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화 수필가

조회 수 4912 추천 수 3 2016.06.01 17:50:59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천형天刑, 외로운 바람 
                                                           -김평화 수필집 《사랑의 아이콘》 작품세계

 

 

                                                                                                                                                                  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1. 들어가기

  수필은 흔히 자신의 흔적을 적은 이야기라 한다. 수필에서는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한다. 모든 흔적이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길은 남달라야 한다. 남다르다는 것은 특별하거나 고귀한 발자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가 김평화는 수필이 다리가 되어 글로 만난 인연이다. 이생의 끈을 하나둘 끊어가야 할 나이에 서로가 인연이 되었다. 옷깃 한 번 스친 적 없으니 맺어지기 어려운 인연의 끈을 잇는 것도 나로선 참 별일이라 싶다.
  나는 미국 본토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남성이고, 그녀는 하와이를 떠날 생각이 조금도 없는 섬나라 여성이다. 이렇게 같은 미국이지만 이곳과 3시간의 차이가 나는 곳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이 지인이 되었다. 사람의 발보다 글이 멀리 가는 덕분이다.
  이런 까닭에 그녀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다만 글속에서 생활과 삶의 방식과 태도, 성격과 인격을 짐작한다. 게다가 인생을 ‘아, 해도 알고 어, 해도 짐작하는’ 나이만큼 서로가 살아왔기에 너그럽게 소통할 수 있다. 이게 그녀의 ‘서문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다.
  제1 수필집 《사랑의 아이콘》을 발간한 김평화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후 음력 8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쟁 때 아버지와 외삼촌 한 분은 전사했고, 다른 외삼촌은 이북으로 끌려가 소식이 없다. 어머니는 9살 때 세상을 등졌다. 할머니와 이모와 셋이 생활하면서 작가는 수도여고를 졸업했다. 그러다가 먼저 미국에 이민 간 이모의 가족초청으로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하와이에 도착하게 된다.
 평화(Peace)라는 뜻의 이름이 흥미롭다. 6·25전쟁 당시 8월에 잠시 주변이 평화롭다고 하여, 할머니가 평화로 작명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문이름을 한국식으로 고집하며 당당하게 평화(Pyong Hwa, Kim)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하와이대학에서 미생물학과를 전공하며 공부했고, 문인들의 활동이 열악한 하와이에서 <하와이문인협회> 회장을 하면서 2013년 1월 《조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2. 세상으로 들어가기

  4부 33편으로 만든 처녀 수필집 《사랑의 아이콘》을 통괄하면 그 주제는 바로 생명애, 창조애임을 간파하게 된다. 작품 전편을 읽고 나면, 판소리 한마당을 듣는 듯 긴 여운이 남는다. 작가 김평화의 판소리에는 작가가 토해내는 계면조의 설움, 복받치는 흐느낌, 정한과 통한이 섞여 몸부림치는 대목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달관과 평온의 토로가 있고, 삶의 흥취와 미학도 있다. 그녀의 수필은 어렵지 않다. 당연히 자연의 미묘한 비밀을 캐는 서정수필이나 현학적인 관념수필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몽테뉴도 에세이는 삶의 진경(眞景)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주어지는 수필 공간은 있는 그대로 생활의 발견을 적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체화되어 본질적인 실존을 위한 진지한 사유를 거울을 보는 듯하게 완성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 산다. 제 얼굴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다. 그런데도 거울과 사진을 보지 않은 채 자화상을 그리기는 실로 어렵다. 타인의 얼굴을 그리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수필쓰기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타인을 알 수 없으며 세상과도 제대로 통찰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비춰내려면 마음이 맑아야 한다. 마음의 연마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비춰 내야 한다.
  이래서 수필은 인생의 고백, 마음의 토로이다.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며, 세상과도 소통하는 것이다. 풀벌레가 밤새도록 우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의도이다.

 

 하와이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던 나는, 사람들이 산행한다고 하면 왜 힘들게 산을 오를까 궁금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부드러운 굴곡이 겹쳐지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만족했다. 우연한 기회에 <하와이문인협회> 회원인 K선생에게 내가 무릎이 아프다고 했더니 등산을 권했다. 몸이 허약했던 팔순의 선생은 산에 오르고 나서부터 건강도 회복하고, 몸도 튼튼해졌다며 젊은 사람처럼 산을 잘 오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처음 산에 오르던 날이었다. 다리는 꼬이도록 아팠고, 가슴은 통증으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힘들어하며 뒤처져 따라가는 내 모습을 보고 K선생은 고비만 넘기면 되니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었다. 그 덕분인지 땀 흘리며 맨 꼴찌로 정상까지 올랐다. 좁은 능선을 따라 오를 때 힘은 들었지만 아래서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가 눈 아래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며 참으로 신기해했다.
                                                                                                                                                         -<산속의 친구들>에서

 

  화자는 대구에 있는 대덕사에 친구와 함께 가을 산책로를 걸으면서, 산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 동기를 밝힌다. 하와이에서 집과 직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면서, 매일 높은 산을 보며 운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무엇 때문에 힘든 산행을 할까 의아스럽게 산을 쳐다보며 궁금해한다. 우연한 기회에 한 문인회원에게 자신의 무릎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 문인은 산을 오르면서부터 건강해지기 시작했다면서, 산을 권하게 된다.
  만만치 않았다. 다리가 꼬이고 가슴은 통증으로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사리 능선을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땅에서 본 막연한 산의 형상이 산 정상에서 아래로 보는 장엄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며 참으로 신기해한다.
  어느덧 산타기의 마니아가 된 화자는 매주 토요일 한차례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희열을 소담하게 수필에 담고 있다. 양쪽 길옆으로 체리과바 나무의 열매에 관한 이야기, 산 중턱에 있는 대나무군, 하늘로 뻗어 있는 줄기를 보며 우리 선조의 모습과 비교까지 한다. 그리고 하와이에 있는 소나무에 얽힌 사연과 매번 산행할 때마다 또 다른 모습을 화자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있다.

 

   얼굴이 차의 앞 유리창을 깨고 유리조각에 얼굴이 다 찢긴 터라 보기가 힘들었다. 마취했는데도 통증은 견디기 힘들었다. 수술하는 동안 내가 움직일까 봐 남자 보조사 넷이 내 팔과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눈에서도 유리를 빼내고, 얼굴은 백여 바늘을 꿰맸다. 수술을 마치고 얼굴을 하얀 붕대로 감은 내 모습은 미라 같이 보였다.
  잘 울지 않던 아기가 사고 후 밤새도록 울었다 한다. 나는 병원에 지체하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에 갔다. 무슨 이유인지 아기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사는 지체하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가라고 했다. 붕대 감은 얼굴이었지만 40분을 운전해서 정형외과에 갔다. 먼저 병원에서 발견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엑스레이에 나타난 아기의 한쪽 다리의 뼈에 금이 가 있었다. 태어난 지 사 개월밖에 안 된 아기에게 배에서부터 다리까지 콘크리트 깁스를 했다.
                                                                                                                                                     -<그때 그날이>에서

 

  30여 년 전 텍사스에 일어난 사건이다. 4개월 된 아들과 집에 있는데,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교회의 목사 부부의 영어통역을 위해 남편과 함께 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긴급구조대를 부르기 위해 남편과 피범벅이 된 아기를 집으로 보내고, 화자는 사고 낸 차로 다가갔으나 백인 여자는 놀라서인지 운전대에 자신의 머리를 박고 꼼짝 않고 있다. 인적 없는 사거리에서 흐르는 피가 눈앞을 가린다. 이에 당황한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God, Help Me!"를 수없이 외쳐댄다.
  잠시 후 멀리서 한 남자가 트럭에서 내리더니 하얀 셔츠를 벗으며 달려온다. 그리고는 자신은,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구급차가 올 때까지 화자를 도와준다. 도움을 준 사람이 이웃사람이라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그 후로도 영영 보지 못했다고 한다. 급하게 내게 보낸 이웃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다고 화자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병원에 도착한 화자의 눈과 얼굴에 박힌 유리를 빼내면서, 백여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는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아들도 한쪽 다리의 뼈에 금이 간 것을 알고 배에서부터 다리까지 콘크리트 깁스를 하게 된다.
  그 후부터 화자는 상처의 흔적이 있는 얼굴 탓에 10여 년을 사진을 찍지 않고 버틴다. 멀쩡한 얼굴을 요리조리 만들어내는 요즈음의 성형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나간 것이다. 자신의 찌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을 어떻게 버텼으며, 성형의 유혹을 또 어떻게 넘겼을까. 그래도 10년이라는 대단한 인내로 강산을 한 번 넘긴다. 이 집념은 점차 얼굴의 신경도 자라 지금은 본래대로 펴졌고 상처도 희미해져 있다. 평자는 이 수필을 읽으면서 마치 보글보글 끓인 된장에다 삶은 호박잎에 붉은 고추와 보리밥을 뭉쳐 먹는, 가을동화에서나 볼 것 같은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그곳은 넓은 들판 사이의 좁은 찻길에는 가로등이 없다. 별빛이 유난히 밝게 내리비치는 어두운 늦은 밤, 술에 취한 남편은 운전하다가 철도길이 도로로 착각했다.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다가 철도구관 레일에 바퀴 전체가 걸려 차가 움직일 수 없었다. 언제 기차가 달려올지 모르는 캄캄한 밤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정신이 번쩍 든 남편은 차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중략)
  다음 날 아침, 차를 찾기 위해 경찰서에 전화했다. “차를 도난당했다.”고 거짓신고를 했다. 만일 사실을 보고 할 경우, 음주 운전한 것과 철로에 들어선 것을 합쳐 법적인 조치와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랬으니 이유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고에 가서 차를 찾은 후에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남편은 술로 인해 아찔한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적마다 “이번에는 꼭 술을 끊겠지!” 하고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남편은 며칠 못 가 또 다른 술잔에 나의 바람을 묻어 버리곤 했다.
                                                                                                                                                -<이제는 술을 끊어야지>에서

 

  화자는 30여 년 전 텍사스에서 일어난 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보통의 한국남성들은 핑계만 있으면 술을 마신다. 술은 금시 피해가 나타나지 않기에 한국은 술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앙금 있는 친구와의 사이에는 주로 술로 통로를 연다. 또 아니면 가슴속에 근심이나 수치감, 열등감과 상처를 술로 씻어내려 한다. 요즈음 한국 TV에서도 무엇이 안 풀릴 때는 꼭 술집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장면이 등장한다. 평자도 한때 하룻밤에 2~3차 술집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3대 범죄로 취급한다. 그만큼 술 문화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문제는, 이런 것을 잘 아는 화자의 남편은 아직도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매일 아침 식탁에 마주 앉으면 습관처럼 “이제는 술을 끊어야지.”라고 내뱉는다. 그 말은 진실성이 없다. 미안해서 그냥 하는 말일 뿐이다. 또 그것을 화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평생 위스키나 맥주 등 보이는 것에 상관하지 않던 화자의 남편은 얼마 전부터 와인으로 바꾸어 계속 마시고 있다. 그것을 화자는 절제라고 표현한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남편은 화자를 보며 “이제는 술을 끊어야지.”라고 할 것이리라.

 

  연락을 받고 중환자실에 달려갔을 때 딸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내 목숨 이상으로 사랑하던 외동딸이 아닌가. 딸의 주임교수는 주요 검사를 주선했다. 그리고는 CT촬영, 골수검사, PET 등 이름도 생소한 기계에 딸의 몸뚱이를 맡겼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겨주는 의사, 이렇게 2008년은 나와 딸에게는 큰 시련의 해였다.
  딸은 목덜미에 있는 림프샘을 2인치 정도 절개하고, 구슬만 한 것을 떼어내는 조직검사에 들어갔다. 검사결과는 ‘호즈킨스 림포마’(Hodgkin's Lymphoma) 3기의 암이었다. 딸의 병이 암이라는 상상도 못한 담당의사의 말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어떤 병명인지 정확한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천둥 번개같이 내 머리를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딸도 자기가 처음 듣는 병명인지, 컴퓨터를 열고 그 병에 관한 자료와 치료방법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병 치료에 관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 희소병에 대한 의학적인 접근하는 것으로 보였다.
                                                                                                                                        -<딸 대신 내 몸에 메스를 대주세요!>에서

 

  이 작품은 화자가 2012년 12월, 《조선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작품이다. 화자의 딸은 시카고의대에서 공부한 의사이다. 인턴과 레지던트 중 의료봉사 두 차례를 아프리카 케냐 빈민촌과 페루 극한지대의 아마존 정글에 갔다 왔다. 그 탓에 피로와 병원에서의 과로에 의해 병이 발병한다.
  그냥 병이 아니다. 첫 번째는 호즈킨스 림포마’(Hodgkin's Lymphoma) 암 3기, 두 번째는 심장막 뒤쪽의 가슴샘(thymus)에 있는 곳에서의 악성 암이다. 놀랍게도 두 번 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완치한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한 번의 자연유산 후 두 번 만에 성공한 시험관 아기를 지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뒤따른다.
  가냘픈 여성이 암에서 이겨내기도 힘든데, 화자의 외손녀가 탄생하는 순간과 또 하나는 같은 과(科) 의사인 외국인 사위와의 사랑과 결혼이다. 김평화 수필집 2부 8편은 <아기의 눈동자>에서부터 <또 한 번의 돌개바람>까지 모두가 딸과의 관계된 수필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무슨 엄동설한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할 때가 있다. 아니다. 다 그 속에는 피눈물 나는 아픔과 진통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얼굴로 포장되어 있을까?’ 이런 물음은 인간이 풀 수 없는 마지막 질문이다. 논리와 과학, 종교와 철학으로도 풀 수가 없다. 수필쓰기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타인을 알 수 없으며 세상과도 제대로 통찰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비춰내려면 마음이 맑아야 한다. 마음의 연마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비춰 내야 한다.
  그렇다. 작가 김평화의 가슴에는 생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다.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사실주의적인 필체를 사용하고 있다. 꽉 찬 과육을 지닌 과일치고 아름다운 껍질을 가진 건 별로 없다. 그녀의 문장은 날것이다. 그리고 날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의 문장이 세련되어 있다면 오히려 삶의 진정성이라는 담론은 훼손시킬지도 모른다. 평자는 수필의 진실은 표현이 아니라, 내용이어야 함을 김평화의 수필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것은 재미수필가들이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타산지석(他山之石)이고, 수필의 진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실전의 현장일 것이다.

 

  ‘사랑하는 평화야. 그동안 잘 있었니? 애들도 잘 있고, 아범도 잘 있는지?
네가 몹시 보고 싶구나! 아이들하고 잘 있는지 궁금하구나. 나는 몸이 점점 더 아파지는구나. 그래서 네가 더욱 보고 싶구나. 네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평화야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인다. 몸 건강히 잘 있어라.’
  할머니가 보낸 편지마다 한결같이 짧은 내용이었지만, 큰 글씨로 한쪽을 가득 채워 정성 드려 쓴 글이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가슴이 북받쳐 나도 모르게 울컥 울음이 터졌다. 나는 편지를 끌어안고 오열하며 엎드려 사죄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목 놓아 부르게 된다. 편찮으신 몸으로 나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쓴 편지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찾으셨다는 불쌍한 할머니. 바보처럼 현실이라는 짐에 매여 산다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드리고 말았다.
                                                                                                                                                             -<색 바랜 편지>에서

 

  요즈음은 전자시대라 편지나 카드 대신 이메일을 사용한다. 한국과 국제전화가 아니라 카톡이라는 것으로 문자나 무료전화, 사진까지 빠르게 소통할 수 있다.
  화자는 이사하기 위해 허름한 편지함을 뒤지다 30년이 넘은 해묵은 편지, 바로 할머니의 편지를 읽게 된다. 바쁜 세상살이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짧은 편지에는 ‘사랑하는 평화야. 그동안 잘 있었니. 애들도 잘 있고 아범도 잘 있는지….’로 시작한다. 할머니가 화자에게 하고 싶은 말, ‘네가 보고 싶다. 네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에서 가장 중요한 말, ‘언제 볼 수 있을까?’이다.
  화자는 할머니에게 ‘미국에 가면 할머니에게 꽃방석에 앉혀 드릴 것’이라고 졸라대며 함께 미국에 왔다. 그리고는 낯선 땅과 언어와 결혼으로 할머니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만다. 어디 그것뿐인가, 텍사스로 남편의 직장 따라 화자는 하와이에 홀로 할머니를 두고 떠난다. 자신과 할머니는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된다. 이럴진대 할머니의 해묵은 편지를 다시 보았으니, ‘미국에 가면 할머니에게 꽃방석에 앉혀 드릴 것’이라는 허언虛言이 가슴에 못으로 박혀 있을 것이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타주에 사는 딸·사위와 외손녀의 웃음이 눈에 밟혀 궁금증을 컴퓨터에 앉아 넋두리를 편다. 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식과 소통하려는 마음은 바로 할머니가 사용했던 방법, 긴 지느러미 같은 안테나를 세워놓고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는 바로 바이오필리아Biophilia 바로 사랑애創造愛이다. 자식과의 교감, 이웃을 사랑하는 유일한 창조애를 대물림하는 방법이리라.

 

   전통 고전소설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느끼면서 휘 둘러본다. 평생 애절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춘향이가 되어 몽룡의 사랑을 느껴본다. 그 순간 짜릿함은 온몸을 설레게까지 한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다소곳이 그네를 타던 아름다운 춘향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 몽룡을 남편으로 생각했다. 그네에 올라 다리에 힘을 주고 밀어 보지만 잘 나가지 않는다. 세월 탓이라 싶다.
  K회장님은 그네에 오르더니 쉽게 하늘로 오르고 내리면서 잘 탄다. 그넷줄이 길어 보통 그네보다 타기가 힘들었다. 더불어 완월정玩月停을 돌아보며 춘향이가 즐겼을 달맞이 정취에 흠뻑 빠지는 맛도 일품이라 싶었다. 서정주 시인의 춘향의 변함없는 사랑과 정절을 표현한 시를 읊어본다.
                                                                                                                                    -<사랑의 아이콘>에서

 

  늦가을, 전라북도 남원을 K회장과 사모의 안내로 관광한다. 물에 비친 광한루를 둘러싼 버드나무 그림자는 화자의 마음을 쏙 빼놓는다. 그리고는 ‘춘향유문’春香遺文이라는 서정주 시인이 춘향의 변함없는 사랑과 정절을 표현한 시를 화자는 읊어본다.
 그런데 고전소설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처럼, 그네를 탄 춘향을 생각하며 엉뚱한 고백을 한다. 화자는 평생 애절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며 몽룡을 남편으로 생각한다. 순간적이지만 잘살고 있는 지금의 가정을 어찌하려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는지 모르겠다. 화자는 솔직하다. 세월 탓이라 했지만, 그네를 타고 있는 동안 그런 마음은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다리에 힘주고 밀어 보아도 그네가 잘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늦게 장가를 간 탓인지 아저씨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응석받이 늦둥이가 있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어디를 갔는지 그날은 아저씨가 잠든 아기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업고 있는 게 아니라 아기를 등에 업고 마루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는 대문 밖에서 이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든 아저씨가 뿡! 하는 방귀 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크게 들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대포를 쏘는 듯한 방귀 소리에 잠자던 아기는 놀라 깨고, 나는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방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중략)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교실에는 책 읽는 소리와 뱃속에서 나오는 쪼르륵 꼬르륵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다 들릴 정도의 큰 소리였다 싶은데,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이 그리 우습던지 이상하리라 만큼 웃음이 나왔다. 소리를 내어 웃지도 못하고 입을 꼭 다물고 참으려 애를 써도 웃음이 계속 터져 나왔다. 나중에는 나의 얼굴은 찌그러지고 배까지 꼬이면서 아파져 왔다. 웃음보가 터지고 만 것이었다. 말똥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더니, 내가 그 짝이 되고 말았다. 교실 밖에 살짝 나가서 실컷 웃고 들어왔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 당시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움이 있는 웃음보>에서

 

   작가 김평화는 고향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한국어로 수필을 쓰면서 가난했던 긴 마음의 세월을 토吐해내고 있다. 인생 성찰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은 수필쓰기의 기본이다. 또한, 수필쓰기는 자신의 길을 거울에 비춰보는 일이며, 잊혔던 과거를 되돌리게 한다.
  화자는 타임머신이 있으면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아저씨 등에 업혔던 꼬맹이는 어떻게 변해 있는지. 꼬르륵거리는 소리와 학생들이 책 읽는 혼합된소리, 웃음보가 터졌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마 낭만과 꿈 그리고 젊음의 풋풋한 감정이 있었던 그 당시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기에 그럴 것이다.
  이는 수필작품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깨달음을 의미로 꽃피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더욱 완성된 인생의 길로 가려는 의지의 발로이리라 싶다.

 

   높은 파도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신랑이 든든했다. 하와이안 웨딩밴드에 맞추어 귀여운 강아지, 루비와 샌디가 딸 친구의 손에 이끌리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모래를 밟으며 앞장서서 입장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딸은 강아지를 갖고 싶어했다. 항암치료를 받는데 위로가 될까 싶어 루비와 샌디를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들의 뒤를 이어, 남편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한 송이 꽃은 믿음직한 신랑에게 딸의 손을 내주고 있다. 하늘로부터 축복을 받는 순간이다. 눈물 어린 지난날의 모습들이 지워지는 숭고한 아름다움의 연출이라 싶었다.
                                                                                                                                                                -<하와이 해변의 결혼식>에서


   화자는 5월, 하와이 바다거북이만灣Turtle Bay에 있었던 딸의 결혼식을 이렇게 표현한다. 초롱 별빛과 달빛이 화자의 언 가슴을 녹여주는 포근한 밤이다. 하늘이 딸아이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듯 쌍무지개, 해변을 따라 파도는 축하의 박수소리로 변해 끝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눈앞에 한 편의 영상이 보이는 듯 아름답게 딸의 결혼식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몇 번이나 죽음 앞에서 살아난 딸의 결혼식이라 남달랐을 게다. 그러기에 하와이안 웨딩밴드에 맞추어 딸의 항암치료를 받는데 위로가 될까 싶어 루비와 샌디를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을, 얼마나 반가웠으면 두 마리의 강아지도 결혼 식장의 모래를 밟았을까 싶다. 그 순간 화자는 눈물 어린 지난날의 모습들이 지워지는 숭고한 아름다움의 연출이라 싶었을 것이고, 당당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와이의 겨울은 싱겁다. 한국의 고층아파트 발코니에는 주로 분재식물을 많이 둔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에는 자칫 얼어 죽는 식물이 발생한다. 한 문우에게 배운 절묘한 방법이 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별다른 난방을 하지 않고 발코니의 크기에 따라 작은 촛불 서너 개를 밝히면 된다고 한다. 발코니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분재식물도 얼려 죽이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촛불의 힘이라니, 참으로 기막힌 구제救濟라 생각한다. 

 

해변에 늘어선 호텔 정원마다 가스등에 불이 붙여지고, 불빛에 반사되어 출렁이는 물결 따라 하와이안 기타 소리는 하늘로 울려 퍼진다. 불어오는 태평양 바다의 바람은 훌라춤 추는 여인의 치마를 감싸며 스쳐 간다. 26, 내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뿐이다. 땅 위에 반짝이는 별들 위에 부웅 떠서 꿈속에 잠들고, 태양이 떠올라 창을 두드릴 때 아침잠에서 깬다. 창문을 연다. 꽃향기 가득 실은 신선한 아침 공기가 열린 창문을 통해 솔솔 들어온다. 황홀했던 야경은 이미 사라졌고 새로운 태양 아래 새롭게 움직이는 만물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름다운 섬 하와이다.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겨울이 없는 하와이에서, 작가 김평화는 칠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생활도 안정되어 있다. 26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풍성한 노년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수필은 그녀만의 고유한 음색과 흥과 멋, 맛과 미가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문장의 세련미와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그녀의 일생은 끈기와 투지로 점철되어 있다. 창문을 열면 꽃향기 가득 실은 신선한 아침 공기가 창문을 통해 계속해서 솔솔 들어오기를 바란다.

 

3. 나가기
 생활인으로만 살 수는 없는 수필가는, 자기구원의 한 방법으로 수필을 쓴다. 수필을 쓴다는 건 ‘사는 방법’의 새로운 도전이며, 도전하는 자는 시련을 자초하는 자아다.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 과정이 성취고 자기구원이며, 공개적인 표현이 수필이다. 그래서 수필은 ‘제 목소리’라고 말한다. 제 목소리란 일반적인 지식의 나열이나 세상을 떠돌이로 사는 방랑이 아니라, ‘내가 나를 만날 때’ 보고 들은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세상만물과 융합하여, 비로소 만물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인 자기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이래서 수필쓰기가 자아를 찾아가는 방황의 여로이며 자기구원일 것이리라.
  또 있다. 소수 지성인들이 수필에 매달리는데, 수필은 배설행위의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영국의 존슨 박사는 “누가 가난하지 않은데 글을 쓰겠는가?” 반문한다. 주위에서 넉넉하고 즐겁게 사는 괜찮은 친구들은 “불행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작가 김평화는 왜 글을 쓰는가? 그녀는 쓸쓸함과 외로움 때문에 쓴다. 닿지 못하는, 영영 닿지 못할 ‘완전한 꿈의 완성’에의 허기 때문에 쓴다. ‘방황하는 정신’을 묶기 위해서 쓴다. 내면이 부석거리며 말라있기에 그렇다. 그녀는 이곳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천형天刑, 외로운 바람이다. 그렇기에 작가 김평화는 진솔하게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탓에 그녀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독자들은 이내 알게 될 것이다. 그녀의 몸 안에는 지치고 외롭고 화나는, 정신 맑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욕망과 우애와 자유혼이 용암처럼 꿈틀거리는 외양의 얼굴과 다른, 순수하고 무구無垢한 속사람이 동거하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이 서평을 만들 때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녀의 글에 대한 행간을 뒤적거리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글뭉치의 실마리를 찾느라 쑤석거리며 토막토막 메모한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이제 내 안에 품고 다닌 그녀를 내려놓는다.
  그녀는 평자와 함께 늙어갈 테지만 그녀의 글은 영영 젊으면 좋겠다. 새로 피어나는 꽃처럼 환하고 향기로우면 좋겠다. 처녀 수필집《사랑의 아이콘》을 선보이는 김평화 수필가에게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빌어본다.

 

김평화.jpg

 

약력:

하와이 거주

하와이대학 미생물전공

전 하와이문협 회장

관서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현재: 한국문협 회원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저서: 사랑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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