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성 수필가

조회 수 2043 추천 수 0 2019.04.03 12:31:31

손광성의 수필 쓰기

 

<문장의 길이에 따른 표현 효과>

한 편의 글에서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이때 짧은 문장이란 곧 홑문장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구조상 홑문장이라도 수식어가 많이 붙으면 긴 문장이 될 수 있고, 겹문장이도 주성분만으로 되어 있으면 짧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짧은 문장이 주는 효과

1. 뜻이 명료해진다

2. 깔끔한 인상을 준다

3. 장면 전환, 사건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4. 극적 장면이나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5. 긴 겹문장이 계속되다가 홑문장이 나오면 의미가 강화된다

- 긴 문장이 주는 효과

1. 유장한 느낌을 준다

2. 운율적인 맛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3. 심리적 정황이나 명상적인 수필에 효과적이다

4. 회고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A1 바람이 세차게 불자 덜컹거리던 창문이 갑자기 폭발하듯 열리는가 했더니 순간 꽃병이 탁자 밑으로 떨어져 깨어지면서 물에 적은 빨간 장미송이들이 낭자하게 마루 바닥에 흩어졌다.

 

A2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덜컹거리던 창문이 갑자기 폭발하듯 열렸다. 순간 꽃병이 탁자 밑으로 떨어져 깨어졌다. 물에 젖은 빨간 장미송이들이 낭자하게 마루 바닥에 흩어졌다.

 

A1에서는 네 가지 상황이 한데 섞여 있어 각 상황이 독립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되면서, 각 사건은 전체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A2처럼 짧은 문장으로 각 상황을 독립시키면, 각 상황이 감각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다. A1말하기telling’라면 A2보여주기showing'이다. A1보다 A2가 입체적이고 직접적이며 현장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하나의 문단은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이 서로 교체되면서 내용에 알맞은 대목에 가서 알맞은 문장을 얻었을 때 표현의 묘를 얻게 된다.

무용이 동작의 완급의 교체로 구성되듯이 글도 완급의 교체가 이루어질 때 즐거운 문장, 아름다운 문장이 이루어진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의 적절이 한 교체. 이것이 문장 배열의 미학이다.

 

<우리말의 시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시급히 고쳐야 할 병이 하나 있다. 시제時制에 대한 불감증이다. 일관성이 없는 시제 표현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외국어 시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부하고 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모국어의 시제에 대해서는 이처럼 무관심한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우리말의 시제는 복잡하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 동작상動作相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말하는 시점 또는 글을 쓰는 시점을 발화시發火時라 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그보다 사건이 먼저 일어난 경우 이를 과거, 발화시와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같은 경우 이를 현재라 하며, 뒤에 일어날 경우를 미래라 한다. 동작상에는 완료와 진행 두 가지가 있다.

과거 시제는 선어말 어미 ‘~~/~~’으로 실현된다. ‘어제, 작년, 지난등과 같은 시간 부사와 함께 쓰일 때 분명해진다.

발화시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나서 현재와 더 강하게 단절된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았었~’또는 ‘~었었~’과 같은 겹친 형태의 과거 시제 선어말어미를 쓴다. ‘대과거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 옳다.

1. 이 선생은 고등학교 시절 장거리 선수였었다

2. 자네가 떠난 뒤에 어떤 스님이 찾아왔었다네

 

확실성있는 미래, 보편적 진리, 습관이나 성격 또는 성질은 현재시제로 표현한다.

 

<시제 표현의 실제>

나는 그 짧은 기사를 잃었다고 할 수 a없다. 거의 번개 같은 속도로 나의 눈이 그 위를 훑었고 읽기도 전에 그 내용을 파악했다는 편이 b옳다. 커다랗게 확대되어 나의 이름이 들어왔고 그러자마자 나의 심장이 미친 듯 c뛰었다. 그 뛰는 심장으로 한참을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나는 또 놀란 듯이 주변을 d훑어보았다. 자료실 안의 이쪽 칸은 늘 그렇듯이 거의 비어 e있다.

최윤, [회색 눈사람]

이 글의 시제는, a현재, b현재, c과거, d과거, e현재로 이동하고 있다. 의식을 흐름을 따라 기술한 자동기술법도 아니다. 객관적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시제가 수시고 바뀌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상황 전달에도 실패하였다. 이 글의 시제는 모두 과거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 시제를 통일 시키면, 일관성을 지킨 글이 되어 독자가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제 일치는 각 문장 속에서 결정되게 마련이지만, 장르에 따라 기본 시제가 있다. 시와 희곡은 현재 시제가 기본이다. 소설은 과거 시제가 기본이다. 소설의 모태가 설화이고 설화는 모두 과거 시제로 되어 있다.

수필의 기본 시제는 두 가지다. 추상수필과 구상수필, 그리고 서정 수필일 경우는 시처럼 현재 시제가 기본이지만, 서사수필일 경우는 기본 시제가 소설처럼 과거 시제이다. 예를 들어 이양하의 <나무>나 김진섭의 <백설부>는 모두 현재이다. 그러나 피천득의 <인연>이나, 김소운의 <도마소리>같은 서사 수필은 과거 시제이다.

그러나 심리주의 소설과 같이 심리적 갈등을 자동 기술법自動記述法으로 쓸 때는 매 순간 변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과거, 현재, 미래가 수시로 교체될 수 있다.

사실의 세계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분명해야 하며,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눈이 펑펑 오는 a날이었다. 역두에는 유치진 내외분-그리고 몇몇 친구가 전송을 b나왔다. 영하 사십 도의 북만으로 간다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 c바람이다. 당자야 태연자약일지 모르나 곁에서 보는 내 심정이 편하지 d못하다. 더구나 전송 나온 이 중에는 기름이 흐르는 낙타 오버를 입은 이가 e있었다.

내 외투를 벗어 주면 f그만이다. 내 잠재의식은 몇 번이고 내 외투를 내가 벗기는 g기분이다. 그런데 정작 미안한 노릇이 나도 외투란 것을 입고 있지 h않았다.

발차 시간이 i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아무것도 내게는 없고, 포켓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질 j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프랑스제 콩크링’-요즈음 파카오터맨따위는 명함도 못 내놓을 최고급 k만년필이다. 일본 안에도 열 자루가 없다고 l했다.

만년필 가졌나?” - 불쑥 묻는 내말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m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 꽂고 콩크링을 청마 손에 쥐어 n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도 아니련만, 그 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 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그런 o기분이었다.

김소운, [외투]

 

각 문장의 서술어의 시제를 보면 모든 사건이 발화시 이전에 일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a과거, b과거, c현재, d현재, e과거, 현재f, g현재, h과거, i과거, j현재, k현재, l과거, m현재, n과거, o과거로 되어 있다. 열다섯 개의 서술어의 시제가 수시로 바뀐다. 아무 이유가 없다. 시제를 일치시켜야 한다. c, d, g, j, k, m 모두를 과거 시제로 고치고, 다만 f만은 사실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하여 현재로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말의 시제는 영어나 독일어 같은 외국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정복할 수 있다. 시제는 문장의 일관성에 관계된다. 모국어 사랑이 별다른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우리말 규칙을 잘 지키는 일이다.

 

** 필자가 과거에 체험한 사건이지만 현장감을 주기 위해서 특정 장면을 현재 시제로 표현할 때.

 

우리는 투우장에 a들어갔다. 그 때 마침 문이 열리더니 검은 소 한 마리가 b나왔다.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투우사를 향해 c달려든다. 투우사는 빨간색 망토를 가지고 소를 이리 저리 d조정한다. 화가 난 소가 콧김을 불며 투우사를 향해 e돌진한다. 투우사는 순간 몸을 날렵하게 피하면서 소의 잔등에 날카로운 칼을 f꽂는다. 소가 g쓰러진다. 사람들이 달려오더니 소를 싣고 h나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I장면들이었다.

이 예문에서 a, b는 과거 시제로 표현되었다가 c, d, e, f, g, h까지는 현재 시제로 표현되었다가 다시 I에 와서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유는 c~h까지는 투우사의 혈투 장면을 생생하게 돆자가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과거 시제를 현재로 바꾼 것이다. 이런 목적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시제를 바꾸는 것은 문법에 어긋난다. (봄비님의 실전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다소 미진한 내용이지만 시제에 관한 한 저자도 이 이상 융통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Untitled-1 copy.jpg

 약력:

함경도 출생/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한국화 전공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 손광성 수필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9-04-03 2043  
60 김석희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19-03-01 3342 3
59 한상렬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9-02-02 1569 1
58 박방현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9-01-01 1476 2
57 김연동 시조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8-12-01 1550 1
56 김윤식 문학평론가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8-11-01 2163 1
55 정순옥 수필가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8-10-01 3250 1
54 최효섭 아동문학 작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8-09-01 2527 2
53 한분순 시조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18-07-31 2107 3
52 장석주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8-06-30 2156 1
51 정재승 시인. 문예비평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8-05-31 2952 3
50 정순옥 수필가 file [2] 웹담당관리자 2018-04-30 2262 1
49 조길성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18-03-31 3128 3
48 이정아 수필가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8-02-28 22558 4
47 최익철 시인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8-01-31 2629 3
46 최인호 소설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7-12-29 3256 1
45 호병탁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7-12-01 2317 1
44 안미영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17-10-31 2670 2
43 김환생 시인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7-09-30 15530 3
42 서효륜 시인 file [1] 웹담당관리자 2017-08-31 2491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