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명 수필가

조회 수 3009 추천 수 2 2017.06.01 12:04:45

    

 

                                                                        金起林의 수필세계

 

                                                                                                                                                  변 해 명

 

 

1. 金起林의 문학사적 위치

2. 金起林의 시와 수필

3. 결 론


  1. 金起林의 문학사적 위치

  김기림(1908~?)은 한국 문단에 서구문학의 이론적 적용이 자리잡히기 전인 1930년대에 영미문학 이론을 나름대로 수용하고 원전을 성실히 소개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詩論을 확립하고 詩作과 비평활동을 펼쳐나간 한국 모더니즘의 시인이요 비평가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1930년 조선일보에 GW라는 필명으로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과 평론 午後無名作家- 日記帳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이태준, 정지용, 이무영, 이효석 등과 함께 인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氣象圖(1936), 太陽風俗(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文學槪論(1946), 詩論(1947), 理解(1950) 등이 있다. 隨筆集으로는 유일하게 바다와 肉體(1948)가 있다.

   김기림은 T.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I.A. 리처드, H. 리드 등 영미 신비평가들이 보이는 주지적 태도와 이미지즘 운동에 영향을 받아, 종래 있어온 감상적 퇴폐적 낭만주의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목적성에 치우치던 프로문학을 부정하고 나섰다.

   ‘시인과 시의 개념’, ‘시작에 있어서 주지주의적 태도’, ‘현대예술의 원서에 대한 욕구등을 발표하여 기존의 감상주의적 경향을 비판했다. 즉 감상주의는 눈물과 슬픔 등의 과잉정서에서 오는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이것을 극복한 건강하고 명랑한 정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의 음악성, 시간성을 비판하고 회화성, 시각성, 감각성을 강조하면서 정지용, 신석정, 이상, 김광균 등의 시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또 일생 동안 몇 권의 작품을 쓰는 것보다 단 하나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 낫다는 에즈라 파운드의 주장을 충실히 따라 이미지스트로서 시의 음률이나 음악성보다 회화성, 시각성을 중시하는 이미지의 시를 쓰려고 노력한 시인이었다. 한 마디로 근대 한국문단을 현대로 이끌어가는 데 앞장섰던 시인이요 비평가요 한국 모더니즘의 기수이기도 하였던 김기림은 그 시대의 감상주의를 건강하고 명랑한 주지적 정서로 바꾸려고 노력했으며, 이미지를 강조함으로 새로운 문단의 주류를 이끌어 낸 어느 시대 문인보다 우리 문단에 큰 발자국을 남긴 분이다.

 

  2. 金起林의 시와 수필

   그의 유일한 수필집 바다와 肉體의 머리말에서 그의 수필관을 엿볼 수 있다. 머리말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머리말로 쓴 수필의 위상에 대하여 쓴 부분과 1933년 신동아에 실렸던 평론 수필을 위하야의 서론과 결론을 생략한 부분을 함께 싣고 있다.

   수필을 문학의 한 장르로 다룰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혹을 품은 사람이 적지 않다. 小說이나 戱曲文學이라는 데는 아무도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文學의 당당한 嫡子들이라고 할까. 거기 비하면 隨筆은 알쏭달쏭하다. 의젓하게 그들과 나란히 어깨를 펴고 서지 못한다. 文學史 속에서도 서자가 아니면 사생아처럼 눈총을 받는다. 중략 文學定義야 어찌되었든간에 저 2級 以下小說이나 쯤은 더러 잃어버리더라도 몽테뉴의 瞑想錄, 파스칼의 팡세, 가까이는 알랭의 斷想들을 간직하고 싶다. 더군다나 英美文學에 있어서 隨筆地位란 도저히 홀홀이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중략 그러니 문학이라면 시, 소설, 희곡으로 막아버리는 고집스런 생각은 이 또한 봉건주의의 찌꺼기라고 할까. 중략

   著者 또한 때를 따라 隨筆에 붓을 적셨다. 다만 文學定義의 테두리만 돌아다니는 이 不平分子隨筆의 편을 들려한 데 지나지 않는다.

                                                                                                                         ─ 수필집 바다와 肉體머리말 중에서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한 小說을 읽는 것보다는 오히려 함부로 쓰여진 느낌을 주는 한 隨筆은 인생에 대하여 文明에 대하여 어떻게 많은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거기는 無視된 어떤 종류의 活動을 위하여 얼마나 넓은 天地許諾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隨筆이 가지는 魅力은 무엇보다도 文章에 있다. 文學이라는 것은 필경 言語로써 되는 것이고 언어의 온갖 콤비네이션文章이다. 作者個性的스타일이 가장 明瞭하게 나타나는 것이 文學의 어느 分野보다 隨筆에서다. 隨筆朝飯 前에 잠깐 끄적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잘못은 없다. 香氣 높은 유머寶石과 같이 빛나는 위트大理石같이 찬 理性과 아름다운 論理文明人生에 대한 찌르는 듯한 諷刺아이러니파라독스와 그러한 것들이 짜내는 隨筆獨特한 맛은 우리 文學未知處女地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있을 隨筆은 이 위에 多分近代性攝取하여 縱橫無盡時代的 寵兒가 되지나 않을까. 하략

                                                                                                       ─『바다와 肉體머리말 중 隨筆을 위하야에서

 

   이 글들을 보면 起林은 수필을 엄연히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하려 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 문학사에서 서자나 사생아 취급을 받고는 있지만 영미문학에서 누리는 수필의 지위를 우리도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수필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소설이나 희곡이 따를 수 없는 얼마나 넓은 천지가 허락되어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수필이 지니는 매력은 무엇보다 문장에 있다고 했다. 조반 전에 잠깐 끄적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잘못은 없고, 작가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는 문학인 만큼 위트와 유머, 아이러니, 파라독스 그런 것들이 깃들인 콤비네이션의 문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근대성을 섭취하여 종횡무진한 시대적 총아가 될 미래의 문학임도 밝히고 있다.

   그는 언어와 문장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언어에 대한 많은 논문 언어의 복잡성’, ‘시와 언어’, ‘시의 르네상스등을 보면, 문학을 언어예술로 보고, 시는 사람과 사람의 교섭 즉 언어의 한 특수 형태라고 본 관점에서, 문학의 생명을 언어와 그 언어들이 엮어내는 문장으로 보았다.

   그는 우리말에 가장 잘 맞는, 쉽고 합리적이고 쓸모 있는 우리글로 통일하는 어문일치의 우리말 운동이 당면 과제(문장론신강2P)라고 한 주장에서도 볼 수 있듯, 종래 있어온 문장과는 다른 문장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나 수필을 생활과 밀착된 언어로 썼다. 뿐만 아니라 시에서 운율을 배척하는 것이 현대시의 필수요건으로 생각한 그의 주지적 시작 태도에서 의도적으로 운율을 배격하려고 한 탓에 그의 시는 조각난 산문’(송욱 詩學評傳291P)에 불과하다는 평자가 있을 만큼 산문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반대로 그의 수필은 시적인 요소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만큼 감각적이고 주지적인 이미지로 언어를 선택해서 썼다.

 

수수밭속에 머리 숙으란

겸손한 오막사리 재빛 지붕우를

푸른 박덩쿨이 기여올라 갔고

엉크린 박덩쿨을 나리 밟고서

--연 박꽃들이 거만하게

아침을 웃는 마음.

 

    ─ 마음의 전문

 

 

茂山이 여기서 十里란다

붓두막엔 이글이글 드덕불도 타리라

나려서 아즈머님네와 감자를 버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버끼며 이밤을 새고 가고 싶다.

   

         山驛의 전문

 

   산을 쳐다본다. 말이 없다. 일찍이 이 산이 화산일 적에 불꽃을 뿜는 것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산을 가리켜 벙어리라고 부른다. 흐린 날에는 산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은 흘러가고 안개는 날아가도 날이 새면 산은 산대로 있었다.

산이 아니다. 구름인가 보다. 바람인가 보다. 위도의 어느 점에도 뿌리를 박지 못하는 갈대인가 보다. 티끌인가 보다. 그림자인가 보다. 부끄러워 산을 달려 내려온다.

                                                                                                                                                            ─ 수필 에서

 

  위의 시 마음山驛그리고 수필 은 그의 주장대로 감상을 배격하고 일상적인 언어와 건강하고 명랑한 정서로 쓰여진 작품이다. 그런데 위의 시들을 행과 연을 무시하고 한 문장으로 문맥이 잘 통하는 아래 수필(산문 문장)과 다를 바 없다. 그와는 달리 그의 을 행과 연을 띄어 써보면 의외로 강한 이미지가 구사된 시가 된다.

 

산을 쳐다본다 / 말이 없다 / 산이 아니다 / 구름인가 보다 / 바람인가 보다 / 갈대인가 보다 / 티끌인가 보다 / 그림자인가 보다

 

   시는 수필 같고 수필은 시처럼 느껴지는 그의 글의 특색이 모더니즘에서 출발한 그의 시론에 근거함에 있기도 하지만, 어문일치의 우리말 다듬기로 글을 쓰려 한 그의 문체에서 오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처럼 그의 수필은 산문시처럼 쓴 것이 많다. ‘’, ‘소나무송’, ‘청량리’, ‘엽서’, ‘가을의 누이등 수필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원고지 2매 남짓한 수필들이다. 그런 수필들은 소재에 매이기보다 언어가 빚어내는 표현 내지 이미지에 치중했으며, 감상보다 주지적인 정서에 비중을 두었고, 함축적인 비유나 아름다운 낱말들로 수필이기보다 산문시로 보여진다.

 

   사실 나는 열다섯 살 때에 중학교의 작문선생으로부터 애가 이뽄()으로 글을 쓰다가는 필경 자살하겠다하는 경고를 받은 일이 있다. 나의 본래의 정체는 역시 감상주의자였다. 내가 오늘 감상주의를 극도로 배격하는 것은 나의 영혼의 죽자고나 하고 하는 고무의 표현이기도 하다.

                                                                                                                                                           ─ 수필 사진 속에 남은 것에서

 

   나는 인생에서는 한 현실주의자다. 될 수만 있으면 내 앞에 닥쳐오는 순간 순간의 생을 의의 있고 즐겁게 살리며 향락하고 싶다. 그런 까닭에 침울이라는 것을 나는 미워한다. 따라서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가장 용감하게 뚫고 나갈까에 대하여 생각할지언정 나를 압박하는 고민이나 난관에게 압도를 당하여 우울해지는 것은 일부러 피한다.

                                                                                                                                                          ─ 수필 사진 속에 남은 것에서

 

   위의 수필은 그의 참 모습을 보여 주는 글의 일부이다. 그가 원래는 감상주의자인데 그것이 싫어 죽자고나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래서 나를 압박하는 고민이나 난관에는 일부러 피한다고 한 그의 인간됨을 더듬어 보게 한다. 탄식과 까닭 모를 울음소리는 버려야 할 유산(태양의 풍속서문)이라고, 감정의 지적 절제로 감상을 배격하려 한 그의 의지적인 삶의 태도도 엿보게 한다.

   그의 80여 편(수필집 수록 37, 미수록 50여 편)의 수필에는 그런 인간적인 내면의 감상과 의도적으로 길들인 모더니스트로서의 주지적인 태도와 모든 문장은 언어의 조탁으로 이루어짐을 드러내는 글들이 많음을 보게 된다.

  그가 수필의 특색으로 지적한 문장의 콤비네이션인 위트, 아이러니, 파라독스와 그런 것들이 짜내는 수필의 맛을 지닌 수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가 쓰는 글은 시던 수필이던 그 자체는 문학이고, 그것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삶의 체험인 소재나 수필의 주제조차도 문학적인 함축된 이미지로 표현하려 했음을 찾아보게 된다.

 

   나의 소년시절은 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 사랑도 그 길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너머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 수필 의 전문

 

나의 故鄕

너머 또 구름밖

아사라의 소문이 자조 들리는 곳

 

나는 문득

街路樹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

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선다.

鄕愁의 전문

 

   수필 이나 시 향수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같은 정서로 쓰여진 글이다.

   수필 과 시 향수의 문체는 시나 수필이라는 구별을 주지 않는다. 어느 것이 수필이고 어느 것이 산문인지 둘 다 시가 될 수 있고, 둘 다 산문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수필 은 시 향수가 따라올 수 없는 많은 의미를, 정서를, 그리움을, 진실을, 고독을, 회한을 그리고 인간 삶의 본질과 죽음과 고독과 허무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아픔을 담고 있다. 어느 장편 소설을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고, 어느 동양화를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한 영상을 담고 있으며, 감동과 사색을 함께 지니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깊이 자리잡은 감상주의를 억제하고 주지적인 정서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담긴 글이기도 하다.

   시 향수는 국토의 최북단에 위치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고향의 순박한 향수(가로수, 송아지 울음)와 아득한 그리움(산너머 또 저 구름밖)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어머니의 상여의 뒷모습조차 오래 지켜볼 수 없도록 꼬부라져 돌아간 길, 그 길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 조약돌처럼 잃어버린첫사랑, 그렇게 덧없이 흘러간 세월, 그 길에서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치고’,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고돌아오지 않는 계집애와 이야기를 늙은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언어 뒤에 어린 시절 이별의 아픔과 고독과 비통한 상처를 모두 숨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남들이 모두 살찐 활엽을 자랑할 때에 아무리 여윈 강산에서 자랐기로니 그다지야 뾰족할 게 무어냐, 앙상하게 가시 돋힌 모양이 그저 산골 서당 훈장님과 꼭 같다. 밤은 그래도 가시 속에 향긋한 알맹이라도 감추었는데 솔잎이야 말라 떨어지면 기껏해서 움집 아궁이나 덥힐까.

   그러나, 구 시월달 휭한 날씨에 뭇 산천초목에 푸른빛은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그 서리 바람도 솔잎새 가시만은 조심조심 피해서 달아난다 한다.

   그러기에 하얀 눈은 일부러 푸른 솔가지를 가려서 앉으러 온다. 봉황이가 운다면 아마도 저런 가지에 와 울겠지. 솔잎새 가시가 살가워 나는 손등을 찔려 본다.

 

                                                                                                                                         수필 소나무전문

 

   1940년 잡지 여성에 실린 작품이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가슴에 와서 안기는 수필이다. 말라 떨어지면 움집 아궁이나 덥힐 솔잎, 그러나 뭇 초목에서 푸른빛이 사라지는 겨울이면 흰눈은 일부러 푸른 솔가지를 가려서 앉으러 오고, 봉황도 그런 가지에 날아들 것만 같은 소나무, ‘솔잎새 가시가 살가워 나는 손등을 찔려 본다고 한 솔잎을 보는 작가의 마음이 살아 나온다. 겨울 솔잎에 내려앉는 흰눈처럼 솔가지로만 찾아드는 봉황처럼 그는 자신의 글을 쓰고자 했다.

   여기는 3월에도 하늘에서 비가 눈이 되어 내리는 북쪽 국경 가까운 동리라오. 남포소리가 산을 울리던 이듬해부터 7년을 기차는 들의 저편을 날마다 외투를 입은 구장영감처럼 분주하게도 달려다니오. 가을마다 기차는 그 기다란 몸뚱아리에 붙은 수십 개의 입을 벌려서 이 동리 사람들을 하나 둘 하나 둘 삼켜가더니 지금은 마을의 절반이나 텅 비었오.

   우리들은 지난 밤도 마을에서 십리나 되는 정거장에서 떠나 가는 이, 남아 있는 이, 슬픈 잘가오잘있으오를 몇 번이고 불렀오.

기차가 어둠을 뚫고 북으로 뛰어간 뒤에는 검은 철길이 우루루 울었오. 남폿불이 조는 시골 정거장에서 우리들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오.

   편지는 없으나 바람과 같이 떠오는 말을 들으면 기차는 그들을 두만강밖에 뱉아버렸다는데 나오는 기차는 말이 없이 슬그머니 지나만 가 버리오.

                                                                                                                                            ─ 수필 心臟없는 汽車에서

 

   위의 수필에서 그가 얼마나 언어의 조탁과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나 알 수 있다. 읽고 다시 읽어도 마음에 다가오는 아름다운 문장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기다란 몸뚱아리에 붙은 수십 개의 입을 벌려서 이 동리 사람들을 하나 둘 하나 둘 삼켜가더니 지금은 마을이 절반이나 텅 비었오’, ‘기차가 어둠을 뚫고 북으로 뛰어간 뒤에는 검은 철길이 우루루 울었오’, ‘기차는 그들을 두만강 밖에 뱉아버렸다는데 나오는 기차는 말이 없이 슬그머니 지나만 가 버리오.’

   마을이 반이나 비게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 그들을 입을 벌려 삼키고 뛰어간 기차는 다시 마을로 나올 땐 슬그머니 지나가는, 의인화된 기차를 통해 비통한 민족 이동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감상도 탄식도 울음소리도 없이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메타포로 처리한 솜씨가 놀랍다.

 

3. 결 론

   김기림은 詩作보다 시론이 앞선 시인이요 비평가이다.

   그런 그의 그늘에 가려진 수필의 세계를 엿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그 시대 어느 수필가의 수필보다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수필을 썼다고 생각된다. 아니 그는 시보다 더 아름다운 수필을 쓴 한국의 문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글을 쓰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언어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지니고 있었던 그 시대의 문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더니즘 시론이 한국의 근대시를 현대시로 전환시키는데 가장 큰 이론적 뒷받침을 했다면, 그의 수필도 또한 우리의 수필을 현대수필로 전환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고 본다.

   그의 수필의 특색은 ’, ‘소나무’, ‘청량리등과 같은 산문시로 보여지는 짧은 수필이 많은 점이다. 또 감상에 치우침이 없고 주지적이고 절제된 문장이 현대의 수필로도 손색이 없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 그의 수필 양식을 현대 수필에서도 시도해 봄직하여 그의 수필 연구가 그의 시 연구 못지않게 있어지길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김학동의 김기림 연구, ·김기림의 바다와 육체

문정숙의 김기림론, ·송욱의 시학 평전

김기림 연구삼설당편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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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서울출생

서울대 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1975년 한국문학(김동리 주간) 수필 신인상.

한국문협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원.

경력: 34년간 중·고등학교 교사. 8년간 교장 명예은퇴

문학상: 1988년 수필문학진흥회 주간 현대수필문학상 외 다수

저 서: 197…「먼 지평선에…」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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