 어땠을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이순신을 불렀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순신을 부르고, 이순신의 리더십을 부르짖을 때면 반대편에서는 단순한 진영논리로 비판의 화살까지 보냈다. 그러나 이순신의 리더십을 제대로 실천하는 차분한 행위를 그 누구라고 바라지 안 했으랴. 시어에서 보이듯이 일본이 동경일분(東鯨日噴)’을 다시 획책하는 작금에 우리는 다시 이순신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애써 부름은 비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유쾌했고, 암울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희망적이다는 평가(?)를 우리는 감내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문구를 국내정치에 두고 꼼꼼하게 비유한다면, 섬뜩한 내용임을 가만히 추론해 볼 수 있다. 서해맹산(誓海盟山)은 선현 대대로 지켜온 조국(祖國)을 유린한 왜적을 단 한 명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무인 정신이 깊숙하게 담겨있음을 의미하겠다. 원수 같은 붉은 피로 산하를 물들이리라는 결사항전의 표현이 은근하게 담겨있지는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글귀가 국방부장관 내정자 소감으로 쓰였다면, 전시 상황이 아닌 이상 상당히 과한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함에도 무력으로 침략을 감행한 외적을 향할 때나 사용함직한 표현을 국내 법질서 확립에 힘써야할 장관 후보자가 이를 치겨 세워 들어냈으니 섬뜩한 느낌을 쉽게 지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혹시 국방부 장관이나 해군사관학교의 임관식 혹은 사열 그리고 해전(海戰)에서나 쓰였다면 다소 용서(?)될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외교적 갈등관계인 한국에 대해 부당한 무역보복에 나선 아베신조 일본 정부를 겨냥한 표현이라면 더욱 옹색해 질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서해맹산(誓海盟山)으로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은 순수 국내정치인 점을 생각했을 때 멈칫한 생각에 잠긴다. 다음에 놓이는 문장과 연계해 봐도 그와 같은 표현의 적절성에 무리가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된다면, 헌법정신 구현과 주권수호,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까지 포괄하여 연계한다 해도 아베신조와 하등에 다를 바 없다는 우()를 저지르고 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취임이라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감한 외교문제를 끌고 나왔다는 폄하의 비판을 스스로가 등에 짊어진 꼴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렇다.

 

 

7. [서해맹산(誓海盟山)]보다 [맹천서인(盟天誓人)]이라 했어야

이순신은 해전을 책임지는 무인(武人)이기에 바다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을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맹세를 했겠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권의 문신(文臣)들은 흔히 사용함 직하는 [하늘과 사람]을 향해 맹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의문을 품는다.

일찍이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인 삼락(三樂)이 있다면서 다음을 설파했다.

[君子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이라면서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 되는 일은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전재를 먼저 한다. 권력의 힘으론 안 된다는 뜻이다.

 

父母俱存하고 兄弟無故하니 一樂也

仰不愧於天하고 俯不怍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而 敎育之三樂也라 했다.

부모님이 함께 살아계시고, 형제간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이 첫 번째의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굽어 사람에 부끄럽지 않음이 두 번째의 즐거움이며

천하의 영특한 인재를 얻어서, 바르게 교육시킴이 세 번째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위 세 가지 즐거움 중에서 두 번째 즐거움을 음미한다. 맹자는 仰不愧於(앙불괴어천)하고, 俯不怍於(부불작어인)’이라고 읊었으니,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허리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금쪽같은 교과서적인 한 구절을 2300년 전에 곱게 남겨주었다. 백번을 읽어봐도 가슴 시원하게 와 닿는 가르침이다.

무인 이순신은 서해맹산(誓海盟山)에서 盟誓(맹서)’誓盟(서맹)’으로 상용어를 역으로 바꾸어서,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물에 맹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바다와 산이 지구를 형성하고 있기에 당연한 논리일 수가 있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겠지만, 이는 바다에서의 전쟁, 우수영처럼 산의 지형이나 물굽이 만()이라는 지형지물 이용의 입장을 보았을 때, 이는 해군 장수의 굳건한 맹세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서 군자를 상징적으로 설정했으며, 문신인 점을 감안하여 맹자 삼락 중 이락(二樂)의 맨 끝 자인 [하늘()과 사람()]을 잡아당겨, 어순에 맞도록 [맹서(盟誓)]를 앞자리에 대입시켜 [맹천서인(盟天誓人)]이라면 더 적당하지 않겠나본다. 이는 [총신(寵臣)이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고, 모든 백성을 향하여 굳게 맹세한다]는 뜻이겠다. 억지로 사자성어를 만들어 만족스럽지 못한 <내로남불>식의 사자성어와 어찌 비교나 될 수 있는 신조어 성어가 아니겠나 엄중히 묻는다.

 

 

8. 선택된 국무위원인 총신(寵臣)으로 맹천서인(盟天誓人)

20198월초 조국(曺: 1965) 법무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무부장관 내정 소감이란 글을 올려 인구에 회자(人口膾炙)되었다. “이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의 소명을 완수하겠다는 글을 올려 한 폭의 자기 소회를 밝혔다. 이것이 화려한 등판이란 전초전의 구호가 되었다. 판단이나 선택은 국민, 국회, 여론 등이 낙점한다는 점으로 힘이 실린다.

법무장관 후보자격이라면 다소 버거운 시제 인용 진중음1(陣中吟1)에 실린 고신(孤臣)’과는 상당히 거리에 있어 멀리 보인다. 얼마 전까지 최고권좌의 최측근이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내다가 법무부장관 직행이란 특전을 누렸다면, 그에 걸맞게 붙일 이름은 달리 있다.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신하란 뜻으로 총신(寵臣)’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본다. 대통령 명을 받아 오직 국민만을 위하는 국무위원이 되어야 한다는 살가운 마음이 담겼다. 오직 사심을 버리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정치행보로, 이순신 장군쯤의 야무진 무게감과 실천력으로 {저는 오늘 하늘에 맹세하고, 5천만 국민 모두에게 굳게 맹세한다}는 뜻인 [맹천서인(盟天誓人)]의 정신을 힘차게 외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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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敍光(서광) 張 喜 久(장희구)

문학박사/시조시인문학평론가소설가수필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한국시조협회 이사

남부대 교수북경 경무대 초빙교수·현대문학사조 주간·문학신문 주필

역동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충효예 실천공로 대상 외 다수

[명심보감신강][해법한자][중 고등 한문 검정 교과서] 3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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